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이 나오는 그대 이름,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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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이 나오는 그대 이름, 국민

유난히 따사로운 봄기운이 사무실 창문 안으로 스며들어온다.
그 어느 해보다 잔인하고 절망적이었던 겨울이 지나고 목하, 사방이 봄봄이다. 꽃길만 걷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선거운동 유세차량 소리도 꽃향기 따라 날아 들어온다.
적지 않은 햇수를 살아온 내가 정치에 관심을 가졌던 때는 인생에서 딱 두 번뿐이었음을 고백한다. IMF 시절이었던 1997년 12월, 대학교 졸업을 두 달 앞둔 전라도의 평범한 미취업 대학생이었던 내게, 내 지역 출신 대통령의 당선은 엄청난 기쁨이었고 알 수 없는 희망 그 자체였다. 당시의 나는 취업공부를 내팽개치고 몇날 며칠 신문과 방송의 정치 뉴스만 찾아보았었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지연(地緣)은 선거에서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대한 중요한 요소였다.
또 한 번은 2004년 3월이었다. 몇 가지 직업을 가지고 일하다 절망하고서 공무원 시험공부를 막 시작한 때였다. 밥 친구와 전대 상대 뒤에서 점심을 먹다가 문득 TV에서 본 노무현대통령 탄핵사건. 시험공부만 머리 터지게 해도 모자란 판에 그 사건은 또 다시 내 머릿속에 한참동안 들어와 있었다. 정치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관심도 없는 공시생이었지만 그때도 난 숱한 나날 신문의 정치면을 샅샅이 읽고 TV뉴스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었다.
그러나 그 후부터 지금까지,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근무를 하고 있음에도 나는 정치에 무관심했다. 매 선거마다 투표는 했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든 안 가지든 우리나라는 늘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으니 굳이 나까지 재미없는 정치뉴스를 궁금해 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평소 TV조차 잘 안 보던 내가 사무실에서 혼자 있다가 별 생각 없이 리모컨을 누른 2016년 10월 24일 20시, 모 채널의 뉴스에서는 어마어마한 사건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 날부터 난 그 뉴스채널의 열혈 시청자가 되었다. 정치에 극도로 관심 없던 내가 그 뉴스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시간에 TV 앞에 있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한 것도 여러 날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비단 나뿐이었을까. 우리나라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지난 겨울 내내 연인원 천만 명이 넘는 국민이 전국의 광장에 쏟아져 나와 절실함과 간절함의 촛불을 들었다. 물론, 대통령 탄핵 반대에 대한 열망과 갈망으로 소위 태극기집회에 참석한 국민들도 상당하였음을 안다.
하지만, 3월 10일 대통령 탄핵이 확정되며, 일단은 우리나라를 둘러싼 사방의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걷힌 것 같다. 누가 옳고, 또 누가 그르든 이제는, 어느 막장드라마나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영화보다 더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일단락된 것이다. 사실 이제 나는 정치뉴스가 재미없어졌다. 그러고 보면 국민이 정치에 많은 관심이 없는 나라가 좋은 나라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꼭 그래야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진정 꽃피는 봄은 아직 오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저마다 본연의 이름 석 자 이외에 가정이나 사회의 역할이 부여하는 또 다른 이름을 몇 개씩 가지고 있다. 출근하면 한 회사의 ‘직원’이라는 이름을 갖고, 또 퇴근하면 아이들의 ‘엄마이고 아빠’이며 나이든 부모님의 ‘아들이고 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이 나오는 그대 이름, 국민. 이제는 광장에서 돌아와 평정심을 되찾고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또 살아 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름말이다.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권리이자, 또 해야만 하는 의무인 그것, 그것이 투표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좀 더 나은 세상을 살기 위해, 좀 더 나아진 세상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우리는 대한민국에 진정한 봄을 가져다줄 그 사람을 절실하게 찾아보아야 한다.
선거는 맞춤복이 없다고 한다. 기성복을 고르는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내 마음에 드는 후보는 없다. 그래도 쫌 나은 후보를 찾아보자. 그래도 못 찾겠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누가 선장인 배에 타고 싶으냐고. 아이들이 어른보다 훨씬 더 객관적인 눈을 가지고 있다는 심리 프로그램을 본적이 있다.
우리는 지금 전환기에 서있다. 대한민국이 처한 오늘의 현실을 보면 안보, 경제, 외교 등 어느 것 하나 어렵지 않은 과제가 없다. 선거가 끝나도 꽃길만 걸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부정, 부패, 불공정이 만연한 대한민국의 시간을 살 것인가.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될 것인가는 좌우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는 전적으로 투표하는 우리들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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