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시인
예비역 소령
군(軍)의 신뢰도가 눈만 뜨면 곤두박질하고 있어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8월, 필자에게는 예비역 소령진급이라는 개인의 영광을 얻은 기간이지만 육군은 2개 사단에서 4명의 병사가 총기난사, 구타에 의한 사망, 자살이라는 연속적인 사고로 명예가 나락으로 떨어진 시기였다.
군(軍)은 명예와 사기를 먹는 집단인데 연일 터지는 뉴스를 보면서 현재 군복무중인 장병들의 사기를 생각하니 참담할 뿐이다. 일반인들의 대화중에 ‘군대해체’라는 상상할 수도 없는 말이 언급되는 걸 보면 사회적 분위기만 따졌을 때 건군 66주년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군의 존립에 대한 최대 위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디서부터 잘못 됐을까? 군이 대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은 없을까?
일반인이 보기에는 가장 변화가 느린 곳이 군대라고 하는데 이 군대도 꾸준히 신병영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필자가 근무하던 당시인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군내 구타 및 가혹행위에 대한 교육을 집중적으로 강조(사실 그 이전부터 구타·가혹행위에 대한 예방교육은 있었다)했다. 심지어 자대에서는 대대장님의 지시로 ‘군 내무부조리’를 잡아내기 위해 소대장 부임 이후 약 4개월 가량 병사들과 함께 막사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장교는 자대배치 후 곧바로 독신자 장교숙소(BOQ)에서 거주한다.) 병사들과 동숙하던 시절 야전 소대장으로서 느낀 가장 큰 병영문제는 입대하는 병사들이 점점 독자(獨子)들로 채워지면서 남을 배려하는 문화가 점점 없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군(軍)도 욕설과 구타를 모르고 자란 외아들 신세대 장병들이 상관들로부터 욕을 먹거나 가혹행위를 당하면 참아내는 정도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낮아졌다고 분석을 했고 이런 신세대 장병을 고려해 육군도 한 병사가 문제를 일으키면 분대 전체가 기합을 받던 연대책임제도를 없애도록 했다. 집합 문화도 간부만 할 수 있도록 하고 동기들만의 내무실을 만들어보기도 하는 등 병영문화개선을 위해 육군 또한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런데 육군의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무부조리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고 시대변화와 더불어 신병들의 잔꾀가 희안한 방향으로 대담해지기 시작했다.
연예인, 운동선수들의 병역비리로 신문지면이 도배되던 시기에 군무기피목적 일탈행위자와 훈련기피 병사들이 상당히 늘었다. 힘든 훈련을 피하고자 일부러 관심병사 행태를 보이는가 하면 군생활 자체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분대원들 전체를 분노케 하는 일탈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이러한 행태가 발생한 근본 원인은 군대를 정상적으로 마쳤을 경우 얻는 혜택이 전무한 상태에서 군복무를 성실히 수행해야할 아무런 동기가 없기 때문이었다. 사회적으로 보더라도 현직 고위 공직자의 군복무 비율과 지도층 자녀의 군복무 이행률을 보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군필자가 존경받지 못하는 사회풍토에서는 당연히 군생활을 편하게 하고 싶으면 최대한 편하게 하고, 병역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 돼버렸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강한 군대를 만드는 데는 강한 령(令)과 국가차원의 적절한 보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군내의 구타는 반드시 군형법에 의거 강력하게 처벌되며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이행중이더라도 언제든지 전과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고 본다. 또한, 군 내부 지휘계통에서도 구타 및 가혹행위를 발견한 부대에 대해서 사고 예방활동 우수부대로 상을 줘야 할 것으로 본다. 경험상 부대 내에서 구타 및 가혹행위가 발생했다고 성실하게 보고를 하면 그 부대는 병력관리가 형편없다고 낙인찍히고 오히려 조사받고 감사받고 지휘관의 경우 인사고과에도 악영향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제대로 된 보고를 하겠는가. 그러다보니 감추고 감추다가 한 번에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성실히 병역을 마친 사람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국가차원의 보상이, 그리고 군무를 기피하려 하거나 의도적으로 군생활을 편하게 하려고 편법을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그만한 사회적 패널티를 부과해서 공정사회로 가는 초석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입대 전부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회적 인격체가 만들어져야 한다. 군대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이 갑자기 도덕적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야 할 부모라면 군대보내기에 앞서 먼저 자녀의 도덕 교육에도 학원 교육만큼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현재와 같은 부실한 군 내부 보고체계, ‘군복무 이행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 및 평소부터 길러온 ‘인격교육’ 없이는 건전한 병영문화 확립과 대국민신뢰 회복은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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