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9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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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091일'

1091일, 참으로 기나긴 여정. 만 3년에서 4일이 모자란 기나 긴 세월이지만 아직 미수습자 아홉 분은 부모나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람이 죽었더라도 유골을 수습하지 못하면 죽어도 죽은 목숨이 아니다. 죽었지만 아직 살아 있는 목숨으로 친다. 생사 확인은 주검이나 유골로만 확인할 수 있는데 주검도 유골도 확인하지 못한 나날이 안타깝게도 지금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뼈에도 성골(聖骨), 진골(眞骨), 육두품 등 품계(品階)를 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민족이다. 그래서 ‘뼈대 있는 집안’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예로부터 우리는 3년 대상을 치러왔으나 3년상이 버거워 1년 소상을 치렀고 요즘은 그도 버거워 49제로 대신하고 있다. 그도 부담이 되면 삼우제로 대신하기도 해 아직 유골도 수습하지 못한 가족들에게 3년은 30년보다 더 긴 슬픔과 분노와 고통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세월호는 박근혜 정권 내내 금기어였다. 참사 초기에 유가족과 추모객보다 이들을 감시하는 형사들이 더 많았다. 한때 2,500여 명에 이르는 형사들과 경찰이 감시에 나선 것만 봐도 처음부터 참사 희생자 추모나 진상규명 의지는 없었다. 정보 당국뿐만 아니라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들과 수구 세력들, 종합편성 패널 등이 쏟아낸 막말과 망자와 유가족들을 모욕한 것은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가장 수치스러운 짓이었다. 사람이 부끄러운 줄 모르면 꾀(괴)를 벗고 산다는 말이 있다. 대통령부터 그를 보좌한 이들까지 모두 하나같이 벌거숭이였다.
박근혜 정권은 세월호 참사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자 강경하게 탄압을 일삼았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대회 때 전국농민회 소속 보성 출신 백남기 선생이 무자비한 물대포를 맞고 2016년 9월 25일 317일 만에 영면에 든 참사가 이를 증명한다. 강경한 탄압이 없으면 비폭력 집회의 교과서라 할 만큼 우린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전 세계가 놀란 평화적인 촛불집회에서 단 한 사람이 연행되거나 다친 불상사는 없었다. 집회가 끝난 거리는 언제 집회와 시위가 있었는가싶게 쓰레기마저 말끔하게 치웠다. 그만큼 평화적이고 자율적이며 준법 의식이 강한 우리를 그동안 공안 당국이 자극하고 폭력을 유발해 탄압 빌미로 삼아왔음이 명백해졌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는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주도하는 지도층들 의식과 수준이 국민들보다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정부에게 고분고분하지 않고 저항적인 예술인들을 통제하려고 만든 블랙리스트는 대한민국을 인권과 차별 후진국으로 만들었다. 나라 체면이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블랙리스트는 일제강점기로 보면 불령선인(不逞鮮人) 명단이고, 6.25 때 보도연맹 명단이고, 지금도 근절이 되고 있지 않은 노동계 블랙리스트와 다를 바 없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감시를 당하고 차별을 받아야 하는 나라는 독재국가이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했던 사람은 누구누구에게는 주고 누구누구는 주지 않는 걸 자신이 정하는 게 무슨 잘못이냐고 항변 했다는데 이는 전제왕권시대나 독재시대에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베풀어주는 시혜(施惠)로 여긴 것으로 아프리카보다 낮은 의식수준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모든 모순이 집약 돼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나라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그 답도 세월호 문제 해결에 있다. 세월호가 목포 신항에 거치되기 까지 무려 1091일이 걸렸다. 유골 수습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유골이 온전히 남아 있을지 일부만 남아 있을지 아홉 분 유골이 다 나올지 없는 분들도 있을지 알 수 없다. 참사 당시 승선 인원이 제 각각이었기 때문에 명단에 없는 분들 유골이 나올 수도 있다. 여기에 세월호 사고 전반까지 진상규명이 되려면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마음이 급해도 하나하나 차근차근 가닥을 추려가야 한다.
기본이 갖추어지지 않고 기본을 지키지 않는 나라는 역사를 잊은 민족과 다를 바가 없다. 이번이 광복 70년 동안 쌓이고 쌓인, 묵고 묵은 적폐를 청산해 내고, 우리나라가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기회다. 하루 빨리 아홉 분 유골이 수습되고 진상규명이 돼 책임져야 할 사람들을 반드시 단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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