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는 원로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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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는 원로가 있어야 한다

손태열 영암발전희망연대 회장
여론이란 지역이나 다양한 계층의 구성원들이 제시한 의견 중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인정되는 의견을 말하는데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 처녀들의 속삭임, 아낙네들이 빨래터에서 방망이를 두들기며 주고받는 마을의 떠도는 소문, 시골 마을 사랑방에서 새끼 꼬며 나누는 농사꾼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 지체 높은 양반들이 사랑채에 모여 앉아 나누는 고담준론(高談峻論) 등이 여론의 진원지로서 주로 대면을 통해 여론이 형성되었다. 최근에는 통신수단의 발달로 신문, 방송, 유튜브, 카톡, 페이스북, 등 미디어와 SNS 매체가 여론의 진원지 역할을 하게 되었지만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여론의 진원지는 시골다방이었다. 출입한다고 하는 지역유지들이 옛날식 다방에 앉아 계란 노른자를 띄운 국적 불명의 모닝커피, 한약 냄새 물씬 풍기는 쌍화차 한잔을 마시면서 동네 정보를 교환하고 행정을 비판하고 읍면정을 쥐락펴락하면서 여론형성을 주도했고 읍면장들은 수시로 다방을 출입하면서 이들의 여론에 귀 기울이며 읍면정을 이끌었다.

필자가 영암군청에 근무할 무렵 영암군 여론의 진원지는 영암읍 동무리 삼거리에 있는 ○○약국이었다. 영암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매일 ○○약국에 출근해 박카스 한 병씩 나누어 마시면서 군정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평가하면서 군수를 들어 올렸다 내렸다 했다. 당시는 관선 군수 시절이라서 지역 실정을 잘 알지 못하는 임명직 관선 군수는 군정을 잡음 없이 원만하게 이끌어야 다음 영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약국 정보센터(?)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지역의 유지들도 관선 군수의 이러한 약점을 알고 군정의 주요 이슈에 대해 군정 흔들기를 했다. 당시 ○○약국 정보센터의 정보력은 상상을 초월해서 아침에 군수실에서 간부 회의가 열리면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회의에서 논의되었던 사안들이 실시간으로 전달될 정도였다. 이들의 영향력도 대단했다. 지역의 어려운 민원 해결은 이들의 협조가 필요했고 군정의 주요한 사업결정도 이들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다. 군청직원들도 이들의 입살에 오르내리게 되면 좋을 것이 없으므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지역유지들의 이러한 여론형성은 토호세력들의 이기적인 행위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지방의회가 개원되지 않아 군정을 견제할 수단이 없었던 관선 군수 시절에 군정을 견제하고 관선 자치의 특성상 자칫 무사안일 행정으로 흐를 우려를 해소하는 긍정적인 기능이 있었다. 따라서 당시에 이들은 사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원로로서 권위를 갖고 지역의 현안 사항에 대해 바른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지역민들의 여론을 가감 없이 군수에게 전달하는가 하면 지역갈등을 조정하는 원로의 역할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지역에서 바른말 하는 원로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시대 흐름의 변화로 지역원로의 역할이 축소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민선 자치가 시행되면서부터 지역원로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고 본다. 선거로 자치단체장을 주민들의 손으로 직접 선출하는 민선 자치는 자치단체장의 임기를 보장해 주고 보장된 임기 내에 군정을 안정적으로 이끌도록 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선거에 기여한 측근들이 자치단체장의 주변을 싸고돌면서 용비어천가 여론만 전달하고 자치단체장은 보장된 임기에 안주하면서 지역민들의 여론 수렴을 소홀히 하여 군정이 선거에 승리한 그들만의 리그로 운영되는 폐해가 나타나다 보니 원로들의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시대적 상황은 바뀌었지만, 일방통행식 막힌 행정이 아니라 주민과 소통하는 열린 행정을 펼치기 위해서는 바른말 하는 원로가 있어야 한다. 군정을 견제하는 의회가 있다고 하지만 이들 역시 선출직으로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제도적인 한계가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정론·직필로 지역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살아있는 지역 언론, 정치적 편향에서 벗어나 지역의 주요 현안에 대해 사심 없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시민단체, 그리고 인품과 덕망을 갖춘 지역원로들이 지역사회의 여론을 컨트롤 하면서 지역민들의 역량을 하나로 모아 갈 때 우리 지역은 더욱 건강한 사회로 발전하리라 생각한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키워드 : 주민과 소통하는 열린 행정 | 지역원로들 | 영암군 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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