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천재화가 오영일 초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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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천재화가 오영일 초대전

영암문화원, 올 첫 향토작가전 2월19일까지 전시

영암문화원(원장 김한남)은 2016년 새해 첫 향토작가초대전에 비운의 천재화가 오영일 작가를 초대한다.
오 작가는 1946년 영암에서 태어나 영암을 기반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었던 화가이다.
어린 시절 그림에 천재성을 보이기 시작해 16세부터 광주의 의제 허백련 선생의 연진회 계열 스승을 찾아 한국화를 익혔다.
20대 초기에는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김응수 화백으로부터 6년간 그림을 사사받았다. 인사동 주변을 떠돌며 낮에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고 밤에는 그림에 몰두하며, 틈틈이 부모님이 계신 영암을 찾았다. 영암의 지인을 통해 남농 허건 선생과 교유하면서 35세에 영암군청 앞 예식장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1980년대 오영일의 작품은 미술계의 주목을 받으며 주요 언론사 및 미술관 등의 초대전에 소개되었다. 1984년 인사동 경인미술관이 개관되자마자 개인전을 가진 오 작가는 1억4천여만원에 달하는 작품을 팔았다. 당시 어지간한 교수들도 취할 수 없는 대성공이었다.
경인미술관 전시 이후 오 작가는 광주시립미술관, 대구시립미술문화회관, 부산문화회관, 서울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인사동 공평아트센터 등 유명 화랑에서 대규모 전람회를 열었다.
전시는 대성공이었다. 그의 작품은 각종 매스컴에서 주목받았고, 그 결과는 작품 판매로 이어졌다. 서울예술의 전당에서 전시할 때는 국회의원 20여명이 참관했고, 김영삼 대통령을 포함해, 농협중앙회 등에서 작품을 구입했으며, 30여점을 팔아 4억원 가량의 판매 수입을 올렸다. 유명 호텔과 콘도에서는 한꺼번에 수백점의 작품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한국화, 서양화를 가리지 않았고, 추상화 또는 사실화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스타일에서 탁월한 감각을 보여주었다. 혹자는 한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린 작품이라고 착각하기도 했다.
미대 교수들도 부러워하는 성공한 전업 작가로서 오영일 화백은 1995년 고향에 10억여원을 투자해 아천초등학교 자리에 미술관을 짓고, 군서면에 카페형 ‘그림의 집’을 개관했다.
하지만 오영일 작가의 비운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아천초등학교 미술관 사업에 제동이 걸리고, ‘그림의 집’이 다른 사람에게 그저 넘어가고, 그의 수상 경력을 문제 삼는 시비까지 있었다.
사실 오영일 작가는 자신의 이름보다는 ‘오비천’ 또는 ‘오인당’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비천 또는 인당은 그의 화명이다. 마치 문학인들이 자신의 이름 대신 필명을 따로 갖는 것처럼 오영일은 비천 또는 인당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활동했었다.
잘나가는 작가는 시기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부를 쫓는 이의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오 작가는 이 시기에 버티지 못하고 뇌졸중을 앓고 말았다. 반신불수의 몸으로 15년을 숨죽여 살았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의 병환은 느리게 호전되기 시작해 2년 전부터 집밖으로 출타가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그의 시련은 아직 진행 중이다. 과거의 필력을 되찾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영암문화원은 이달의 초대작가로 오영일 작가를 초대해 그의 이름 찾아주기에 나섰다.
김한남 원장은 “우리 고장 출신의 재능 있는 화가를 다시 발굴한다는 심정으로 오 작가를 초대했다”며 “오는 1월27일 오후 2시, 초대전 개막식에 고향 선후배가 참석해 오 화백의 재기에 박수를 보내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이날 개막식에는 문화가 있는 날을 맞아 부채춤, 한량무, 판소리 등 작은 공연이 준비된다.
■ 오영일 작가 약력
- 한국방송공사 사장상 2회
- 내무부장관상 1회
- 현대미술대전 동상
- 목우회 입상
-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상 3회
- 강남미술대전 특선
- 현대미술 추천작가
- 신미술 추천작가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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