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 의병장 양달사 장군 문헌집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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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 의병장 양달사 장군 문헌집 찾았다!

여지도서, 호남절의록 등 양달사 의병장 관련 기록 증거자료 발굴

1777년 전라도유생 444명이 관찰사에게 보낸 탄원서도 함께 찾아

조선 최초 의병장 양달사 장군 관련 문헌집이 발굴됐다. 양달사현창사업회(회장 장만채, 제16, 17대 전라남도교육감) 출범 3년여 만에 이룬 값진 성과다.
도포면 봉호리 양금호씨(전 주부공파종친회 회장)가 간직하고 있던 ‘주부공휘승조파(主簿公諱承祖派) 문헌’에는 1765년에 발간된 여지도서와 1797년 호남절의록에 실린 양달사 장군의 기록들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이 실려 있다.
고경명의 후손 고정헌이 편찬한 호남절의록에는 “참판 이기경(李基敬)이 전(傳)을 지었고 유선(諭善) 윤득부(尹得孚)가 묘지명을 지었으며 목사 임육(任■)이 행장(行狀)을 지었다.”고 돼 있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한꺼번에 세상에 나온 것이다.
끈질긴 노력 끝에 귀중한 자료를 찾아낸 양달사현창사업회 이영현 사무국장(소설가, 영암학회 회장)에 따르면 문헌집에는 이밖에도 1779년 황해도 관찰사를 역임한 전의(全義) 이기경이 쓴 양해남남암공전(梁海南南巖公傳), 도승지를 지낸 오연상의 묘갈명, 임연이 쓴 사장(事狀), 1777년 신사준이 쓴 유사(遺事), 홍문관 교리 기학경이 쓴 행록후서(行錄後序) 등도 함께 실려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문헌집 발굴의 가장 큰 성과는 양달사 의병장이 영암성 대첩으로 전라도민을 왜구의 칼날 아래서 구해냈음에도 도원수와 방어사 등이 의병이라는 이유로 일절 보고를 하지 않아 조정에서 아무런 포상을 받지 못했다면서, 전라도의 유생들이 300여년 동안이나 줄기차게 탄원서를 제출했음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종류별로는 1777년 2월에 도내 선비들이 관찰사에게 올린 탄원서가 1건(도내 유생 상순상서 道內儒生上巡相書), 나주 선비들이 관찰사에게 올린 탄원서가 1건(나주진사 오시유 등 상순상서 羅州進士吳時裕等上巡相書), 영암 선비들이 쓴 것으로는 군수에게 2건, 암행어사에게 1 건(본읍 유생 신창성 등 수의상서 本邑儒生愼昌晟等繡衣上書), 관찰사에게 1건(본읍유생 임소 등 상순상서 本邑儒生林蘇等上巡相書) 등이다.
특히 1777년에 전라도내 유생들이 관찰사에게 올린 탄원서에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라도 전 지역의 선비 444명이 이름을 올리고 있고, 이 탄원서의 대표도 나주 사람이라는 점이 눈길을 끌고 있다.
탄원서 주요 내용은 1555년 5월 25일 영암성 대첩으로 전라도를 왜구의 칼날에서 구해 낸 양달사의 위대한 공적을 기술하면서, 그럼에도 모든 공을 도원수 등이 가져가고 본인은 정작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했다는 점을 소상하게 기술하고 있다.
창우대를 등장시켜 경계가 허술한 틈을 노려 왜구를 섬멸했고, 을묘대첩 이후 영암향교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겼다는 것, 향교 앞 군더리 방죽(현 공설운동장)을 보면서 행인들이 양달사가 왜구를 유인해 죽인 곳이라고 늘 얘기한다는 대목, 청강 이제신의 시에도 기록되었다는 점 등을 증거로 제시하면서, 아무런 포상도 받지 못한 양달사 의병장이 너무 억울하다고 탄원하고 있다.
이처럼 전라도 선비들의 탄원은 대를 이어 줄기차게 이어지다가 1842년 전주향교에서 도내 각 향교에 보낸 통문(2021년 나주의병역사박물관에 기증)을 끝으로, 양달사 의병장은 1847년에 좌승지로 추증될 수 있었다.
이영현 사무국장은 “이번 문헌집이 원본이 아니라 1958년도 필사본이라는 점이 다소 아쉽지만, 그럼에도 1555년 을묘대첩 이후 전라도민들이 온힘을 다해 역사 속에 되살려 놓은 양달사 의병장이 조선 최초 의병장이자 호국 영웅이라는 점을 전 국민에게 분명하게 각인시킬 필요성과 당위성을 확보하게 되었다”고 이번 기록 발굴의 큰 의미를 강조했다.
이영현 사무국장은 그러면서 홍문관 교리 기학경이 행록후서의 한 구절을 소개했다.
“광명의 구슬은 물에 잠겨도 변하지 않고, 천지의 이치는 오래 막혔더라도 반드시 터질 것이니, 양달사공처럼 이전에 굴욕을 당했던 분이 결국 오늘날에 크게 알려질지 어찌 알았으리오?(光明之珠■水不■天下之理久鬱必伸安知若公者雖屈於前世而終必大伸於今日乎)”
장만채 회장은 “이번 문헌 발굴을 계기로 양달사 의병장에 대한 조정의 무관심에 전라도민들이 300여년 동안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해했었는지를 재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앞으로 조선 최초 의병장 양달사 장군이 전라도의 위대한 의병장이자 호국 인물로 추앙받을 수 있도록 영암군과 전남도, 정부의 특별한 관심과 지원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승범 기자 stonetig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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