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탉이 또 운다. 이불속에서 뭉기적거리는 사람들에게 어둠에서 일어나 새벽을 맞이하라고, 세상을 밝히는 저 햇살이 보이지 않느냐고 재촉하는 성 싶다.
수탉의 울음소리는 십 리 밖까지 들린다고 한다. 시골에서 살 때, 닭이 우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았다. 닭은 고개를 길게 늘이고 눈을 부릅뜨고 털을 곧추세우며 온 힘을 다해 운다. 저렇게 작은 몸에서 저토록 큰 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소리가 나온다. 혼신의 힘을 다해 울기 때문이다. 수탉은 일찍 일어나고 일찍 시작한다. 세상 어느곳이건 수탉은 저렇게 주인을 배반하지 않고 어김없이 새벽을 알린다.
7시 15분 출발. 나오면서 돈 넣을 곳을 찾아보니 문 옆에 철가방이 걸려있다. 구리로 만든 가방인데 가죽가방으로 착각할 만큼 정교하게 잘 만들어져 있다.
김 선생은 우체국에 가서 짐을 좀 부쳐버리고 천천히 따라 오겠다고 한다. 그동안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오느라 힘들었나 보다. 지금이라도 짐을 줄이겠다고 결정했다니 다행이다. 꼭 필요한 물건인 것 같지만 그것 없이도 걷는데 불편하지 않는 물건이 많다. 무거운 짐을 지고 힘들게 갈 것인가 짐을 줄여 가볍게 갈 것인가, 결국 선택의 문제다. 이 길을 걸어가면서 배우고 느끼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라농(Granon) 마을을 지난다. 여기서부터 리오하(Rioja) 지방을 벗어나 부르고스(Burgos) 지방이 시작된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전라도에서 경상도나 충청도 지역으로 건너간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이곳은 지방을 지나면 행정구역이 명확히 갈린다. 그만큼 각 지방의 독립성이 강하다는 얘기다. 이제부터 평원지대인 가스띠야(Castilla)가 시작된다고 안내서에 적혀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가지 않았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을 걷기 시작한다.
오늘은 1㎞마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각 지방 행정기관이 이 길에 대해 쏟는 정성에 비례해서 까미노에 대한 관리가 잘 되고 안 되고 하는 것 같다. 마을 벽에 "종훈&루리는 사랑한다", "윤주야 파이팅" 등 한국어 낙서가 보인다. 나도 김사장이 우체국에서 짐을 보내고 혼자서 걸어오는 길이 힘들 성 싶어 "요한 형제님, 힘내세요!"라고 한 마디 써 놓았다.
한 청년이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걸어가고 있다. 텐트, 취사도구 등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이름은 스반. 에스토니아 청년으로 32살이라고 한다. 지난해 10월부터 8개월 째 유럽 여러나라를 무전여행 하고 있다고 한다. 잠은 텐트에서 자고 음식은 끊여 먹고, 최소한의 교통비로 움직이고 있단다. 젊은 시절 저런 여행은 돈 주고도 못 사는 경험이다. 스반은 이후로도 여러 번 만나고 헤어지고 하면서 함께 걸었다. 생각해보면 이 길은 단순한 순례길이 아니다. 이 길이 중세에 유럽과 이베리아를 연결하는 굵은 동맥이었다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듯이, 천 년 동안 이 순례길은 각 국에서 온 사람들이 만나고, 역사가 만나고, 문화가 교류되는 소통의 길이 되고 있다.
들판이 끝나자 작은 언덕이 나온다. 구릉을 따라 밀밭 사이로 길이 나있다. 길을 따라 순례객이 띄엄띄엄 걸어가고 있다. 산천도 사람도 평화롭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분을 만났다. 프랑스에서 왔는데, 75세라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일부러 영어를 배우지 않을까. 파리의 몽파르나르 역에서도 경험 했고, 벌써 여러 명의 프랑스 사람을 만났는데 의외로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아까 만났던 스반이 길가에서 소변을 보고 있다.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 알아서 눈치껏 저렇게 볼일을 보아야만 한다. 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방법 그대로 순례객들이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셈이다.
