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행의 수미산(須彌山) 순례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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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고행의 수미산(須彌山) 순례길<4>

수미산(須彌山, Sumeru)은 불교의 우주관에서 우주의 중심을 이루는 거대한 산을 뜻한다. 정상에는 제석천의 궁전이 있고 중턱에는 사천왕의 거처가 있다. 7개의 향수 바다와 금산이 둘러싸고 있고, 그 바깥 사방에 인간이 사는 4대주가 있다.
불교의 성지 티베트를 순례하는 불자들에게 가장 힘든 여정이 바로 수미산 순례다. 티베트인들은 카일라스를 수미산이라고 믿는다. 티베트 수도 라싸에서 출발해 다시 돌아오는데 대략 보름정도 걸리는 수미산 코라를 한 바퀴 돌면 업장이 소멸하고, 다섯 바퀴를 돌면 금생에 성불한다고 할 정도다.
영암 군서면 출신으로 전남과학기술진흥센터 센터장을 역임한 바 있는 김보환씨가 수미산 순례길을 다녀온 뒤 쓴 고행기를 보내왔다. 수회에 걸쳐 이를 연재한다.<편집자註>
열반의 언덕을 저만치 두고 두발이 멈춰버렸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압박감에 잠시 주저앉아 숨을 고른다.
"독송이 계속될수록 체력은 고갈되어 간다. 언덕길은 세발이상 계속 걸을 수가 없었다. 평지 수준에서는 다섯 걸음에서 일곱 걸음 정도에 허리를 펴고 수미산을 바라보지만 가슴이 쿵쾅거린다.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두 손으로 가슴을 쓰다듬으며 걷고 또 걷는다." 이른 아침 제주에서 온 보살이 식사준비로 부산했다. 남자 숙소는 아직 한밤중이다. 가이드와 함께 만들었다고 내민 죽 맛이 별로였지만 어제 하루 식사가 모두 '꽝'이었는지라 두 그릇이나 비웠다. 숙소 곁에는 중국군이 건축한 공중화장실이 있다. 청주에서 온 신 원장은 과거엔 화장실이 없었고, 게스트하우스도 천막으로 바람이 불면 제대로 잠을 잘 수도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우리가 쓴 조립식 숙소는 그야말로 호텔 격이란다.
열반의 언덕
이제 가장 힘들다는 2코라 순례길에 나선다. 열반의 언덕, 해발 5천700m 고지를 넘어야 하는 여정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여졌다. 어제 그토록 아팠던 다리와 허리, 어깨가 아무 느낌이 없다. 아픈 데가 없어진 것이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무등산이나 월출산 등산만 해도 다리, 허리 아픈 상태가 하루 이틀쯤 계속되는데, 어제 그토록 힘든 여정을 감안하면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한편으론 참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우리는 다시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미산 쪽에 삼배를 하면서 오늘 순례길도 무탈하기를 기원하며 2코라를 시작한다.
우리 일행은 이번 순례 길에서 매 식사 전후 다 같이 기도했다. 기도라고 해야 그냥 다함께 '마하반야바라밀'을 세 번 외치는 식이다. 마하반야바라밀의 ‘마하’는 범어의 maha로 ‘크다’. ‘많다’. ‘위대하다’. ‘수승하다’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단순히 ‘크다’는 말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따로 번역하지 않고 ‘마하’라고 한다. ‘반야’는 범어 prajna로 ‘지혜’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진실, 생명, 본래로 갖추어져 있는 지혜를 뜻한다. 근본지, 자성견, 본분광명, 최고의 지혜, 깨달음의 지혜로 단순한 지혜와 구별된다. ‘바라밀’은 범어 paramita로 도피안 혹은 도무극으로, 저 언덕에 가는 것, 지혜의 완성을 뜻한다. 보살이 육바라밀을 완성하여 부처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마하반야바라밀은 ‘크고 수승한 깨달음의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르는 것’, ‘절대 완전의 지혜로 저 언덕에 도달하는 것’이다. 우리 일행도 크고 수승한 깨달음의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르기를 기원하면서 열반의 언덕을 넘기 시작했다.
