'왕인박사 영암 출생' 뒷받침할 향토사료 연구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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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인박사 영암 출생' 뒷받침할 향토사료 연구 절실

(사)왕인현창협회, 영암출생설 최초기록물 <조선환여승람>주제 학술대회 개최

전석홍 회장, "왕인박사에 대한 이해 한층 깊게 하는 귀중한 계기될 것" 강조

<조선환여승람>에 기록된 ‘왕인박사의 구림 출생설’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영암향교나 이병연 후손 집안에서 새로운 단서를 찾거나 영암 일대 잊혀진 향토사 자료를 찾는 중장기적 과제해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아울러 왕인 관련 기록이 어떤 문헌 또는 구비설화에 근거한 것인지 조사하는 등 영암군의 왕인설화를 체계적으로 조사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나왔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11월 28일 광주여대에서 열린 '2019 왕인박사현창협회 학술대회'에 따른 것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왕인박사의 영암 구림 출생’에 대한 국내 최초의 기록물인 <조선환여승람>에 대한 본격적인 학술연구발표회인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영암군과 (사)왕인박사현창협회(회장 전석홍)가 주최해 '조선환여승람과 왕인박사'를 주제로 열린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연세대 허경진 명예교수가 '조선환여승람의 편집과 간행', 용인대 권혁래 교수가 '조선환여승람 영암군편의 인물 스토리텔링', 성신여대 문상명 교수가 '일제강점기 조선환여승람에 나타난 지역 특수성', 광주여대 정성일 교수가 '1927년 영암 답사기에 보이는 왕인박사 전승' 등의 주제발표가 있었다. 이어 국사편찬위원회 박남수 전 편사연구관이 좌장으로 광주전남연구원 김만호 연구원, 김희태 전라도천년사 편찬위원, 전남대 김병인 교수, 목포대 최성환 교수 등이 참여하는 토론도 열렸다.
이날 학술대회의 주제인 <조선환여승람>은 충남 공주의 유학자인 이병연(1894∼1977)이 각지의 유림들과 협력하고 지방마다 보고원을 위촉해 129개 군(郡)에 대한 인문지리서를 편찬하고 대전 보문사에서 간행한 책이다.
허경진 연세대 명예교수는 "박사 왕인이 영암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은 바로 1937년 간행된 조선환여승람 지리부 명소(名所)와 인물부 명환(名宦)에 처음 보인다"면서, "조선후기 일본에 파견되었던 통신사의 필담이나 사행록에 왕인에 관한 기록이 처음 나타나다가 '영암출생'이라는 기록이 조선환여승람에 처음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그러나 국내 역사서에는 왕인에 대한 기록이 없으며, 조선환여승람 영암군 인물부에 왕인 이외의 왕씨(王氏)가 실려 있지 않은 것을 보면 영암에 왕인을 수단(收單)할 후손도 없었다고 볼 수 있다"면서, "그렇다면 누가 왕인을 영암군 인물부에 등록했는지 그 가능성을 유추해본 결과 첫째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영암향교나 지역유림들이 현지의 전설이나 향토사료를 근거로 삼아 신청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특히 "인물부 기사를 보면 일본 오사카에 있는 왕인의 묘와 사당의 존재를 확실하게 아는 지식인이면서 일본식 연대표기를 하지 않고 '(고이왕) 52년 을사년'이라고 표기할 수 있는 지식인이 신청했을 가능성도 있다"면서, "현재 확인되는 문헌으로는 더 이상 유추하기가 쉽지않은 만큼 영암향교나 이병연 후손 집안에서 새로운 단서를 찾거나 영암 일대 잊혀진 향토사 자료를 찾는 중장기적 과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권혁래 용인대 교수도 "왕인을 영암사람이라고 적시한 것은 이병연이 처음이나 그 주장이 어디서 온 것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면서, "왕인의 묘와 사당이 일본 오사카부 기타카와치군 히라카타에 있다고 적시한 것은 이병연이 1920년대 당시 일본에서 확인된 지식과 견문에 바탕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병연이 왕인을 영암군의 인물로 기록한 것은 당시 영암군 일대에 전하는 설화에 근거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병연의 조선환여승람 영암군편의 왕인 관련 기록이 어떤 문헌 또는 구비설화에 근거한 것인지 조사하고 영암군의 왕인설화를 체계적으로 조사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권 교수는 '조선환여승람 영암군편의 인물 스토리텔링' 주제발표를 통해 영암군편에 나오는 연주현씨 시조 현담윤 등 20대에 걸친 40명의 인물과 영암군의 효부 및 정렬 여인의 삶과 죽음, 백제 왕인박사와 통일신라 도선의 행적을 더듬는 스토리텔링을 정리해 주목을 끌었다.
문상명 성신여대 교수는 "왕인에 대한 해석과 일제시기의 왕인현창, 왕인출생지에 대한 논란과 비판이 여전히 끊이지 않는 가운데 조선환여승람도 함께 거론되고 있으나 여러 논란이 간과하고 있는 질문은 '왜 영암일까'라는 것"이라면서, "유명한 산과 빼어난 경관을 지녔고, 도선국사가 탄생한 영암은 분명 왕인의 탄생지라 하기에 장소적 상징성이 충분했다"고 주장했다. 즉 "영암이라는 장소는 지역사람들과 지역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더해져 왕인을 탄생시킨 경관으로 해석되었으며, 조선환여승람 영암군 편에 성인이 탄생한 성기동(聖基洞)이라는 공간으로 탄생했다"면서, "왕인의 성기동이 맞는가보다는 왕인의 성기동 만들기가 더 가치있다"고 강조했다.
정성일 광주여대 교수는 "1927년 5월 간행된 잡지 <신민> 제25호의 '영암행'을 통해 확인된 사실에 의하면 그 전까지 영암지역에 전해지고 있었던 '왕인박사 영암 출생설'은 박정욱을 비롯한 영암군 공무원의 입을 통해 하산(霞山)이라는 외지인에 전달되고, 그것이 신민이라는 잡지에 실리게 된 것"이라면서, "당시 조선, 동아, 시대일보와 함께 <개벽>, <신민>이 잡지의 양대산맥을 이루던 시기여서 이를 계기로 왕인박사 영암출생설이 영암의 구림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 전국으로 확신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또 "<신민'은 <유도>의 후신이었다는 점에서 조선 유학자들에게는 꽤 널리 알려진 매체의 하나였던 점을 감안하면 유학자 이병연이 <신민>에 실린 왕인박사 영암출생설에 가까이 다가갔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사)왕인박사현창협회 전석홍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왕인박사가 영암 구림 출생이라고 적은 한국 최초의 기록물인 <조선환여승람>에 대한 사상 첫 본격적인 분석이 이뤄져 왕인박사에 대한 이해를 한층 깊게 하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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