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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열고 네, 다섯 발 걸음을 옮기면 몇 개씩 심어 놓은 고추, 가지, 오이, 토마토, 호박 등이 잎에 이슬을 머금고 푸르름을 뽐낸다. 화분에 심어진 아마릴리스, 으아리, 고광나무, 세이지, 제라늄, 난타나 등이 어떤 이는 주렁주렁 열매로, 어떤 이는 곱디고운 색깔로, 어떤 이는 진한 향기로 활짝 웃으며 주인과 아침 인사를 나눈다. 벌써 벌들도 부지런한 녀석들은 활동을 시작한다.
조금은 이른 시간이지만 누렁이들 아침을 주려고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축사로 나간다.
불을 켜자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녀석, 네 다리 활짝 펴고 기지개를 켜는 녀석, 고개만 치켜 들고 눈만 깜박거리는 녀석, 일어서자마자 가스를 품어대는 녀석, 한 번에 일어나지 못해 몇 번의 구르기를 한 다음 힘겹게 일어나 엉거주춤 서는 우량아, 저마다의 모습으로 녀석들이 동그랗고 선한 눈망울을 굴리며 애미를 쳐다본다. 900kg은 족히 나갈 것 같은 0563은 구르기를 몇 번해도 일어서지 못한다. 축사에 들어가 등을 몇 번 토닥여주니 다시 준비운동을 서너 번 한 다음 겨우 일어선다. 이름(耳表)을 부르며 “잘 잤냐? 그래 잘 잤어? 밥 줄게. 밤새 잘 자고 건강하게 아침을 맞아 나도 너도 고맙다.” 누렁이들과 아침 인사를 하며 축사를 둘러본다.
생산 예정일이 지난 어미소가 생산은 하였는지, 송아지가 설사나 기침은 안 하는지 살피고 밥 줄 먹이통을 깨끗이 쓸어내고 밥 줄 준비를 한다. 사료포대 찢는 소리에 살며시 일어나 먹이통으로 고개를 내미는 녀석, 고개를 내미는 것도 부족하여 오물 묻은 앞발 하나를 깨끗이 쓸어놓은 먹이통에 내놓고 금방 나올 듯 애미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녀석, 큰 키로 날 위협이라도 하려는 듯 양다리로 먹이통을 딛고 서서 머리를 높이높이 치켜드는 녀석, 고개를 연신 흔들어대면서 다른 녀석이 옆에 오지 못하도록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밥 주기를 기다리는 녀석, 기껏해야 32㎡ 안에서 움직일 수 있는데 애미 가는 쪽으로 졸졸 쫓아 다니다 옆 우방에 막혀 더 이상 쫓아 다닐 수 없으면 소리 지르며 밥을 재촉하는 녀석, 각양각색으로 애미에게 배고픔을 알린다. 또한 순한 녀석은 자리싸움에 밀려나 저만치 뒤로 서서 너희들 먹고 남기면 먹겠다는 듯 가여운 눈빛으로 애미를 쳐다본다. 어쩜 우리네 사는 모습과 흡사해 미소 짓게 한다.
누렁이들과 함께 하면서 동물(인간)의 본능을 이해하게 되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0563이 일어나지 못할 때 밥 주는 애미의 자리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녀석의 등 뒤에서 등을 두드려주니 몇 번을 구르다 일어섰듯이 오늘 아침에 0563이 내게 말한다. “내게 했던 것처럼 어려운 이웃에게 작은 마음이라도 보태면서 살라고......”
밤사이 살포시 풀잎에 내려앉은 이슬과 주렁주렁 달린 채소와 물만 주면 향기를 뿜어주며 활짝 웃으면서 인사하는 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마음이 힘들 때 누렁들을 돌아보고 녀석들의 이름을 부르며 잠에서 막 깬 각각의 모습들을 생각하면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나를 행복하게 한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