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엘 부르고(El Burgo Ranero(Leon))서 만실라(Mansilla de las Mulas)까지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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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21>엘 부르고(El Burgo Ranero(Leon))서 만실라(Mansilla de las Mulas)까지 18.7㎞

"하루살이 벌레와 한해살이 풀꽃이 인간을 가르친다.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살라고…"

그런데 화장실과 샤워실이 남녀 공용이다. 오늘 좀 힘들게 되었다. 알베르게는 대부분 툭 터진 공간이어서 프라이버시가 없다. 옷을 갈아입을 마땅한 장소도 없고 오늘처럼 화장실 샤워실이 공용일 때도 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모두들 알아서 요령껏 옷을 갈아입고, 순서를 기다려 화장실과 샤워실을 이용할 수밖에.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보면 또 환경에 적응하여 그러려니 무디어지게 된다. 인간에겐 그렇게 무엇에나 적응하는 능력이 주어진 모양이다.
이곳 공립 알베르게에서 영어와 한국어로 인터넷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오랜만에 미국 아이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뉴스도 살펴보았다.
시늉만 되어 있는 부엌이지만 밥을 끓여 먹을 수 있는 설비가 있고, 물이 나오니 됐다. 그것조차 되어 있지 않아 물을 끓여 차 한 잔 만들어 먹지 못한 곳도 있었으니까.
샤워를 끝내고 알베르게 앞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데, 목동이 양떼를 몰고 간다. 열대여섯 마리쯤 되어 보인다. 동네주변까지 양을 데려와 풀을 먹이는 걸 보니 들판에 풀이 많지 않은가 보다. 중세 때 이지역에서는 양떼가 엄청나게 많아 농사를 짓지 못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양모를 모아 수출하던 때의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은 농업의 모습이 바뀌었다. 땅은 경작지로 바뀌고 양떼는 저렇게 빈터를 찾아 풀을 뜯기고 있다. 시대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이 바뀐다.
#5월 14일 18일째 맑음
잠결에 일어나 어둠 속에서 주섬주섬 양말을 찾아 신는다. 얇은 양말을 안에 신고 두꺼운 양말을 포개어 신는다. 발에 물집이 덜 잡히는 것은 두 겹으로 양말을 신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6시50분 출발. 오늘은 만실라(Mansilla)까지만 가기로 합의했다. 큰 도시인 레온(Leon)까지 40㎞ 가까운 거리를 걸어가는 게 무리이니 두 번에 나누어 가자는 의미다. 지평선에서 해가 떠오른다. 저녁이면 다시 지평선으로 넘어갈 터이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농부가 트랙터를 몰고 간다. 아스팔트길 옆으로 순례자길이 어제처럼 나란 나란히 뻗어있다. 벌판 가운데 허물어져 가는 집터의 흙담이 햇살을 받아 더욱 붉다. 멀리 들판 가운데 고속도로 위로 만들어진 교량이 보인다.
길가에 서있는 순례자비는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이름도 날짜도 흐물흐물 닳아서 보이지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이 길을 걸어가다 숨졌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간명하게 전해주고 있다. 실은 그것이 우리에게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름을 남기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이지만, 그것은 또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을 우리가 몇이나 기억하고 있는지, 우리 조상의 이름조차 우리가 몇 분이나 기억할 수 있는가 생각해보면 대답은 명확하다. 어제가 아닌 오늘, 내일이 아닌 오늘, 지금 이 시간이 소중한 이유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저 건너 들판 풀숲 우거진 물웅덩이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새벽부터 어디를 그리 바쁘게 걸어가느냐고 말을 건네온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옛날 우리 시골에서 많이도 들어봤던 딱 그 소리다. 사람들은 나라가 달라지면 제각기 다른 언어로 소통을 하지만 개구리는 저렇게 어디서나 한 가지 말로 생각을 전해준다. 개구우르르, 개구우르르, 녀석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어느새 고향으로 돌아가 삽자루를 들쳐 매고 잠삭골 서말갓지기 논배미를 지나가고 있다.
