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보다 10년 늦은 1886년 제막한 여신상 제작에 얽힌 일화가 많다. 구상부터 시공까지 맡은 프랑스 조각가 바르톨디(Frederic Aguste Bartholdi)는 워낙 거대한 구조물이라 완성에 구조적인 어려움에 봉착하자 에펠탑 설계자인 에펠(Gustave Eiffel)에게 내부 지지설비 설계를 요청한다. 에펠은 이에 여신상 내부에 철골 구조물을 넣자고 제안한다.
철근콘크리트로 속을 만들고 화강암으로 표면을 장식한 기단은 당시 세계 최대 콘크리트 구조물로, 미국 건축가 헌트(Richard Hunt)가 설계했다. 여신상이 겉으로는 단순 조각상 같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축물의 요소를 동시에 갖게 된 배경에는 이런 협업의 과정이 담겨있다.
바르톨디는 1875년 여신상 제작에 나서 1884년 완성한다. 완성된 여신상은 잠시 프랑스 파리에 세워져 있다 이듬해 프랑스 프리깃함 이세르(Isere)호에 실려 이송된다. 무게 225t, 횃불까지 높이 46m, 대좌 높이 47.5m의 거대 구조물 그대로가 아니다. 모두 조립식 부품이어서 해체돼 상자 200여개에 담겨진 채였다. 배에 싣기 위해 분해하고, 옮겨진 여신상을 다시 조립하는 역할은 에펠이 맡았다.
여신상의 얼굴 모델은 바르톨디의 어머니였다 한다. 그러나 나이 많은 어머니가 오래도록 같은 포즈를 취하는 데 쉽게 피로를 느끼자 어머니를 닮은 젊은 여자를 모델로 채용한다. 이 모델은 작업이 끝난 후 바르톨디와 결혼한다.
여신상의 얼굴은 진지한 표정의 아테나를 닮았다 한다. 하지만 처음엔 뉴욕의 여성들로부터 ‘철 지난 드레스를 입은 시대에 뒤진 주부’라며 냉대를 당한다. 미국이 독립한 지 100년이나 지났음에도 여성들에게 아직 선거권이 없음을 비난하는 뜻에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자유의 여신상은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지금은 미국과 동일시되고 있다.
우리 영암에서도 의미 있는 동상 건립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왕인박사 유적지에 세워진 왕인박사 동상을 다시 건립하는 작업이다. 왕인박사동상再건립고증위원회는 최근 전체회의를 열고 지난 1년여 동안 소위원회를 통해 수렴한 동상 재 건립방안을 잠정 확정했다. ‘친근감 있고 인자한 상이며, 만져볼 수 있는 좌상’이다. 동상 제작은 최인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맡았고, 고고학, 미술사, 복식, 관모 등에 이르기까지 전문가들이 동원되어 치열한 토론을 거쳤다.
고대사 쪽을 맡은 강봉룡 목포대 교수는 “처음에는 동상을 왜 바꾸나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새로 건립될 왕인박사 동상은 여러 전문가들의 고증을 거쳐 제작되는 새로운 시도가 될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동안 학자라기보다는 ‘무사(武士)’에 가깝다는 혹평과 함께, 너무 높아 사진에 담기에도, 가까이하기도 어려웠던 왕인 동상을 대체할 새 동상은 우리에게 낯선 ‘고대인’을 재현한다는 점에서 생소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군민들부터 새 동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아끼고 가꾼다면 영암군의 명물이자 새로운 상징물이 될 수도 있을 터여서 벌써부터 가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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