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문제나 특정 쟁점에 대해 사회구성원들이 어떠한 의견이나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통계적 조사”라고 되어 있다.
여론조사가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1789년경이고 오늘날과 같은 과학적인 방식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초 미국에서 부터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 여론조사는 언제부터일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우리나라 여론조사는 세계 최초라 할 수 있는 1430년 세종대왕 때 실시되었다고 한다. 당시 논밭에 대한 세금을 거둘 때 흉년이면 조금 거두고 풍년이면 많이 거두는 '손실답험법'이라는 제도를 시행하였는데 흉년과 풍년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지주들이 수확량을 축소 보고하는 폐단이 발생하자 세종대왕이 흉년이나 풍년에 관계없이 소유 토지의 규모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를 시행하고자 하였으나 신하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이에 세종대왕은 중앙의 고위 관료들과 지방의 감사, 수령을 비롯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가부를 물으라는 어명을 내렸는데 이것이 최초의 전국민 여론조사가 되었다.
이 여론조사는 17만여명을 대상으로 4개월여에 걸쳐 실시한 결과 찬성 9만8천6백57명 반대 7만4천1백49명으로 찬성이 더 많았다고 한다. 여론조사 발표의 일반적인 형태를 보면 신뢰수준 00%, 표본오차 ±0% 등으로 발표된다. 예를들어 A후보의 지지율이 40%로 조사되었고 신뢰수준95%, 표본오차 ±5%라고 한다면 A후보의 지지율이 35%∼45%범위내에 들어갈 확률이 95%라는 뜻이다.
최근에 발표되고 있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어느 후보 진영에서 여론조사를 의뢰하였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크게 다르게 나타나고 있어 후보진영에서 발표한 여론조사는 도무지 신뢰할수 없다는 것이 유권자들의 반응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여론조사는 질문내용이나 표본집단(조사대상)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데 후보자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질문내용이나 표본집단을 선정하여 조사를 하기 때문에 결과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지율이 생명인 정치판에서 여론조사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항목이고 선거에서 위력을 떨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면 여론조사의 의미는 퇴색할 수 밖에 없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에 의하면 여론조사는 그저 “추이를 살펴보는 참고자료”일 뿐이라고 말한다. 즉 여론조사 결과가 선거판세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국회의원 공천과정에서 전략공천도 있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전화를 활용한 국민여론조사 방법으로 후보자를 결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 후보자를 결정하는 것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예를 들어 전화여론조사 대상을 1,000명으로 한다고 하였을때 유권자가 10만명인 선거구의 경우 전체 유권자의 겨우 1%에 불과한 인원이 후보자를 결정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일부지역에서는 휴면 유선전화를 사들이거나 신규가입을 하여 무선전화로 착신전환장치를 통해 여론조사에 응답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제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번 선거만큼은 학연, 지연, 혈연을 떠나서 후보자의 자질과 인품 그리고 정책비젼을 잘 살펴서 투표를 해야 할 것이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조작된 여론에 휩쓸려 투표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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