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선업계의 불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유럽 경제상황의 악화에 따른 선박 발주 감소와 해양플랜트 수주과정에서의 출혈경쟁 탓으로 분석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그동안 우리 조선업계의 기대와는 달리 선박 수주 여건이 단시일 내에 개선되기는 어렵다는 예상까지 나오는 점이다. 중국 업체들과의 가격경쟁력에서 크게 밀리는 상황인데다, 이미 구조조정을 끝낸 일본 업체들과의 경쟁에서도 밀려 조선업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우리 조선업계의 수주실적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국내 조선업체들의 올 1분기 선박 수주 실적은 최근 15년 사이 최저 수준이다.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1~3월까지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77척, 232만CGT(가치환산톤수)다. 이 가운데 국내 조선사들이 수주한 물량은 8척, 17만1천CGT에 불과하다. 이는 지난 2001년 4분기 이후 최저다.
이 때문에 도크는 점점 비어가지만 흑자 부담은 커지고 있다. 당연히 인력구조조정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현대중공업은 인력을 3천여명 가량 줄이는 대대적인 구조조정 작업과 함께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당연히 현대삼호중공업도 예외가 아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역시 지난해 조 단위 적자를 냈고, 올해 선박 수주 실적 또한 최악인 점에서 현대중공업보다 더한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 현대삼호중공업 상황
현대중공업 3천여명 대대적 구조조정 등 비상경영체제 돌입
내년 후 선박수주 난망 사원아파트 분양 등 자금 확보 비상
현대삼호중공업은 자사 임직원 4천300여명과 사내 협력사 70여개사 9천여명 등 총 1만3천300여명이 일하고 있다.
현대삼호중공업은 지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 동안 적게는 500억원에서 많게는 3천억원대의 적자를 냈다. 하지만 올 들어 1/4분기에는 200억원의 흑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내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이 임박한데다 지난해부터 발생한 사내의 잇단 악재들 때문이다.
현대삼호중공업은 올해 40척, 내년 30척 등 2년 치 수주량을 확보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조선업계 상황으로 미뤄 추가 수주량 확보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현대삼호중공업 안팎에서는 용당부두 매각방침과 3,4차 현대사원아파트를 무주택 사원들에게 분양할 방침이라는 얘기까지 전해진다. 특히 현대사원아파트의 경우 분양가가 6천800여만원 선으로, 모두 분양을 하면 350억여원의 자금이 확보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앞서 최대한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임직원 750여명과 40여개 협력사 직원 3천여명 등 모두 3천700여명이 근무하는 해남의 대한조선도 상황은 마찬가지로 전해진다. 지난해 10월 법정관리에서 벗어나 독자경영을 시작했고, 지난해까지 430여억원 적자에서 올해 흑자원년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조선업 안팎의 여건이 만만치 않다. 대한조선도 내년 수주물량은 확보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아직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 대불국가산업단지 상황
일감 부족 심각…공장가동률 60% 업체 10곳 중 4곳 문 닫아
6월 이후 일감 아예 없어 생산 수출 고용 모두 감소세 지속
대불국가산업단지에는 300여개 기업이 자리해 있다. 이중 80%인 240여개 기업이 현대삼호중공업 등에 선박블록 등 조선기자재를 납품하는 조선업체들이다. 고용인력은 1만1천여명에 이른다.
조선업종이 주를 이룬 만큼 조선업 불황이 시작되면서 대불산단의 생산, 수출, 고용 모두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생산액은 2014년 3조659억원에서 2015년 3조383억원으로 줄었다. 수출액 역시 2014년 12억3천만달러에서 2015년 7억5천만달러로 크게 감소했다. 고용은 2014년 1만2천명에서 2015년 1만1천여명으로 1천여명이나 줄었다.
올 들어서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공장 가동률이 60%대까지 떨어졌다. 공장 10곳 중 4곳이 문을 닫은 것이다. 입주업체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하는 조선업체들이 원청업체의 주문 감소로 일감부족에 시달리고 있음이다.
