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작가 호석 김상회 선생 서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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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작가 호석 김상회 선생 서예전

영암문화원, 1월28일 오픈식 2월21일까지 전시

올곧은 교육자이자 선비정신 충만 서예가 정평
영암문화원(원장 김한남)은 2015년 첫 지역작가 초대전으로 서호면 송정마을 출신인 호석 김상회(78) 선생 서예전을 갖는다.
김상회 선생은 올곧은 교육자로, 서예를 통해 선비정신이 쌓아갔다. 1957년 초등학교 교사로 시작, 1999년 교장으로 정년하기까지 42년의 세월을 후진 양성에 힘썼다. 선생은 청렴한 선비정신을 실천하면서 어린 학생들에게 올바른 인성과 가치관을 심어주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왕인'으로 선정된바 있다.
호석 김상회 선생의 서예 이력은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예를 시작한 동기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지만, 어린 시절 서당 훈장이셨던 큰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웠던 경험이 그 배경이 되었다. 교직 생활 틈틈이 서예를 독습하기 시작했지만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생각에 선인들이 남긴 서예 이론서를 탐닉하며 서예의 본질에 대해 숙고했다. 집필과 운필법을 익히고 교본을 통해 다양한 서체를 임서했다. 왕희지, 구양순, 안진경, 미불 등 중국 대가는 물론 조지겸, 오창석 등 선조들의 서체가 가진 의경미를 담고자 노력했다. 어느 정도 임서에 자신이 생기자 선대 문필가들의 내면 진수를 이해하고자 더욱 많은 세월을 보냈다. 그동안 그가 찾은 서예 스승으로는 우화 김정재, 운암 조용민이 있으며, 멀리는 한국 서예계의 큰 인물인 석포 주계문 선생을 찾아 배움을 청했다.
호석 김상회 선생은 전서, 예서, 행서, 해서, 초서, 한글판본체까지 다양한 서체를 두루 즐긴다. 아직도 옛 선조들의 서예 미학을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서예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글(문자)을 예술 표현의 직접적인 소재로 사용해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것으로 이슬람 문화와 중국 문화에서 발달했다. 전자가 건축 디자인 영역에서 크게 발달한 반면, 후자는 문인들의 정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승화됐다. 우리 선비들은 자신의 철학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훌륭한 글(文)을 짓고, 붓(筆)을 통한 서(書)로 완성했다. 서예는 선비정신의 기본적 심미 규율을 담고 있으며, 붓으로 표현되는 인물화, 산수화, 화조화, 불화에 이르는 미적 표현의 철학적 근간을 이룬다. 서예가는 만물의 변화를 경험해 얻어진 의식 형태를 인문학적 지식 체계로 완성하고, 그 문장에 강한 예술적 창작 욕구를 발현하여 화선지 위에 써내려간다.
호석 김상회 선생은 현대 사회에서 흔치 않은 선비정신이 충만한 서예가이다. 스스로 문기(文氣) 수양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올곧은 마음가짐을 생활 속에서 실천한다. 이러한 생활 근본은 마음속 충만한 기운으로 꿈틀대고 손끝 붓을 통해 화선지 위에 구현된다. 글의 뜻이나 형태의 아름다움에 연연하지 않고, 탈속한 경지에서 써내려가는 서예는 세속 되지 않은 수수함이 있다.
호석 선생은 대한민국 서예전람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서예), 전라남도 미술대전, 무등미술대전 등에서 특선 및 대상을 수상했고, 심사위원을 거쳐 초대작가로 입지를 굳혔다. 특히 선생은 영암향교 경서학원에서 10년 동안 후배 지도육성에 주력한 결과 전국 서예공모전에서 특선 및 초대작가를 배출하기도 했다. 그의 글씨는 낭산 사당, 향교 청하루, 왕인학당 현판 등 서각으로 남아있다.
호석 선생은 슬하에 장남 김형연(한서고등학교법인실장), 2남 김형배(고구려대학교 총장), 3남 김기형(나주축협사료공장 팀장)씨 등 3남2녀를 두고 있다. 현재는 2년 후 80세 기념 개인전을 위해 꾸준히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이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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