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영암군 신북면장
前)전라남도 노인복지과장
前)완도부군수
우리나라 현대사가 안고 있는 아픔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지금까지도 해소되지 않고 있는 아픔은 지역감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흔히들 우리나라 지역감정은 고려 태조 왕건이 남긴 훈요십조(訓要十條)가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고려 태조 왕건은 서기 943년 눈을 감기직전 가까운 신하였던 박술희(朴述熙 )를 불러 훈요십조(訓要十條)를 전하면서 그 8조에서 “내가 죽은 후 차현(車峴) 이남과 금강(錦江) 아래의 사람들에게 벼슬을 주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유언을 남기게 된 근거는 호남이 배산역수(背山逆水:임금이 있는 반대쪽으로 산맥과 물이 달린다)의 땅이라서 배반자가 나올지도 모르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호남인을 쓰지 말라고 했다는 훈요십조(訓要十條)에 대해 몇가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중의 한가지는 왕건이 호남 사람들을 경계했다고 하는데 오히려 호남인들 중에는 당시 중앙정부에 입신한 사람이 많았다. 예를 들면 왕건이 평생 사표로 삼았던 도선국사(道詵國師), 살아서는 상주국(上柱國)이고 죽어서는 태사(太師)가 된 최지몽(崔知夢)은 우리고장 영암출신이다. 또 왕건의 비(妃)이자 2대 혜종(惠宗)의 모후인 장화왕후(莊和王后) 오(吳)씨는 나주출신이다. 따라서 왕건의 훈요십조(訓要十條)가 지역감정의 기원이라고 보기는 다소 무리가 있는것 같다.
현재 우리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지역감정의 출발은 멀리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다. 해방이후 얼마동안까지도 지역감정은 없었다. 목포출신의 김대중이 1961년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에서 당선된것이 이를 증명한다. 지금 같으면 목포 출신이 강원에서, 강원 출신이 목포에서 당선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또 박정희가 5.16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윤보선과 치른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면 호남에서 박정희 49.9%, 윤보선 33.8%로 호남에서도 박정희를 지지했다. 당시에는 지역감정은 없었고 여촌야도(與村野都) 현상이 있었다.
오늘날의 지역감정은 정치적 이익을 얻는 세력이 유권자들을 부추겨 생겨났다.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이 공개적으로 나타난 것은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때다. 박정희 대통령의 대구사범 스승으로 국회의장을 역임한 이효상이 당시 대구유세에서 “전라도에 정권을 넘겨서야 되겠는가?”라고 연설한것이 망국적인 지역감정의 효시이다. 야당인 신민당의 김대중후보가 예상을 뒤엎고 파란을 일으키자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으로 영남 결집을 촉구한 것이다. 이효상이 이러한 발언을 한것은 딱 한가지, 영남사람이 호남사람보다 ”쪽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익에서 비롯된 지역감정이 우리사회 구석구석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민족의 염원인 남북통일을 위해서는 강력한 응집력을 바탕으로 우리의 사회적 역량을 극대화 하여야 함에도 동서로 나뉘어 분열과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또 이러한 지역감정은 경제적 차별로 이어져 지역간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60년대 이후의 수도권과 영남권을 축으로한 국토의 불균형 성장정책은 여타 지역의 낙후를 초래하였고 이러한 경제적 차별은 지역감정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러면 이러한 정치적 이유로 시작된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서로 상대방 탓만 할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탓으로 생각하고 이성적인 사고로 함께 치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7월에 치러진 순천·곡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우리는 지역감정 해소의 물꼬를 트는 희망의 멧세지를 보았다.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누르고 1988년 소선거구제 채택이후 26년만에 호남에서 새누리당계열 후보가 당선되어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대구에서 살고 있는 필자의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보궐선거 결과에 대해 대구시민들도 큰 충격을 받고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우리 모두 지역주의의 덫에서 벗어나 후보자의 정책과 공약을 검토하고 자질과 능력을 평가하여 투표하도록 함으로서 정치적 이익으로 시작된 지역감정을 국민의 성숙된 정치의식으로 몰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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