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덕꾸러기가 된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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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덕꾸러기가 된 쌀

요즘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일 년 동안 땀 흘리고 풍수해를 이겨낸 결실이지만 즐겁지가 않다. 자식으로 치면 옥동자나 다름없는데 신바람이 나기보다 걱정이 앞선다. 해마다 추곡수매량은 줄고 있다. 목숨 같은 벼를 헐값에 팔아야 하는 농심은 불붙은 들불이다. 벼 재배 면적은 줄고 쌀값은 폭락을 거듭하고 농토 역시 값이 하락하고 있다. 대신에 공산품 가격은 해마다 오르고 도시 땅값 역시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농민이 부자로 살 수 없는 사회경제적 조건뿐이다.
우리 역사에서 쌀이 천덕꾸러기가 된 것은 처음이다. 초근목피까지는 아니지만 67~8년 두 해 동안 닥친 가뭄과 보릿고개를 겪어본 전후세대로서 쌀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잘 알고 있다. 식량이 무기가 되면 핵무기보다 더 두렵다는 것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고, 먹지 않으면 전쟁도 할 수 없다. 조선 적 '삼정(전정·군정·환정)의 문란'으로 일어난 수없는 민란도 왜구들 노략질도 다 쌀 문제에서 빚어진 문제다. 이웃한 강진에 귀양 왔던 다산 정약용 선생이 탐진현에서 목격해 시로 남긴 '애절양(哀絶陽)'은 가슴 아픈 현실이자 역사였다.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있지만 가장 귀중한 쌀이 비지떡이 돼 가고 있다. 농산물보다 싼 것은 우리나라에 없다. 껌 한 통에 천 원에 가깝고 라면 한 봉지가 600원쯤 되는데 우리가 날마다 먹는 밥에 사용되는 쌀은 한 끼에 200원 미만이다. 2016년 추곡수매가는 가장 질이 좋다는 벼가 4만 9천원, 가장 낮은 벼가 3만 5천원이었으니 Kg당 값은 1,225원~900원이다. 군입거리가 드물었던 때에는 한 끼에 쌀을 180g까지 먹었지만 요즘은 많이 먹는 사람이 130g이고 여성들은 100g 정도 먹는다고 한다. 날마다 끼니마다 또 한꺼번에 자루로 사기 때문에 쌀이 비싸다고 느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껌값도 안 된다. 이는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생명산업” 역군들인 농민들에 대한 모독이다. 농업이 기업화·대량화 하면 얼마나 위험한지는 최근 달걀과 육계 파동이 확인해 주고 있다.
우리 농업이 이렇게 된 데에는 대기업 중심 수출 위주 산업구조 때문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결과 쇠고기시장·쌀시장을 개방해 직격탄을 맞은 것은 농업이었고, 희생양이 된 것은 농민들이다. 추곡수매가가 해마다 폭락하고 추곡수매량이 해마다 줄어드는 것은 수입 밥쌀 때문이다. 수입쌀은 해마다 그 양이 늘어난다. 이는 매우 심각한 몇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첫째 식량 자급자족이 붕괴된다. 현재 우리 식량 자급률은 20% 미만이다. 쌀이 80% 정도 됐으나 그마저도 붕괴된 지 오래다. 잡곡류는 3% 정도로 도시 식탁은 수입 농산물이 점령했고 심지어 차례상과 제사상까지 수입농산물 천지다. 사람이 무엇을 먹고 사느냐에 따라 얼이 결정된다고 한다.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싸고 싼 게 농산물인데 누가 농사를 지을지 의문이다. 이러다가 외국인 노동자이 우리 농업을 맡게 될지도 모른다.
둘째 농업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농자천하지대본'을 내세우며 살아 왔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농업 국가이자 벼농사 종주국이다. 충북 청원 소로리에는 1만 7천 년 전 볍씨가 있다. 농업이 벼농사 중심에서 돈 되는 농업으로 급커브를 돌고 있다. 쌀과 잡곡으로 대표 되는 우리 주식(主食)을 내팽개치고 돈이 되는 환금작물(換金作物)인 부식 생산에 매달리고 있다.
셋째 습지가 줄어들어 환경문제를 일으킨다. 우리나라 논은 '람사르습지'에 가입해 있어 보전해야 한다. 그러나 해마다 급격하게 농토가 사라지고 있다. 습지가 줄어들면 줄어든 만큼 생태계에 영향을 주게 되고 환경은 나빠진다.
넷째 농업이 기업농으로 빠른 속도로 재편 된다. 기업농 시대가 되면 농산물은 공산품처럼 기업이 가격을 좌지우지해 가장 비싸지는 게 농산물이 될 개연성이 크다. 또 기업농이 해로운 농산물을 생산해서 유통시켰을 경우 달걀과 육계 파동처럼 국민 생명을 위협할 수 있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다음 주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한다고 한다. 트럼프가 우리나라에 와서 한미 FTA 협정 폐기를 미치광이처럼 떠들 것은 거의 틀림없어 보인다. 공산품 보호와 수출을 위해 더 이상 농업이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농업이 물러설 곳은 없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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