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일요일 가까운 분들과 함께 산에 다녀왔습니다. 멀리서 보면 소 엉덩이처럼 펑퍼짐하고 단조롭던 산도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니 온갖 나무들과 산새들, 그리고 흐르는 물소리들이 한데 어울려 딴 세상에 온 느낌이 듭니다.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작은 폭포가 나옵니다. 폭포가 떨어지는 맑은 호수 위에 빨간 단풍잎 몇 개가 떠있습니다. 여름동안 나뭇잎은 뜨거운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 나무를 한 뼘씩 키워놓은 다음, 말 없이 가지를 떠납니다. 제 몫을 다하고 떠나가는 것들은 저렇게 아름답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혼신을 다해 제 몫을 다한 것이, 한 생을 마치고 미련 없이 훌훌 떠나가야 하는 것이, 낙엽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잎들이 햇빛을 받아 나무가 저렇게 크게 자랄 수 있듯이, 자식을 낳아 정성껏 길러 세상에 남겨 놓은 다음 혼자서 떠나가야 한다는 의미에서 사람도 단풍잎과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은 서울로 전근해간 김모 영사가 어머니 상을 당해 한국을 다녀와서 한 말이 생각납니다. "어머니의 수의를 보니 호주머니가 없더군요".
죽은 사람이 입고 갈 옷에는 호주머니가 없습니다.후손들에게 말 없이 삶의 의미를 전수해 주는 옛 사람들의 지혜를 깨닫게 됩니다. 살아 생전 모아둔 재산은 모두 이 세상에 남겨 두고 떠나가야 합니다. 저 세상에는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모은 돈을 어떻게 쓰고 가는가는 살아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러기에 어떻게 모았는가 보다는 어떻게 쓰고 갔는가가 더 중요한 일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남겨두고 떠나가야 하는 것이 어디 재산뿐이겠습니까. 살아 생전에 누리던 사회적 지위나 명성, 즐거웠던 추억들,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런 것들을 모두 남겨 두고 혼자만 떠나가야 하기 때문에 죽는 것이 서러운 일이 되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 보다도 이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결국은 잊혀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죽는 것이그토록 서러운 일이 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누구 한 사람 동행해 줄수 없는 혼자만의 길, 멀고 먼 길을 혼자 떠나가야 한다는 막막함 때문에 죽음이 그렇게 두려운 것이 되는지 모릅니다. 이별은 떠나가는 사람에게나 남아있는 사람에게나 똑 같이 서럽고 두렵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죽음이 꼭 이토록 서럽고 두려운 일만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죽는다는 것. 그것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결국은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뜨는 해가 저녁이 되면 서산으로 넘어가는 것만큼 죽음은 살아있는 것들에겐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태어날 때 죽음을 끌어안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죽음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지도모릅니다.
이름 모를 열매하나가 툭 떨어져 땅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갑니다. 다람쥐 녀석이 종종 달려가더니 열매에 코를 대기도 하고 앞발로 이리저리 굴려보기도 합니다. 내 삶도 저렇게 스스로 잘 익어 땅에 떨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오메, 단풍 한 잎 또 지네요. 한 잎 이파리 때문에 호수가 떨리네요.
물 따라 흘러가는 단풍잎을 바라보며, 지금부터라도 훌훌버리고 떠나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가을 산에 오르면 누구나 가을 사람이 됩니다. 한국의 아름다운 가을 산이 눈에 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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