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역사연구회 학술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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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역사연구회 학술발표회

'영암의 3·1운동과 학생의 항일투쟁에 관한 고찰' 주제

영암역사연구회는 지난 3월14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제우스스타 제이드홀에서 '영암의 3·1운동과 학생의 항일투쟁에 관한 고찰'이란 제목으로 제7차 학술발표회를 열었다.
1년에 4차례에 걸쳐 학술발표회를 갖고 있는 영암역사연구회의 1분기 학술발표회인 이날 행사에는 조복전 회장을 비롯해 김선형 자문위원(초대회장), 이성조 감사, 박애자 여성부회장, 박석태 연구위원, 임부희 초빙교수, 문승길 운영위원장, 류모열, 신현재, 유석연, 김태호, 조삼현, 천병선, 문해숙, 박춘남, 이태호 회원 등이 참석했다.
조복전 회장은 발제를 통해 "3·1독립만세운동의 함성은 1919년 3월 1일 서울을 시작으로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영암에까지 퍼져 월출산을 메아리쳤다"면서, "4월 10일 영암 장날에 군민 1천여명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 만세를 불렀으며, 이 거사에는 영암공립보통학교 학생들과 구림보통학교 학생들의 역할이 컸고, 학생들의 항일투쟁은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보다 조직적으로 나타났다"고 당시의 상황을 밝혔다.
조 회장은 또 영암에서의 일제 경제수탈에 대해 "고리대금으로 농지나 토지를 탈취했고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등 온갖 악랄한 방법으로 우리의 농토를 빼앗았고 이러한 과정에서 일본지주들의 이익을 극대화시켜 부를 축적해갔다"면서, "전국에서 1920년대 중반부터 농민들의 목숨을 건 소작쟁의가 일어났고, 영암의 경우 더욱 심해 1932년 6월 4일 영보정 사건(일명 형제봉 사건)을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조 회장은 이어 "우리나라가 요즘 매우 어려운 시기에 처해있다"면서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으려면 일제에 항거하며 나라를 되찾았던 그때의 독립투사들이 발휘했던 정신을 다시 한 번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학술발표회에는 영암지역 항일투사들의 후손인 조희석, 박석주씨 등도 자리를 함께했다.
영암역사연구회는 한양대학교 한국국가기록연구원인 박찬승 교수를 초청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다음 학술발표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서울 김대호 기자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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