빌로리아(Viloria)마을에 오니 아내와 발레리아 자매님이 점심을 먹으면서 기다리고 있다. 곁에 세파트 한 마리가 앉아있다. 먹을 걸 주었더니 또 주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건너편에 새로 온 사람들이 점심 먹을 기미를 보이자 그쪽으로 건너간다. 짐승이건 사람이건 편한 삶에 길들이면 저렇게 헤어나기가 어렵다. 거기에 안주하다보면 그 너머에 있는 세계를 바라볼 수 없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게 된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국가도 결국 내부의 적을 극복하지 못해 쓰러지는 경우가 대부분 아니던가.
길가 표지판에 누군가 덧 그림을 그려 놓았다.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낙서는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있는 풍경이다.
걸어가는 모습이 가지각색이다. 배낭도 가지각색이고, 바지도 가지각색이다. 그런데 지팡이는 모두 하나씩 가지고 있다. 가운데 사람은 침낭이 보이는데 오른쪽 사람은 침낭을 배낭 속에 넣어버린 모양이다. 내 배낭도 침낭을 배낭 속에 넣도록 되어 있었으니까.
오늘의 목적지 벨로라도(Belorado)에 도착. 마을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다. 알베르게에 태극기를 포함한 만국기가 펄럭인다. 김선생이 도착하기를 기다려 마켓을 보러 광장 부근까지 걸어서 내려갔다.
성당 꼭대기에 새 둥지가 보인다. 백로가 사는 집이다. 네 귀퉁이에도 하나씩 집을 지었다. 허긴 안전하기로는 성당 꼭대기만한 곳이 없겠다. 백로 한 마리가 마을을 빙빙 돌고 있다. 순례자를 환영한다는 의사표시일까.
성당 뒤편 바위 산 곳곳에 굴이 뚫려있다. 전쟁 때 천연 요새로 사용했는지 모르겠다. 자세히 보니 동굴 입구에 창문이 달려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길가에 '전사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프랑스 점령군에 맞서 싸운 스페인 의병들의 활약을 기록한 비이다. 이 지방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한 400여명의 의병을 기념하여 비를 세웠다는 내용이다. 이곳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던 모양이다.
한 때 세계를 재패했던 스페인. 그들은 많은 나라에 적지 않은 피해를 주었다. 1492년 콜럼버스의 지리상 발견으로 개척에 나선 스페인은 16세기에 브라질을 제외한 남미 대륙을 정복한다. 1532년 11월 16일,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168명의 스페인 군대는 남아메리카의 카하마르카에서 8만명의 잉카 군과 맞선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이 스페인 군은 7,000명이나 되는 원주민을 학살하고 잉카의 황제 아타우알파를 생포한다. 태어난 지 90년 밖에 안 된 제국의 싹을 싹둑 잘라버린 스페인의 행적을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그랬던 이 나라가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아 피해를 입은 역사의 흔적을 이곳에 기록해 놓았다. 물고 물리는 역사의 수레바퀴다.
장바구니를 들고 알베르게에 돌아오니 당나귀 한 마리가 막 도착한다. 등에 짐을 실었다. 당나귀를 끌고 온 마부는 벙거지를 썼다. 어느 깊은 산골짜기에서 내려온 모양이다. 당나귀는 풀어서 마구간으로 옮기고, 마부는 숙소로 들어간다.
저 마부는 자기 마을에 돌아가서 할 말이 오죽이나 많을까. “촌놈 장에 갔다 오면 이웃까지 잠 못 들게 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이웃들에 들려줄 말이 참 많을 것 같다. 내가 어릴 적 마을에서 서울 다녀온 사람을 빙 둘러싸고 신기한 얘기를 들을 때처럼, 동네 사람들이 마부를 둘러싸고 대처에서 보고 듣고 온 색다른 이야기를 밤 새워 들을 성싶다. 그나저나 이 나라에 아직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는 오지가 있나보다. 머잖아 저런 풍경도 사라져 갈 것이다. 날이 저문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