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언론은 응답자 중 68%가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여론조사결과를 일제히 보도했다. 재향군인회는 서울역 광장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핵보유 주장에 적극 동조했다. '보수논객' 조갑제는 아예 우리의 핵무장을 '노예로 사느냐 주인으로 사느냐'의 문제로 규정했다.
전두환의 호를 따 만든 일해재단 부설 평화안보연구소가 전신인 세종연구소 정성장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신동아 3월호에 "핵무장은 실(失)보다는 득(得)이 더 많다"는 기고문을 게재하고 10가지 편익을 열거했다. ▲북한의 핵위협 불안감 해소 ▲남북 간 군사력 균형 유지 ▲대등한 수준의 한미동맹 유지 ▲미·중의 패권적 구도에서 대외 자율성 확대 ▲국방비 부담 경감에 따른 복지 예산 확충 등등.
정 실장은 그러면서 '조금 과장하면 우리의 핵 기술이 북한보다 50년 정도 앞섰으며,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1년6개월 안에 핵무장을 끝낼 수 있다'는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의 발언을 소개했다. 더 나아가 우리의 핵무장에 따른 국제사회의 반대에 대해선 "우리 정부는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를 막지 못한 국제사회의 일시적인 제재를 두려워 말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종합편성채널들은 한반도에 핵전쟁이 발발했을 경우를 가상해 피해상황을 분석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 측 시뮬레이션 결과라고 소개된 피해상황 분석에 의하면 개전 24시간 안에 군인 20만명을 포함해 수도권 중심으로 약 150만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다. 1주일 이내에 남북한 군인과 미군을 포함해 군 병력만 최소한 100만명이 사망한다. 민간인 피해는 그 이상이다. 전쟁 1주일을 넘어서면 약 500만명의 사상자가 나온다.
2004년 미 국방부가 한반도 핵전쟁 시뮬레이션을 가정하고 구성했다는 전쟁 시나리오에 의하면 북한이 스커드 미사일 A, B형 각 1발을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등이 위치한 용산구 일대에 발사했다고 가정했을 때 순식간에 40만명이 산화한다. 핵 미사일의 1차 피해는 반경 1.8㎞ 이내의 모든 물질을 녹아 없어지게 만든다. 용산구 반경 4.5㎞ 이내에 있는 경복궁, 서울역, 광화문 일대가 휴지조각처럼 파괴된다. 여의도, 마포, 강남 역시 지상 건물이 순식간에 찢겨져 나간다. 핵 낙진에 의한 방사능 오염으로 최대 125만명이 2~6주 내에 사망한다. 방사능에 의해 자손대대로 이어질 간접피해는 아예 계산되지 않았다.
피해상황은 엄청난 '재앙'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보도의 목적은 이 보다 핵무장에 힘을 싣는 것이다. 북한이 핵 실험에 이어 장거리 미사일까지 발사했으니 우리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일부 주장에 기름을 끼얹느라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핵무장에 단호히 반대 입장을 표시해도 모자랄 야당은 적극 동조하거나 애써 숨죽였다.
왜 이랬을까? '시대의 스승'으로 불렸던 故 리영희(李泳禧) 선생은 평론집 「역설의 변증」에서 이를 '어떤 종교보다도 광범위한 신자를 확보'하고 있는 '핵신(核神)에 대한 절대적 신앙심' 때문으로 규정한다.
'남한에는 하나의 '위대한 미신'이 있다. 이 나라 국민의 거의 전원이 그것을 신봉하고 있다는 뜻에서 그것은 가히 '국민미신'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국가가 그 신앙을 보호 지원한다는 뜻에서 '국가적 미신'이라고 이름 할 수도 있다. 그 '미신적 신앙'은 다름이 아니라 핵에너지와 핵무기에 대한 맹목적 신앙심이다. 표현을 바꾸면 '핵'은 한국국민의 신(神)으로 추앙되고 있다. '핵신(核神)'에 대한 절대적 신앙심으로 말미암아 이 나라에는 '핵종교(核宗敎)'가 어떤 종교보다도 광범위한 신자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들은 핵신에 대해 맹목적이고 절대적이며 비이성적이고 무비판적이다. 자기 생명과 전체 국민, 전체 민족의 생존을 송두리째 바치게 될지도 모르는 미신적 사고와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핵은 확실히 죽음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소름이 끼치는 현실이다.'
선생이 1987년에 쓴 글에서 우려한 '소름 끼치는 현실'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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