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고개 넘어 범골 마을은 이십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편안한 시골 마을이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농사를 지으며 인심 좋게 살고 있다. 어느 날 마을 부녀회장을 맡은 김천댁의 낭랑한 목소리가 마을회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진다.
"주민 여러분, 오늘 점심 때 한우가든에서 점심 식사 대접이 있사오니 부녀회원 여러분께서는 한 분도 빠짐없이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을주민들 중 부녀회원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귀가 솔깃하다. 다른 얘기는 다 빼고 비싼 소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식당에는 동네 부녀회원이 거의 다 온 셈이다. 맛있는 고기를 굽는 가운데 김천댁이 갑자기 문가로 가더니 한 사람을 데리고 들어온다.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 입은 점잖은 신사다. 신사를 앞세운 김천댁은 소리 높여 인사를 시킨다.
"여러분, 식사 도중 잠깐만 실례할께요. 이번에 우리 마을을 위해서 의원에 출마하신 김개똥씨 이십니다. 우리 마을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노력하신다 하니 맛있게 식사하시고 응원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기초의원에 출마하게 된 개똥입니다. 다른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그저 제 이름 석 자만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김,개,똥, 얼마나 쉽습니까, 허허허 오늘은 아무 염려 마시고 그저 많이 들 드시고 흥겹게 노시다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순간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느닷없는 고기세례에 정신을 놓고 있었지만 순간 '공짜 점심은 없다'는 속담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인사 소개 외에 별 다른 일이 없었으므로 식사 무드는 깨지지 않는다. 부녀회원들은 더없이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그날의 일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서 불쾌하고 성가신 일이 시작되었다. 선거관리위원회라는 곳에서 부녀회원 집집마다 과태료 고지서가 발부된 것이다. 고지서를 받아든 사람들은 아연실색, 얼굴이 변할 수밖에 없었다. 과태료 금액은 그날 먹은 고기값의 오십 배에 달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말 그대로 평생 법 없이도 살아온 사람들이 졸지에 범법자가 되고 만 것이다.
선거법은 보기에 따라서 지키기 까다로운 법일 수도 있다. 과거 관습적으로 행하던 일들도 선거법의 적용으로 위법 행위가 되는 사례가 있는 걸 보면 법에 대한 의식이 다른 법에 비하여 떨어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사람들이 유권자들의 무심함을 이용해서 순박한 유권자를 범법자로 몰지 말아야 한다. 분명하고도 정정당당한 태도로 페어플레이 하는 정신을 선거가 끝날 때까지 유지해야 한다. 향응을 받을 위치에 있는 유권자들은 선거에 대한 의식 또한 냉철하고 당당해야 한다. 소소한 이익에 눈이 멀어 양심을 저버리는 행위를 하고 있지는 않는지 단호한 심정으로 감시하고 법을 준수해야 할 것이다.
그 모든 일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 정의롭고 평등한 민주사회로 가는 가장 올바른 수단인 선거를 잘 치르기 위해서이다. 어느 때보다도 준법질서가 강조되어야 할 선거철, 사람들의 작은 양심이 세상을 지키는 등불이 되는 걸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정지현
영암군선거관리위원회 지도홍보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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