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집합소로 이용… 마을민 구심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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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학·집합소로 이용… 마을민 구심체

영팔정(詠八亭)

지정번호 : 지방기념물 제105호
소재지 : 신북면 모산리 403
규모 : 정면 3칸,측면 2칸 팔작지붕
시대 : 조선시대(1406)
지정년월일 : 1987년 1월 15일
영팔정은 조선초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하정 류관(1346∼1433)이 모산리의 지세와 경관이 좋아 세거지로 택하고, 그의 아들 맹문에게 명하여 태종 6년(1406))에 건립한 정자이다.
류관은 조선 개국공신으로 예문관 대제학이 되어 ‘태조실록’을 편찬하는데 참여했고, 1424(世宗)에 ‘고려사’를 찬진하였으며 청백리에 선정된 인물이다.
초창 당시의 이름은 나주목사 류두명이 마을 이름인 모산(茅山)의 ‘茅’자와 류관의 호인 하정(夏亭)의 ‘亭’자을 따서‘茅亭’이라 칭하였다.
그 후 율곡 이이(1536∼1584)가 이곳에 와서 류관의 학덕을 기리면서 주변경관을 팔경시로 읊었으며, 그 뒤에 고경명·남이공·류상운 등이 팔경시를 연작하였던 곳이라 하여 ‘영팔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현재 규모로의 중창은 영의정을 지냈던 약재 류상운(1636∼1707)에 의해 숙종 15(1689)에 이루어졌다. 그 후의 중·개수 연혁은 자세하지 않다.
‘詠八亭’현판은 남구만(1629∼1711)의 글씨이며, 또한 관련유적으로는 영팔정과 뒷편으로 모산리 文化柳氏 門中所有인‘분비제(憤誹齊643년 건립, 柳浚의 齋室)’와‘죽봉사(竹峯祠 1796년 건립, 柳尙運祠堂)’가 있고 마을 입구에는 유관의 신도비가 있다.
영팔정은 조선초기에 건립된 정자로 오랜 세월동안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으며 사정(社亭)으로서의 역할은 물론 강학의 장소, 향약의 집합소로도 이용되어 마을민의 구심체가 되었던 곳이다.
<영암군청 문화관광과 제공>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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