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서면 도장리 출신
미국 영암홍보대사
“어미개가 갓난 새끼의 몸을 핥는다 / 앞발을 들어 마르지 않도록 /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 온몸 구석구석을 혀로 핥는다 / 병약하게 태어난 젖도 먹지 못하고 / 태어난 지 이틀만에 죽은 줄도 모르고 / 잠도 자지 않고 핥고 또 핥는다 / 나는 아이들과 죽은 새끼를 손수건에 고이 싸서 / 손바닥만한 언 땅에 고이 묻어주었으나 / 어미개는 길게 뽑은 혀를 거두지 않고 / 밤새도록 허공을 핥고 또 핥더니 / 이튿날 아침 / 혀가 다 닳아 보이지 않았다”
정호승 시인이 쓴 ‘혀’라는 시다. 새끼에 대한 어미의 맹목의 사랑, 무서운 절명의 사랑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 보다 더 하지나 않을까. 자식이란 부모에게 그런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 시를 읽고 나서 한 어버이의 가슴 아픈 사연이 생각난다.
어느 해 5월, LA에서 거행된 5·18기념식에 한국에서 온 목사님 한 분이 참석했다. 행사가 끝나고 사석에서 몇 사람에게 당신의 아들 얘기를 들려주었다. 끝내 목이 메어 말을 맺지 못하는 그 분을 보면서 나도 가슴이 미어졌다. 그 날 밤 ‘큰절’이라는 제목으로 시 한 편을 썼다.
“아버지는 목사 / 아들은 대학생 시민군이었다 // 아들은 도청을 사수하고 있었다 / 소문이 흉흉했다 / 오늘 내일 군대가 도청을 쓸어버릴 것이라 했다 / 어머니는 다급했다 / 아들을 집에 데려와 달라고 / 밥 한 끼 해먹이고 싶다고 남편에게 간청했다 / 수습 위원이던 아버지가 사람을 넣어 아들을 집에 데려왔다 / 목욕을 하고 밥을 먹더니 잠에 떨어졌다 / 어머니는 잠든 아들의 얼굴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 저대로 하루 이틀 깨어나지 않기를 기원했다 / 아들이 잠을 깼다 / 안 가면 안 되느냐고 어머니가 간절히 물었다 / 친구들 저기 두고 나만 여기 있으란 말이냐고 아들이 되물었다 / 아버지는 말문이 막히고 / 어머니는 목이 메었다 / 신발 끈을 매던 아들이 말없이 방으로 다시 들어왔다 / 부모님을 아랫목으로 모시더니 큰절을 했다 // 그 날 밤, 천둥 번개가 도시를 뒤흔들었다 / 아들은 쑥대밭 위에 별이 되었다 “
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일이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큰절을 하던 아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지(死地)로 가는 아들에게 큰절을 받으면서 차마차마 붙잡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총소리가 도시를 뒤흔들던 새벽. 깜깜한 하늘에 콩 볶듯 울려 퍼지던 총소리를 듣던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목련꽃 이파리 뚝뚝 떨어지는 이 계절에, 다 닳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혀를 핥고 있는 어미개의 심정을 다시 헤아린다. 30년 세월이 지났으니 닳아 없어진 어머니의 혀가 다시 돋아났을까.
쑥대밭 위에 별이 된 사람들. 그들은 지금 망월동 묘지에 누워있다. 망월동(望月洞). 달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묻힌 자가 바랐던 것은 민주주의였고, 총 뿌리를 겨눈 사람이 바랐던 것은 군부독재였다. 묻힌 자는 말없이 달을 바라보며 누워있는데, 총을 들었던 자는 햇볕 아래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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