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인가 ‘미필적 고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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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과실’인가 ‘미필적 고의’인가

광활한 우크라이나 평원을 뒤덮은 해바라기. 영화 ‘해바라기(소피아로렌 주연·이탈리아·1970년작)’의 한 장면은 아닐지라도 올 여름 끝무렵 영암읍 송평리 영암천 고수부지에서 하늘을 향해 흐드러지게 핀 해바라기를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면 지금 포기해도 좋을 듯 싶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정직한’ 땅(地)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해바라기 심은 땅에 해바라기가 자라지 않는다.

꽃식물이 자랄 수 없는 땅에 꽃을 심었다면 당연 꽃은 피지 않는다. 그러한 결과에 대해서 어렵지만 법률용어를 인용해보자.

꽃이 자랄 수 없는 땅에 꽃을 심지만 그래도 죽지않고 꽃이 필것이다고 믿었다면 ‘인식있는 과실’이고, 꽃을 심지만 꽃이 피지않고 죽을 것이다고 믿었다면, 즉 꽃식물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어쩔수 없이 꽃 심기를 강행했다면 ‘미필적 고의’가 된다.

형법에서 전자(인식있는 과실)는 형이 가벼워 지고, 후자(미필적 고의)는 무거운 형을 받는다. 전자와 후자는 이론상 구별이며 둘 사이의 ‘심리상태’를 실제적으로 입증하기란 무척 어렵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둘 다 결과에 대한 책임만큼은 피할 수 없다.

영암군이 영암읍 송평리 일원의 영암천내 유휴지에 꽃단지를 조성해 주민과 관광객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겠다는 의도로, 올 봄 1만2천평의 고수부지에 예산 1천800만원을 들여 해바라기를 식재했지만 해바라기가 자라지 않아 ‘예산낭비’, ‘눈먼행정’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문제는 꽃씨를 파종하기 전 농업기술센터의 토양성분 분석 결과 꽃식물 식재가 부적절하다는 판정에도 불구하고 군은 꽃 식재를 밀어부쳤다는 것이다. 이는 ‘인식있는 과실’인지 ‘미필적 고의’인지 애매하지만 둘 다 ‘예산낭비’라는 책임은 따른다.

잘 자라 꽃이 필줄 알았다고, 예기치 못한 ‘과실’이라고 변명하기엔 너무 늦었다.

집행부가 ‘미필적 고의’로 예산을 낭비했다면 주민들은 더욱 허탈해 할것 같고, 차라리 ‘과실’이었으려니 생각하려 해도 왠지 흰 죽에 코 빠친 것만 같다.

집행한 예산은 다시 채워지지 않지만 작물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다시 심을 기회가 있다. 군은 대안을 찾아 그 토양에 적합한 작물을 선택하고, 이같은 과실을 또 반복하지 않도록 합리적인 예산집행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변중섭 기자 jusb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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