앞장서 가는 순례자 배낭에 조개껍질이 달랑거린다. 산티아고에 무사히 도달하도록 야고보 성인께서 도와주기를 기원하는 상징이다. 나도 두 개를 달았다. 하나는 내 몫, 또 하나는 아이 몫이다. 옛날 이 콤포스텔라를 순례한 사람들은 죽을 때 자신들이 가져온 조개껍질과 함께 묻어주기를 바랬다고 한다. 그것을 근거로 학자들은 어느 지역에서 콤포스텔라까지 여행한 순례자의 수를 추정 한다고 했다. 교통이 불편한 그 옛날 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웬만한 각오가 없이는 불가능했을 터이다. 목숨을 걸고 이 길을 걸었던 사람들에게 조개껍질은 정신적으로 큰 위안을 주었을 것이다.
수로 공사를 하고 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밭고랑 사이로 저렇게 물이 콸콸 흘러가고 있는데 큰 물줄기가 또 필요한가 보다. 농사지을 땅이 이렇게 넓고 물이 충분하니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겠다. 그런데 보도에 의하면 요즈음 스페인의 경제가 매우 좋지 않다고 한다. 다른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드넓은 벌판에 말 몇 마리가 풀을 뜯고 있다. 땅이 너무 커 주체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저 넓은 땅에 쉴 틈이 없도록 온갖 작물을 다 경작 할텐데...아깝다.
식전 30리라더니 새벽에 일어나 30리 길을 걸었다. 레리고스(Reliegos)라는 자그마한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있는 작은 바에서 커피 한 잔과 빵으로 요기를 했다. 만실라가 여기서 시오리 남았으니 오늘 일정은 여유가 만만하다. 간혹 이렇게 몸을 쉬어줄 필요가 있다.
배낭을 둘러매는데 독특한 집이 길 건너편에 보인다. 앞쪽은 일반 건물인데 꽤 깊어 보이는 뒷부분에 환기통 두 개가 흙으로 덮인 지붕을 뚫고 밖으로 나와 있다. 창고인지 주거지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 지역의 오래된 가옥 형태인가 싶다. 강원도 건봉사에서 뗏장으로 지붕을 이은 건물을 본 적이 있고, 강원도 인제 평화마을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았다. 오랜 옛날에는 어디서나 저런 형태의 가옥으로 비바람을 피했을 성 싶다.
지나가는 자동차가 '빠-ㅇ'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격려의 뜻이다. 저렇게 타인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걸어서 종단을 할 때도 저렇게 경적을 울려 힘내라고 응원해 주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여행자는 길에서 다시 태어나야한다고 소로우는 말한다. 많은 여행자들이 길에서 다시 태어난다. 여행이 주는 신비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작은 풀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벌판을 바라본다. 이름 모를 꽃들이 조화를 이루며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별을 쏟아 놓은 것 같다. 가까이 다가가 허리를 굽히고 가만히 바라본다. 가벼운 바람에 꽃잎파리가 바들바들 흔들린다. 미세한 저 떨림을 보라.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온다. 손톱만한 작은 풀꽃이 나그네에게 미소를 건넨다. 나도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며 마주 웃는다. 웃음과 미소가 마주치는 곳에 불꽃이 튄다. 사랑의 불꽃이다.
한해살이 풀꽃이 보여주는 웃음이 맑고 순수하다. 바람이 불어오자 마지막 인양 허리를 굽혀 인사를 건넨다. 저들이 혼신을 다해 순간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이 멀지 않기 때문이리라.
어디서 날아왔는지 하루살이 벌레가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하루살이 벌레는 하루가 평생이기 때문에 어제와 내일을 모른다. 그래서 오늘을 온전히 살아내고 한 생을 마감한다. 한해살이 풀꽃도 평생이 짧기 때문에 저렇게 꽃이 피어있는 동안 마주하는 것들을 위해 제 모든 것을 남김없이 내주고 있다.
