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림마을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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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림마을 다시보기

'21세기 최대 유망산업은 무엇일까. 미국의 스탠포드연구소, 일본 미쓰비시·노무라 종합연구소 등 세계적인 연구기관이 예측한 2005년의 환경변화연구보고서를 삼성경제연구소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미래사회는 산업의 복합화에 따라 생산과 서비스가 동시에 공급되는 관광, 레저, 외식업 등의 산업이 10년 후 최대 유망산업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측했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 1996년 3월1일자 ‘여행신문’의 기사이다. 그렇다면 이 오래전의 케케묵은 기사에 나오는 삼성경제연구소가 분석했던 유망산업의 현황은 어떠한가. 이미 십 수년 전부터 관광·레져·외식업,스포츠 등의 속성을 가진 문화사업이 호황을 누리면서 경제 성장의 한 축을 이끌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니 저 기사가 예측한 내용은 모두 맞았다고 할 수 있겠다.
여행을 좋아한 덕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기회가 많다. 관광,레져,음식,스포츠 등의 문화사업이 시대의 트랜드가 되면서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을 가든지 중앙과 지방정부는 관광 아이템 개발과 지역의 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에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투자가 지역의 인지도를 높이고 경제 성장과 고용창출의 효과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아이템이 사람 중심의 문화공간을 조성하고 지역 공동체 사업의 활성화를 이루어내는지, 어느 지역이 어떤 테마로 적합한 시설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는지, 어떤 대상의 관광객을 유치하여 마을을 북적이게 하는지에 대해 관찰하는 것은 여행을 통해 얻는 단순한 즐거움보다 내가 사는 지역의 자원 활용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갖는 쏠쏠한 재미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지역 활동가, 문화컨텐츠 전문가, 청소년들과 함께 ‘신(新)신사유람단’이라는 명칭으로 일본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신신사유람단’이라는 이름은 1881년 고종이 서구문물의 조사를 위해 시찰단을 조직하여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의 국정과 근대화 과정을 살펴보고 오도록 한 ‘신사유람단’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비록 우리와는 악연이지만 일본인들이 부국강성을 위해 세웠던 정책과 집행 과정, 특히 옛 것을 지키면서도 지역의 발전을 이루어 나갈 수 있었던 요소들이 무엇이었는지 알고자 함이었다.
들렀던 장소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야마구치현 서북쪽에 자리한 하기(秋)시이다.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침략 당한 것이 아니라 요시다 쇼인의 제자인 야마구치 하기시의 단 몇명에게 침략 당한 것이라는 치욕스러운 말이 있을 만큼 요시다 쇼인이 세운 松下村塾(송하촌숙)은 메이지유신의 산실이었다. 쇼인은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한반도 침략의 배후), 가쓰라 다로(가쓰라-데프트 밀약), 테라우치 마사다케(초대 조선총독) 등 90여명의 제자를 길러냈는데 하기시에는 그들의 행적을 기리고자 살았던 그대로의 무사마을을 보존하고 있다. 하기시 지방정부는 100여년 전에 발간된 지도만을 들고도 집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개발논리를 철저히 배제한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유지하고자 공을 들인 탓에 그저 오래되고 조용한 시골마을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역사와 선조들에 대한 자부심만은 대단하다. 은퇴한 공직자들이 무급으로 역사 해설사를 자청하여 낯선 이국의 여행객에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변을 토할 뿐인 그곳에 일년내내 여행객의 방문이 이어지는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할 어떠한 매력이 있어서일까.
삼국시대에 조성된 2,200년 전통한옥마을인 ‘구림마을’과 ‘왕인박사유적지’를 볼 때마다 ‘무사마을’을 떠올리게 된다. 여러 가지 단위 프로그램을 만들어 다른 지역의 교사들과 학생들을 이곳으로 초빙하여 ‘느림보 히스토리텔링’이라는 주제로 천천히 걸으며 역사,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기회를 가질 때마다 그들은 전통한옥의 고풍스러움과 아름다운 정자, 몰랐던 우리의 역사, 인물에 대해서 무척 놀라곤 한다. 그러면서 꼭 던지는 한마디가 있다.
“왜 이렇게 가깝고, 아름답고 교육적인 곳을 우리는 몰랐을까요?” 늘상 접하며 사는 사람은 크게 느끼지 못하는 구림마을의 가치와 매력에 외지인들이 감탄사를 연발할 때면 커다란 보물을 하나 선물한 것처럼 마음이 참 뿌듯하다. 문화가 경제가 되는 시대에 동네의 원형을 유지하면서도 특화된 컨셉의 프로그램을 가진 매력적인 역사문화답사지로서의 구림마을 일대에 대해 더 많은 홍보를 하고 민·관이 함께 단위 사업을 발굴하려는 의지가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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