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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영암군에서 발간한 「일제 강점기 영암군 현황 및 독립운동사」를 보면 1894년 갑오개혁과 더불어 소학교령(小學校令)이 공포되면서 영암공립보통학교가 1908년 4월 1일 인가되어 6월 11일에 문을 열었다. 1917년 4월에는 군서 구림공립보통학교, 1921년 1월에는 삼호 서창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다른 면들에서 보통학교 설립이 줄을 잇자 도포(당시 북일종면) 면민들은 마음이 급했다. 우선 유지 몇몇이 부지를 희사하고, 단촐하게 사설강습소부터 열기로 했다. 인구가 많은 도포리에 세울 것인가, 도포면 중심인 학송리(현 서리)에 세울 것인가를 놓고 논란을 벌이다 1922년 도포리 도포와 학송리 구학에 각각 강습소를 열었다. 민족의식에 눈을 뜨려면 일단 배워야만 했고 독립운동가 조극환 선생 등은 수시로 와서 강연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때 이미 타 지역은 보통학교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1923년 2월에는 신북, 1924년에는 금정과 서호 장천에 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도포면민들은 애가 탔다. 보통학교에 자녀들을 보내고 싶었으나 사설강습소도 통합하지 못했던 처지라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중 시종공립보통학교가 1925년 개교를 목표로 인가 신청을 냈다. 이제 보통학교가 없는 곳은 덕진, 학산, 미암, 도포 등 네 개 면이었는데, 덕진에서는 영암공립보통학교로 아이들을 보내고, 미암과 학산은 공동으로 학산 독천에 보통학교 인가 신청을 냈다는 소문이 들렸다. 영암군 11개 면에서 이제 도포면만 보통학교가 없는 문맹 지역으로 전락할 위기였다.
부랴부랴 도포와 구학 강습소 유지들이 한 자리에 다시 모였다. 두 강습소를 합하여 현 도포초등학교 부지에 도포공립보통학교 인가 신청을 하기로 겨우 합의했다. 하지만 인가 신청서를 접수하는 과정에서 교사(校舍) 신축과 운영에 필요한 소정의 기부금 등의 증서가 첨부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인가 신청서에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증명서를 첨부하라는 것이었다. 일제(日帝)는 1면1교(一面一校)를 원칙으로 문화정책을 펴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었지만 자부담 능력이 없는 면에는 인가를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도포면민들에게는 그만한 자금이 없었다. 유지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으더라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그렇다고 자녀들의 앞날을 포기할 수는 없는 터, 백방으로 방안을 강구하던 유지들은 마침 영암의 대지주인 일본인 병두일웅(兵頭一雄, 효도카즈오)이 해창에서 배날리까지 간척지 허가를 따냈다는 소문을 접했다. 병두일웅의 간척지 제방공사에서 품팔이를 하기로 면민들과 의견을 모았다. 물막이공사에 인부로 참여하여 그 수익금으로 학교 인가 신청서를 다시 제출하기로 했다. 자금이 마련될 때까지 모든 면민이 참여했다. 작업은 1925년부터 매일같이 반복되었다. 아침부터 해가 저물 때까지, 뙤약볕이나 한겨울 눈보라 속에서도 작업은 멈추지 않았다. 큰 돌은 손수레와 우마차, 목도로 운반했지만 대부분 지게 부대였고, 때로는 남정네 대신 아낙네들이 흙과 돌자갈을 머리에 이고 날랐다. 도포면 역사상 가장 서러우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정경이었다.
그렇게 2년여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을 한 끝에, 1927년 7월 17일자 조선일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전남 영암군 북일종면에서는(중략) 일본인 병두일웅(兵頭一雄) 씨의 제방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여 교육 성금을 내기로 하였다. 수익금을 공립보통학교 기금으로 하자는 결의를 실행한 바, 저축한 금액이 1천2백원에 달하였고, 이를 기금으로 하여 우선 2학급 4년제로 수업을 하기로 도 당국에 신청한 바, 지난 7월 13일 인가가 나서 9월부터 개학하기 위해 현재 덕화리에 교사(校舍)를 건축 중이라고 하더라.”
그토록 갈망했던 도포공립보통학교 인가서가 나온 것이다. 면민들의 땀과 눈물로 이루어진 값진 성과였다. 다함께 얼싸안고 만세를 불렀고, 사설강습소에서 밤늦도록 공부하던 아이들은 그제야 어깨를 펴고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교원 수는 일본인 1명에 조선인 1명, 학생 수는 99명이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 하나, 도포초등학교에서는 개교기념일을 처음 인가를 신청했던 1925년 4월 1일로 적었다. 학산보다 늦게 인가되었지만, 학교에서는 면민들이 품팔이에 나선 날을 기념일로 정했다.
부모님들의 숭고한 얼을 이어받아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 다시 뭉친 면민과 도포·수산·도신 동문들, 금년 기념 행사를 계기로 폐교 위기에 처한 도포초교가 힘차게 일어설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