지금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심정으로 산다면. 그때마다 멈춰 있던 심장이 뛴다. 마지막 느낌으로 만나는 세상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그렇게 만나는 사람이라면 또 얼마나 귀하고 사랑스러울 것인가. 과거와 미래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현재'에 몰두하면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하루살이 벌레와 한 해살이 풀꽃이 주는 가르침이다.
저기 피어있는 풀꽃도 길을 걸어가는 사람도 하나의 생명이다. 이 길을 걸으면서 생명의 신비를, 존재의 소중함을, 살아있는 것의 아름다움을 깨닫는다. 저것들과 내가 함께 존재함으로써 세상이 살만한 가치가 있게 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그래서 이 길은 은총의 길이 되고 있다. 어디 살아있는 것 뿐이겠는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로 얽혀 서로가 서로에게 귀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만실라(Mansilla de las Mulas) 이정표가 보인다. 높다란 돌담이 허물어져 있고, 그 사이로 길이 나 있다. 저 벽은 또 몇 년이나 되었을까.
시내 중심가에 장이 섰다. 잠자리를 먼저 정해놓은 다음 장을 보기로 했다. 알베르게를 찾아갔더니 아직 문을 열기 전이어서 순례자들이 도착한 순서대로 배낭을 내려놓고 기다리는 중이다.
이곳 알베르게 숙박료는 5유로다. 침대 한 칸 빌리는 값이다. 숙소를 정한 다음 장터로 나갔다. 한국의 시골 장터와 비슷하다. 사람들이 장터를 메우고 있다. 히잡을 쓴 여인도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장을 보고 있다. 이슬람과 기독교가 공존하고 있다.
바나나 사과 오렌지를 비롯한 과일은 물론, 상치나 파 고추 야채 모종을 파는 가게가 보인다. 이름 모를 모종도 있지만 대부분 한국에서 보았던 것들이다. 꽃 가게, 감자나 양파, 하몽을 걸어놓은 고깃간도 한 켠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도시의 번듯한 마켓보다는 시골장터가 사람들의 구수한 냄새가 있어 푸근하다. 싸고 좋은 먹거리를 풍성하게 사 왔으니 오늘 저녁 식탁은 물어볼 필요도 없이 푸짐할 것이다.
오늘은 샤워장이 남녀가 구분 되어있다. 샤워 하러 간다면서 아내가 지갑을 맡긴다. 어떤 분이 산티아고 길에서 물건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냐고 물은 적이 있다. 특정 구간에서 어떤 남자가 순례자로 가장하여 여자를 유혹했다던가 하는 얘기를 책에서 읽어본 성 싶다. 그렇지만 물건이나 돈을 잃어버렸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를테면 일행이 있으면 필요할 때 서로 지갑을 맡겨놓을 수 있겠지만, 혼자 걷는 경우엔 어떻게 하는지 사실은 잘 모르겠다.
18세기 중엽 이 길을 걸었던 니콜라 알바니(Nicola Albani)가 쓴 안내서를 보면 그 당시는 카미노를 따라 숙소에 진을 치고 있는 가짜 순례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순례자 뿐만 아니라 순례자의 주머니를 노리는 못된 여관 주인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적어도 내가 느끼고 경험한 바에 따르면 그런일은 없다. 순례자들이 그런 못된 짓을 할 리가 있겠는가.
오늘 저녁 숙소는 6인실이다. 불란서에서 왔다는 흑인 부부와 함께 보내게 되었다. 부엌에서 음식 준비를 하는 중에 그들을 만났는데 남자의 생선 다듬는 솜씨가 프로급이다. 저녁 식사에 먹고 남은 건 냉장고에 두었다가 아침에 끓여 먹고 출발하겠단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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