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을 종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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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산로에서

윤석열을 종식하라!

영암성대첩기념사업회 연구위원 조정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아름다운 한 문장이 온 국민의 가슴에 메아리친다. “주문 피청구인 윤석열을 파면한다.” 그가 대통령이 된 순간부터 너무나 간절히 바라왔던 순간이다. 윤석열은 내란을 유발한 친위쿠데타를 일으켰는데 만약 12·3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구한말 수많은 의병, 3·1 만세운동을 기반으로 수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위해 이름 없이 사라져간 독립투사들, 48년 제주 4·3항쟁, 48년 여순항쟁, 60년 4·19혁명, 64년 6·3항쟁, 70년 전태일 분신, 79년 부마항쟁, 80년 5·18 민주화운동, 87년 6·10 민주화운동, 2016~17년 촛불혁명 등으로 이어왔던 대한민국 민주화의 역사는 하루아침에 잿더미 속에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2022년 3월 9일은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선출하는 날이었다. 유권자가 가장 많은 수도권의 여론이 계속 불리하다는 전황이 돌면서 지방유세는 취소되고, 수도권 일정 중심으로 선거유세를 지속하였다. 그런데 민주당에 확고한 지지를 보여주었던 호남의 유권자들도 흔들리고 있었다. 이른바 비명계의 이재명 흔들기가 호남에서 먹히고 있었다. 거기에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와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 부동산 거품이 급속히 꺼질 것이라는 찌라시발 소문에 이른바 기득권의 이기주의는 반 이재명으로 뭉치고 있었다. 부촌(富村)이라는 광주광역시 모 투표소에서 윤석열은 39.11%를 득표했다.

0.73%라는 사상 초유 박빙의 패배 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물론 너무나 뻔하게 보이는 대한민국의 암울한 미래였다. 그리고 아쉬운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수도권 집중을 위해 취소했던 지방 일정을 그대로 강행했더라면? 실제 이재명 흔들기에 우리 지역인 호남도 여론이 요동치고, 거기에 혈연관계로 묶인 사람들까지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 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박근혜가 얻은 10.5% 보다 더 많은 13%를 윤석열에게 내주었다. 호남권에서 17대 이명박에게 채 9%도 되지 않은 표를 주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표를 몰아준 것이다. 지역의 보수화도 원인이겠지만 무엇보다도 민주당 내부의 반 이재명 정서의 영향이었다.

이제 윤석열의 시대는 지났다. 기성세대보다 더 멋지게 성장한 젊은 세대의 지치지 않은 열정으로 이뤄낸 ‘빛의 혁명’이 새로운 민주주의를 꿈꾸게 하였다. 차기 대통령 선출을 위한 일정도 잡혀있다. 윤석열이란 큰 산불은 파면으로 진압하고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수많은 잔불이 여기저기서 바람이 일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다. 한평생 기득권에만 빌붙어 살다 그들을 옹호하며 이곳저곳에 알박기하는 내란 옹호세력들이 여전히 권력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박근혜 파면 후 큰 잡음 없이 대선을 치를 수 있었던 때와 다른 모양새가 전개되는 이유가 있다. 8년 전 정권교체는 기득권 그들이 탄핵에 앞장서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합의된 구조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그러한 구조가 없으므로 정권교체가 된다면 그들이 누렸던 거의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음을 동물적 본능으로 감지하여 그들의 기득권을 위하여 온몸으로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기득권 세력을 누르고 진정한 민주주의로 향하는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 멀지 않은 역사에서 한 예를 찾는다. 열두 차례 이상의 군사쿠데타를 겪었던 태국은 1992년 선거에서 군부독재에 맞서 중산층 기반의 민주당이 집권하면서 민주주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재앙이 드리웠던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민주당은 대중의 지지를 잃었고, 비즈니스 거물인 탁신 친나왓이 조직한 타이락타이당이 2001년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많은 논란에도 탁신 총리는 도시의 중산층보다는 가난한 농촌 지역을 겨냥한 정책을 펼쳐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다. 빈곤층을 위한 탁신 총리의 개혁으로 태국의 빈곤율은 크게 개선되었고, 불평등 수준도 완화되었다. 군부 쿠데타로 2007년 탁신은 쫓겨났지만, 이후 새로운 선거에서도 탁신의 연합 세력이 승리하였다. 탁신과 그의 연합 세력들의 10여 년 집권으로 국가 경제는 안정되고, 태국 민주주의는 성숙해지는 듯하였다.

그러나 중산층에 해당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중심이 되어 2013~2014년 거리로 뛰쳐나와 반정부 시위를 시작하였다. 거리로 나온 교육수준이 높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방콕의 엘리트 집단은 태국 사회 내의 권력과 돈의 균형점이 점차 자신들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점에 분노하였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태국의 엘리트들이 성숙해지는 민주주의에 반감을 드러낸 것은, 그들이 가진 기득권을 뺏길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014년 탁신의 여동생 잉락 친나왓 총리가 새로운 선거를 선언했을 때 민주당 중심 세력은 선거를 보이콧하였다. 그리고 과거 군부 쿠데타에 맞서 일어섰던 민주당은 2014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그들을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이후 군부가 이끄는 행정부에 참여하였다. 태국에서 민주주의를 처음 외쳤던 엘리트 세력은 탁신 총리 이후 10여 년 동안 꽃피웠던 태국 민주주의에 등을 돌렸고, 태국은 다시 군부독재가 지배하는 국가가 되었다.

대한민국 민주당도 태국 민주당의 전철(前轍)을 밟을 뻔하였다. 검찰개혁을 위한 검·경수사권 분리 법안을 만들어두고도 마지막에 그 법안 상정을 막았던 민주당 내 세력, 지난 대선 당시 비명계를 중심으로 대선주자 이재명을 지원하지 않았던 민주당 내 세력, 국회에서 이재명 당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하여 당 대표를 구속 직전까지 몰아갔던 민주당 내 세력, 윤석열 파면 이후 당의 본류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민주당 내 세력, 그들은 바로 태국 민주주의를 다시 군부독재로 되돌린 태국 민주당 엘리트와 거의 비슷한 세력일지도 모른다.

윤석열을 종식하는 길만이 오직 대한민국을 다시 새롭고 확고한 민주주의 국가로 세울 수 있다. 긍정적인 점은 윤석열을 통해 드러난 대한민국 엘리트의 ‘파시즘’이란 생생한 민낯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윤석열을 위시한 엘리트 파시즘을 종식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민주당 경선을 통해 결정된 후보를 중심으로 하나 되어 민주당 정권을 되찾아 온 후,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헌법 질서를 파괴한 그들에게 법 규정에 따라 반드시 합당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2의 윤석열’은 또다시 ‘민주공화국’을 위협할 것이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키워드 : 12·3 쿠데타 | 윤석열을 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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