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건립 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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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건립 탄력

2024년 기본설계비 예산 국비 4억5천만원 확보 2027년 완공 예정

마한역사문화권 복원과 세계화의 중심이 될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가 내년 기본설계비로 국비 4억5천만원을 확보, 건립사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
문화재청은 지난 4월 공모를 통해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건립 후보지로 영암 나불도를 선정한데 이어 2024년 기본설계비 예산을 확보했다.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는 총사업비 400억원을 들여 아카이브와 교육·전시 시설 등을 갖추게 된다. 앞으로 마한의 역사·문화 복원과 정비사업을 추진할 핵심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전남을 비롯한 충청, 광주, 전북 등 여러 지역에 분포한 마한문화권의 유적·유물을 센터를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정비하게 된다.
전남도는 이와 관련해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의 핵심기능과 건립절차 등에 대한 모든 사항을 문화재청과 협의해 함께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남도 관계자는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가 건립되면 체계적이고 폭 넓은 마한역사 연구환경이 갖춰질 것으로 기대된다. 마한유적 발굴·복원·활용과 마한문화유산의 국가사적 지정 확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까지 적극 협력해 마한역사문화권을 세계에 알리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한편 전남도는 2012년부터 마한역사 가치 복원을 위해 마한유적 발굴·조사 및 국가사적 승격, 마한역사 정립 연구사업 등을 지속해 추진하고 있으며, 올해는 마한문화권 정비 중장기 계획(2024~2028년) 수립, 2023 마한역사문화 국제학술대회(11월) 개최 등을 통해 마한 역사의 세계화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영암 내동리 쌍무덤 시적지정 학술대회 오늘 개최
영암군·전남문화재단, 마한 전문가들 주제발표 및 종합토론

