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밤 늦은 시간, 그는 "딸아이가 집에 혼자 있는데 짜장면 한 그릇만 배달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짜장면을 배달해 준 다음, 그릇을 가지러 갔더니 짜장면 그릇이 깨끗하게 설거지 돼 있어 놀랐는데, 그릇 속에 천원짜리 지폐 한 장과 함께 편지가 들어있었다. "제가 밥을 따뜻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글이었다.
그는 편지를 열어보고 '한참 동안 울었다'며, 아이의 집도 살림이 넉넉하지 않아보였다고 적었다. 엊그제 어느 신문에 난 얘기다.
이 사연을 접한 네티즌들은 "아직 살만한 세상입니다", "저도 딸을 그렇게 키워야겠다 다짐하고 갑니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어린 소녀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했다.
글을 읽고 나서, 내 고등학교 때의 일이 생각났다. 한동안 신문배달을 했다. 설을 앞둔 어느 날, 눈보라 치는 어둑한 새벽 신문뭉치를 들고 뛰어가는데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나를 불러 세웠다. 나를 만나지 못해 몇 번 공쳤다는 말씀과 함께 봉투 하나를 내 손에 꼬옥 쥐어주시고는 '바쁜데 어여가라'고 손짓으로 말했다. 적지 않은 돈과 함께 깨끗한 종이에 쓴 격려의 글이 들어있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눈물이 났다. 나도 당신처럼 베푸는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다짐 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닌, 작고 사소한 일이 사람을 감동시킨다. 감동하면 눈물이 난다. 그 눈물이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결국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된다.
그때의 할아버지를 포함하여 나를 눈물 나게 한 사람들이 심장에 남았다. 그런데 나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그런 사람이 되어 본 적이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받은 것은 많은데 준 것이 별로 없다. 지난달만 해도 그랬다.
몇 주 전, 어떤 분에게 내가 쓴 책을 한 권 드렸다. 지갑을 꺼내려 하기에 주고 싶어 드리는 것이니 그냥 받으시라고 했다. 다음 날, 그 분이 나에게 노랑 봉투 하나를 건넸다.
그 안에 봉투 두 개가 들어있었다. 흰 바탕에 꽃무늬가 그려진 봉투를 열었다. 연초록색 종이로 한 겹을 더 싼 주황색 편지지에, "선생님, <산티아고 순례길 따라…> 책을 읽으며 제 꿈이 더욱 확실해지고 단단해졌습니다. 약소한 책값 동봉합니다. 고맙습니다."란 편지가 들어있었다. 하늘색 봉투에는 미주중앙일보에 게재된,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란 내 글을 오려서 비닐폴더에 넣어 동봉했다. 칼럼 상단에 날짜와 요일을 작게 오려 붙혀 놓은 게 보였다.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왔다.
자잘하고 사소하고 시시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가슴을 흔들어 놓는다. 그런 것들이 조용조용 세상을 바꾼다. 세상을 살맛나는 곳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목소리가 크고 힘이 센 사람들이 아니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이들의 작은 몸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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