오른편으로 수미산을 바라보며 걷는다. 전날 자면서 머리가 아프고 온 몸이 맞은 것처럼 아팠던 기억을 씻어주기라도 하듯 아침 햇살에 수미산은 광체가 난다. 어제 오후에는 동쪽에서 비추는 햇빛을 봤지만 오늘 아침에는 서편 수미산에 비친 빛의 광체를 볼 수 있다. 산 정상에 쌓인 눈에 빛이 반사되면서 반짝이는 모습에는 신령스러운 기운까지 감돌았다. 어쩌면 두려움과 평온함이 함께였을지도 모른다. 아침이라 그런지 일행 모두의 발걸음이 가볍다. 앞 다퉈 걷는다. 제주에서 온 보살과 서울에서 온 보살은 야크를 타고가기 때문에 늦게 출발했지만 나머지 5명은 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서울에서 온 보살은 어제 1코라를 돌고나서 못 걷겠다며 야크를 타겠다고 가이드에게 졸라대더니 승낙을 받은 모양이다. 낙오자가 없어서 다행이다. 갑자기 야크를 주문하면 이곳까지 오기도 문제이고, 기다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2코라 구간은 20km로 12시간 이상을 걸어야한다. 충청도에서 온 신 원장은 열반언덕에 깃발을 세우겠다며 걸음을 재촉한다. 이번 순례길 참가한 일행 가운데 가장 건강해 보인다. 두 번째 순례길이어서 경험도 있다. 더구나 나이도 50십대니 젊다. 태극권을 배우고, 기 치료를 하러다닌다니 일반인들과는 역시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온 거사는 나보다 6살이다 위인데도 건강해 보인다. 여행을 많이 해서인지 민첩하다. 어제도 제일 먼저 숙소에 도착해 쉬고 있었다. 결국 오늘도 내가 제일 뒤에 섰다. 수미산 정상을 바라보면서 반야심경을 독송한다. “마하반야반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반라밀다심경 조견오행….”
독송이 계속될수록 체력은 고갈되어 간다. 언덕길은 세발이상 계속 걸을 수가 없었다. 평지 수준에서는 다섯 걸음에서 일곱 걸음 정도에 허리를 펴고 수미산을 바라보지만 가슴이 쿵쾅거린다.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두 손으로 가슴을 쓰다듬으며 걷고 또 걷는다. 티베트인들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젊은 20대 정도가 조금 빨리 걷는 정도다. 어제 평지에서 힘차게 걷던 서양인 부부도 오늘은 언덕길을 아주 힘들게 걷는다. 내 뒤에 온몸을 가누기 어렵다는 표정의 서울 보살이 보인다. 저토록 약한 모습인데 걸어야겠다는 강한 의지는 어디서 나오는지 놀랍다. 이번 순례길에서 가장 힘들어 보인다고 생각한 사람이 서울 보살이다. 야크도 타지 않고 언덕길을 오르는 모습이 감탄 그 자체다. 서울 보살은 강원도 설악산 봉정암을 3년 동안 무려 108번이나 다녀왔다고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봉정암자를 다녀갔다는 얘기다. 정말 내공이 보통이상이다. 나는 그런 서울 보살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적당한 거리에서 쉬어가면서 열반언덕을 올랐다. 드디어 수미산 열반의 언덕이다. 해발 5천630m로 이번 순례길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능선 주변에는 경전이 쓰인 깃발(타르쵸)이 가득 덮여 오색찬란하다. 충청도 신 원장은 친지들이 소원을 부탁한 깃발을 건 모양이다.
열반의 언덕에 올라보니 수미산이 한쪽만 보인다. 아직도 한참을 가야 점심을 먹을 수 있다. 쉬는 둥 마는 둥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이제 약간은 내리막길이라 걷기가 쉬웠다. 1시간가량 내려가니 멀리 주점이 보인다. 점심을 먹을 장소다. 하지만 갑자기 급경사길이라 걷기가 여간 곤란하지 않았다. 오체투지를 하는 티베트 여인은 급경사라 마치 앞으로 굴러 내려갈듯 불안했다. 점심은 라면이다. 라면을 먹으면 속이 편치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밥이 좀 있어 다행이었다. 배를 채운 우리는 다시 걷는다.
오늘 저녁은 쥐틀북(해발 4천810m) 흙집에서 휴식을 취하게 된다. 오늘도 20km를 걸었다. 흙집 옆 천막 속에서 쌀죽과 된장국을 끓였다. 모두 지쳐 있고, 무엇을 먹을지 의견일치가 되지 않아 내가 자청한 식사준비였다. 가스불이 좋지 않았으나 그런대로 맛있는 식사였다.
이제 마지막 코스인 3코라다. 12km 정도니까 5시간 정도 걸으면 점심 때 쯤 다르첸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코라 시작점에 간다고 한다. 우리는 다음날 인코라를 순례할 예정이었으나 중국정부가 통제하고 있어 불가능하게 됐다. 가이드에게 신신부탁을 했지만 가망이 없었다. 그래서 가기로 한 곳이 구게왕국이다. 사실 우리는 출국해 지금까지 샤워를 못했다. 감기 등 건강을 생각해서 일뿐 아니라 고산증세 때문이었다. 9일 동안 참고 견디고 있지만 수미산 순례가 끝나니 맘이 느슨해져 쉬고 싶었다. 모두들 피곤에 찌든 모습으로 마지막 지점에 무사히 도착했다. 수미산 코라 3일간 53km을 완주하고 종점 차집에 앉아 그동안의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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