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대첩! 한민족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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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대첩! 한민족의 승리

농부들의 땀방울이 결실을 맺는 수확의 계절, 가을이다. 올해는 큰 태풍이나 폭우가 없어 풍년이 기대되니 마음이 든든하고 기분이 참 좋다.
지금부터 93년 전 오늘, 1920년 10월 21일 일본제국주의의 엄혹한 침략 아래에 있어서 내놓고 표현하진 못했지만 우리 민족 전체가 든든하고 기분이 참 좋았던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청산리대첩 승리 소식이다.
청산리대첩(靑山里大捷)은 김좌진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군, 홍범도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등을 주축으로 활약한 독립군이 청산리 백운평(白雲坪)·천수평(泉水坪)·완루구(完樓溝) 등지에서 10여 차례에 일본 제국과 전투를 벌여 열악한 조건에서 승리를 거둔 역사적 사건을 말한다.
1920년 10월 일본군 동지대(東支隊) 부대는 화룡현(和龍縣) 삼도구(三道溝)에 있는 북로군정서 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해 용정(龍井)·대굴구(大屈溝)·국자가(局子街)·두도구(頭道溝) 지역으로 진군해왔다. 독립군은 처음에는 화력과 병력의 열세를 고려하여 피전책(避戰策)을 택했다. 그러나 일본군이 토벌과정에서 한국인 촌락을 불사르고 동포들을 학살하는 것을 보고 일본군과 대항해 싸우기로 결정하고 청산리 골짜기에서 매복하고 일본군을 기다린다.
1920년 10월 21일 오전 9시에 독립군의 기습공격이 시작되고 독립군의 정확한 위치도 파악하지 못한 일본군은 전위부대 200명이 전멸당하는 등 1,200∼1,300명의 전사자만 더 내고 숙영지로 패주한다.
청산리대첩의 승리는 독립군 병사들의 영웅적 분전, 지형을 적절히 이용한 지휘관들의 우수한 유격작전, 간도지역 조선인들의 헌신적인 지지와 성원이 함께 어우러져 이룩된 한민족의 승리, 대한민국의 승리였다.
한민족의 혼을 끊으려 극악한 억압과 폭거를 휘둘렀던 일본제국주의 시대를 뚫고 우리는 지금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 모든 발전이 가능했던 이유는 우리가 어려운 상황을 현명하고 지혜롭게 이겨내고 청산리대첩의 승리를 이끌어낸 독립유공자들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우익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지금, 청산리대첩을 맞아 사랑하는 우리 아들, 딸들에게 그 지혜를, 나라사랑의 마음을, 한민족의 혼을 심어 준다면 세계 속에 우뚝 서는 대한민국이 건설되어 행복과 번영의 미래가 펼쳐지지 않을까.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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