마한역사문화권의 대표 유적인 영암 내동리 쌍무덤의 국가 사적 지정을 위한 학술대회가 오늘 열린다.
영암군과 전남도문화재단 전남문화재연구소는 9월 15일 한국트로트가요센터에서 '영암 내동리 쌍무덤 사적 지정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영암군은 민선 8기 들어 '마한의 심장 영암'을 구호로 내걸고 마한역사문화권 구축을 위해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를 삼호읍 나불도에 유치했으며, '마한역사문화자원 개발 및 정비 지원에 관한 조례'도 제정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이를 토대로 전국의 마한 전문가들이 모여 그동안의 영암 쌍무덤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역사학과 고고학의 학제적 연구를 주제발표와 종합토론으로 집대성한다는 취지다.
제1부 주제발표에서는 한국고대사학회장인 정재윤 공주대 교수가 '영암 일대 고분군의 역사적 의미 - 내동리 쌍무덤을 중심으로'라는 주제의 특별강연을 하게 되며, 최영주 선문대 교수가 '영암 내동리 쌍무덤의 조성시기와 세력변동',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가 '백제의 마한 병합 과정과 영암 내동리 쌍무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오동선 교수가 '영암 시종면 일대 고분의 변천과 역사적 의미', 임동민 계명대 교수가 '바다를 통해 본 영암 시종지역 마한 소국의 변천'이라는 주제발표를 하게 된다.
이에 제2부 종합토론 시간에는 강봉룡 목포대 교수를 좌장으로 국민대 김재홍, 강원대 김규운, 충북대 전진국 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여해 주제발표자들과 종합토론에 나선다.
이번 학술대회와 관련해 우승희 군수는 "2018년부터 추진해온 영암 내동리 쌍무덤 관련 사업의 결실을 학술대회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2021년 이어 두 번째로 추진하는 학술대회가 쌍무덤 국가 사적 승격의 교두보를 마련해 영암의 역사·문화 자원이 전국 관광객의 사랑을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영암 일대 고분군의 역사적 의미 - 내동리 쌍무덤을 중심으로' = 정재윤 교수는 '영암 일대 고분군의 역사적 의미 - 내동리 쌍무덤을 중심으로'라는 주제의 특별강연을 통해 "내동리 쌍무덤의 역사적 의미는 지역 세력의 변화상과 백제의 영산강 유역 지배력 강화를 보여주는 유적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백제는 내동리 쌍무덤뿐만 아니라 삼포강 상류의 반남고분군, 영산강 중류의 복암리고분군 축조세력들에게도 위세품을 주면서 지배력을 강화했다. 내동리 쌍무덤을 거점으로 삼포강 상류와 영산강 중류에 대한 직접 지배를 시도한 것이다. 반남고분군 축조 시기는 연구자마다 이견이 있으나 대체로 내동리 쌍무덤보다 늦은 것으로 보고 있다. 순서상 내동리 쌍무덤 세력에서 반남고분군 세력으로 백제의 우대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백제가 상호 경쟁과 분열을 통한 지역의 장악력 확보를 도모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영산강 유역 세력의 동향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것은 백제와 왜의 통교, 그리고 고구려의 남하라는 변수였다. 고구려의 평양 천도로 이에 대비하려는 백제의 노력이 영산강 유역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이어 "대고구려 강경정권인 개로왕의 즉위와 461년 곤지의 왜 파견은 고구려와의 항쟁이 격화됨에 따라 영산강과 삼포강 하류 유역 세력의 지배력을 강화시키면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면서, 이는 "시종면 일대에서 세력 변화와 내동리 쌍무덤의 부상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 '영암 내동리 쌍무덤의 조성시기와 세력변동' = 최영주 교수는 '영암 내동리 쌍무덤의 조성시기와 세력변동'이라는 주제발표에서 "쌍무덤 1호분은 1단계는 5세기 중후엽경, 2단계는 5세기 말에서 6세기 전엽경, 3단계는 6세기 중엽 초반(530년 전후)으로 편년된다"면서, "내동리 쌍무덤의 조성 이전 양상을 보면, 시종면 일대의 정치체가 마한 소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제형분으로 정형화되고, 기존 목관(곽)묘를 대체해 옹관묘를 사용했으며, 남해만을 통한 선진문물의 수용과 교류 등 상호작용이 활발했다. 방형분·원형분 출현은 시종면 일대의 마한세력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과도기적인 모습이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또 "시종면 일대 지역 세력의 통합 양상은 옥야리 방대형고분, 내동리 쌍무덤 1호분의 조성으로 이해된다"면서, "양 고분에서 매장시설은 가야계, 고총고분 축조기술은 백제와 왜계, 분주토기는 왜계, 청자잔은 중국 등의 특징을 보인다. 이런 고분의 모습은 삼포천유역 중 시종면 일대 지역을 통합하고 성장하기 시작한 모습이 드러난 것으로 이해되며, 그 통합의 기반은 고분의 고총화(분구성토기술)와 다른 정치체와의 대외 교류관계를 통한 것으로 이해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역 통합을 기반으로 시종면 일대 유력세력은 다양한 선진문물의 수용과 변이가 용이하게 발생할 수 있는 남해만을 통해 5세기 후엽 이후의 주도권이 반남고분군 지역으로 바뀐 다음에도 내동리 쌍무덤 1호분에서 출토된 금동대관과 왜계 고분문화의 토착화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덧붙였다.
■ '백제의 마한 병합 과정과 영암 내동리 쌍무덤' = 이도학 교수는 '백제의 마한 병합 과정과 영암 내동리 쌍무덤'이라는 주제발표에서 "369년 백제는 남정을 단행해 금강 이남~노령산맥 이북 지역을 복속시켰다. 백제는 노령산맥 이남 영산강유역 제국 가운데 전략적 요지인 한반도 서남 모서리에 소재한 강자인 침미다례를 거칠게 제압했다. 이를 통해 경제와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지에 거점을 확보했지만 대부분의 마한제국은 공납적 지배로 남겨놓았다"면서, "이후 영산강유역의 주도 세력은 영암과 나주세력이었고, 영암지역 마한 세력은 염로국이나 아림국이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또 "염로국(아림국)의 정치적 거점은, 쌍무덤에서 600m 떨어진 시종중학교 뒤편 구릉 정상에 소재한 성틀봉토성으로 지목된다"면서, "토성의 조성 시기는 성 내부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현재로서는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으나 4세기 후반 이래 백제가 북방에서 고구려와 사투를 벌이는 틈을 타고 자립도를 높여갔음을 알 수 있고, 5세기 중엽 이후 영암지역에 거대한 방대형분이 조성된 배경이 된다"고 설명했다.
■ '영암 시종면 일대 고분의 변천과 역사적 의미' = 오동선 교수는 '영암 시종면 일대 고분의 변천과 역사적 의미'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서남해안지역은 5세기 1/4분기부터 왜계 고분이 해안을 중심으로 조영되기 시작한다. 서남해안의 내해인 남해포의 동편에 위치한 영암 시종면 일대는 해로를 통해 전남 내륙지역으로 접근하고자 할 때 가장 접근성이 좋은 지역이다. 이 일대는 옹관으로 대표되는 토착세력의 근거지이기도 해 토착문화의 기반 위에 외래문화를 수용하는 양상이 역력하다"고 보았다.
또 "백제는 이 일대를 순차적으로 장악하고자 했고, 여기서 이탈한 전통 토착세력들은 반남지역으로 이주 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시종면에 남은 토착세력들은 묘제에 변화를 주는 방식으로 백제와의 관계를 드러냈지만, 나주 다시면 일대의 지정학적 위치가 더 높은 상황에서 시종면 일대는 도태되기 시작한다. 쌍무덤 조영 세력은 상층 매장시설과 주구의 자라병을 비롯한 형상 하니와가 출토되는 상황으로 보아 왜와 의 관계에서 특화된 것으로 그 성격을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거점지역으로 나주 다시면이 각광을 받으면서 여기에서 벗어나 있는 나주 반남, 영암 시종, 무안 청계 지역에는 일시적인 자율성이 높아지게 됐고 이 과정에서 기형의 일원화와 분구의 고총화가 진행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 '바다를 통해 본 영암 시종지역 마한 소국의 변천' = 임동민 교수는 '바다를 통해 본 영암 시종지역 마한 소국의 변천' 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5세기 무렵 고고학적으로 영산강 유역에서 주목되는 곳은 영암 시종지역이었다"면서, "시종지역의 세력은 내동리 쌍무덤의 피장자를 중심으로 내동리와 옥야리 일대의 여러 고분군을 조영했다. 고대의 시종지역은 주룡진과 몽탄진 사이의 광활한 남해만 동쪽에 있던 연안지역이었다. 또 영산강 내륙수운과 연안항로의 결절점이자, 영산강 본류와 지류를 모두 조망할 수 있고, 항해 방해요소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곳이었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이어 "영산강 유역 세력들은 가야, 왜 등과 다원적인 해양교류를 지속해 5세기 영산강 유역은 지배체제를 정비하려는 백제의 의도와 다원적 교류와 독자 문화를 유지하려는 영산강 유역 정치체의 의도가 공존하는 시공간이었다"고 보았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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