더욱 큰 문제는 올 6월 이후에는 일감이 아예 없다는 점이다. 그동안 대불산단 입주업체들에 일을 맡겨온 주요 조선소들이 수주 잔량이 얼마 남지 않자 모듈과 부품을 자체 생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줄어들기 시작한 고용감소는 올해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 영암군 재정 및 지역경제 파장
대불산단·삼호산단의 지방세 비중 2011년 46%→2015년 26%
현대삼호중공업 2011년 30.1%→2015년 9.2% 올해는 0% 전망
조선업 불황 지속 구조조정 본격화 땐 영암군 재정 더 악화
삼호읍 식당매출 뚝 원룸촌 텅비고 출퇴근길 교통체증 줄어
현대삼호중공업과 대불산단에 드리워진 불황의 여파는 최근 5년간의 영암군 지방세수현황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영암군이 내놓은 ‘최근 5년간 지방세 변화추이 분석보고서’에 의하면, 영암군의 지방세 총액 가운데 대불산단과 삼호산단의 지방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46.0%에서 2012년41.0%, 2013년 38.5%, 2014년 28.2%, 2015년 26.1%로 반토막 났다. 특히 대불산단의 경우 2011년 15.0%에서 2015년 15.9%로 거의 변화가 없는 반면, 삼호산단의 경우 2011년 31.0%에서 2015년 10.2%로 무려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연도별로 보면 영암군의 지방세 총액은 2011년 765억4천600만원, 2012년 817억2천700만원, 2013년 754억200만원, 2014년 779억4천만원, 2015년 709억2천900만원 등이다.
이 가운데 대불산단의 지방세는 2011년 115억2천100만원(15.0%), 2012년 87억6천700만원(10.7%), 2013년 120억7천만원(16.0%), 2014년 131억7천200만원(16.9%), 2015년 112억4천700만원(15.9%) 등이었다.
또 삼호산단의 지방세는 2011년 237억7천700만원(31.0%), 2012년 247억4천900만원(30.3%), 2013년 170억700만원(22.5%), 2014년 88억5천만원(11.3%), 2015년 72억6천800만원(10.2%) 등이었다.
현대삼호중공업만 놓고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011년 현대삼호중공업의 지방세 납부액은 230억7천800만원으로 영암군 지방세 총액의 30.1%를 차지했다. 그러던 것이 2012년 240억1천900만원으로 29.1%, 2013년 161억1천400만원으로 21.4%까지 떨어졌으며, 2014년 74억500만원으로 9.5%, 2015년 65억1천100만원으로 9.2%로 추락했다.
심지어 올해의 경우 현대삼호중공업의 지방세수는 전무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올해 선박수주물량이 그런대로 확보된 덕분에 내년에는 지방세수가 다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나, 내년 이후에는 다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영암군 재정에 있어서 현대삼호중공업 효과는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더구나 영암군 지방세 총액의 15%가량을 책임져온 대불산단까지 올 6월 이후 일감이 끊기고 가동률이 뚝 떨어지면서 부도 등이 속출할 경우 영암군 재정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까지 느껴진다.
조선업 불황이 지속되고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영암군은 최악의 경우 연간 350억여원에 이르는 지방세수가 증발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졸지에 자체수입으로 공무원들의 인건비도 감당 못하는 지자체 대열에 낄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각종 국·도비 확보 또는 공모사업 선정에 따른 군비 부담의 여력 또한 급속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오는 2018년 전라남도 체육대회 유치에 따른 내년도 체육시설 투자부터 심각한 재정난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어찌 보면 영암군은 그동안 현대삼호중공업과 대불산단이 있어 별다른 재정확충노력 없이도 군정을 이끌어갈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공직자들의 인건비 정도는 국내 굴지의 조선소와 국가산단이 해결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두 곳이 심각한 불황과 구조조정의 회오리에 휩쓸리고 있는 상황이다. 공단이 없는 지자체들의 경우 인구를 늘리거나 택지를 개발하는 등의 세수확충에 고민해온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영암군은 그동안 두 곳이 내는 지방세수에만 의존한 채 다른 세수확충대책에는 거의 두 손을 놓고 있었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 보인다.
현대삼호중공업과 대불산단에 구조조정의 회오리가 시작되면서 삼호읍 지역경제도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당장 산단 주변 원룸촌은 썰렁해졌다. 대불산단 근로자들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출퇴근길 대불산단과 현대삼호중공업으로 향하는 근로자들의 차량 때문에 빚어진 교통체증도 눈에 띄게 줄었다. 당장 식당가부터 매출이 뚝 떨어졌다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더욱 걱정인 것은 이 같은 불황의 끝이 어디인지 아직까지도 예단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