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다. 1947년11월 『경향신문』에 발표됐고, 1956년 출간된 『서정주 시선』에 수록되어 있는 유명한 시다. 뭇 꽃들이 앞을 다투어 피는 봄여름 다 지나고, 그것도 깊어가는 가을 찬 서리를 맞으면서 홀로 피는 국화에 견주어 오랜 방황과 번민 끝에 거울과 마주한 누님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인격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가을꽃 국화는 그 꽃말이 '청결', '정조', '순정'이다. 인터넷에 여러 블로거들이 남겨놓은 꽃말을 들여다보면 색깔에 따라서도 다르다. 대략 흰 국화는 '진실', '성실', '감사', 노란 국화는 '실망', '짝사랑', 빨간 국화는 '사랑', 분홍 국화는 '정조'를 뜻한다고 한다.
국화는 오래 재배해 오는 동안 많은 변종이 개발되어 그 종류가 2천여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요즘 모든 식물들이 그렇듯 가을에만 꽃이 피는 국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5~7월에 피는 국화는 하국(夏菊), 8월에 피는 국화는 8월국, 9~11월에 피는 국화는 추국(秋菊), 11월 하순부터 12월에 걸쳐 피는 국화는 한국(寒菊)이라 한다. 또 꽃의 지름에 따라 18㎝ 이상인 것을 대륜(大輪), 9㎝ 이상인 것을 중륜, 그 이하의 것을 소륜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서리가 내리는 가을에 홀로 피는 꽃인 만큼 우리 선인들의 국화 사랑은 남달랐다. 우선 매화, 난초,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의 하나로 칭송되어왔다. 봄여름 마다하고 찬 가을에 서리를 맞으며 홀로 피는 국화에서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선비의 모습을 찾은 것이다. 국화를 일컬어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고 한 까닭이다.
국화 사랑은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국화보다는 연꽃을 사랑했던 중국 북송시대의 학자 주무숙(周茂叔)은「애련설(愛蓮說)」에서 '시인 도연명이 국화를 가장 사랑했다'(晉陶淵明 獨愛菊)고 적으면서, '국화지은일자야'(菊花之隱逸者也)라며, 국화를 속세를 떠나 은둔하는 선비의 꽃으로 표현했다. 특히 중국에서는 음력 9월9일 중양절(양수 9가 두 번 겹친 날로 중구일(重九日)이라고도 부름)에 국화주를 들고 등고(登高 산수유 열매를 담은 주머니를 차고 산에 올라가 국화전을 먹고 국화주를 마시며 즐기는 풍습)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귀한 대접을 받아온 국화가 요새 사방천지에서 축제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 고장 영암에서도 어제 氣찬랜드에서 '2016 氣찬 월출산 국화축제'가 개막했다. 국화 분화 23종 16만여점이 전시된다니 월출산 기슭이 온통 국향으로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그윽한 국향을 마냥 즐길 일만은 아니다. 이른바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 적나라한 사실로 속속 드러나면서 온 국민이 패닉상태다. 대통령이나 그 주변의 관료, 정치인들에게서는 고고한 기품과 절개는커녕, 하나같이 저급함과 비굴함, 중상모략만 일삼는 간신배 같은 몸부림만 느껴져 더욱 기막히다. 아마도 그들은 사방천지 그윽한 국향에 담긴 오상고절의 뜻을 도무지 알리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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