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변(達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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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변(達辯)>

달변의 정치가를 꼽자면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인상여(藺相如)를 빼놓을 수 없다. 장군 염파(廉頗)와의 '문경지교(刎頸之交)'로도 유명한 그가 있어 강대국인 진(秦)나라도 감히 조나라를 넘보지 못했다. 그는 원래 혜문왕의 환자령(宦者令) 무현(繆賢)의 사인(舍人)에 불과했으나, 조나라와 진나라 사이의 화씨벽(和氏璧)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일약 상대부(上大夫)에 오르게 된다. 화씨벽은 둥근 돌 모양의 비취 원석으로, 진나라 왕이 탐이 나 자신의 땅 일부와 바꾸자고 제의해왔다. 조나라는 주고 싶지 않았지만 진나라의 위세가 두려워 어쩔 수 없이 보물을 내주기로 했다. 대신 그는 보물을 인상여에게 맡겨 진나라에 보냈다.
인상여가 가져간 보물을 받은 진나라 왕은 대신 내주기로 한 땅은 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에 인상여는 꾀를 낸다. 보물에 흠집이 있다며 이를 받아 들고는 별안간 큰소리로 "약속대로 땅을 주지 않으면 보물을 내던져 산산조각 내버리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에 진나라 왕은 약속대로 땅을 내주겠다고 말했다. 인상여는 다시 진나라 왕이 보물을 받으려면 일주일 동안 목욕재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왕이 이를 허락하는 사이 인상여는 하인을 시켜 보물을 조나라로 몰래 가져가도록 했다. 이로써 보물을 고스란히 보존할 수 있게 됐다. '완벽귀조(完璧歸趙)'. '벽(璧)'은 동그랗게 갈고 닦은 옥(玉)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완벽(完璧)'은 한 점 흠집도 없이 훌륭한 옥을 가리키는 말이자, 이 완벽귀조의 줄임말이다.
'달변(達辯)'은 정치가들의 갖춰야할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단순히 현란한 말솜씨를 달변이랄 순 없다.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 적절해야 하고, 말 마디마디 깊은 뜻이 담겨야 달변이랄 수 있다. 강대국인 진나라 왕을 상대로 거침없는 언변을 구사한 인상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흠잡을 수 없는 논리정연함이 숨어있었을 것이다. 달변에는 그만한 지식의 깊이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운 좋게도 언론생활 30여 년 동안 여러 달변의 정치가를 만났다. 작고한 김근태 전 국회의원은 오랜 고문 후유증에도 대화하는 동안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신사'였다. 질문에 대한 답변 하나하나에 막힘이 없었다. 그와 질의응답 하는 내내 과연 지식의 깊이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역시 가까이서 대화 해본 역대 대통령 가운데 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타고난 달변가다. 특히 노 대통령의 경우 발언록 그대로 기사에 따옴표를 넣어 옮겨도 맞춤법에 틀림이 없을 정도로 완벽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경우 정반대다. 최순실 또는 문고리 3인방 정도나 알아들을 정도로 어눌하기 짝이 없는 화법을 구사하는 박 전 대통령은 그렇다 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훈시를 받아 적다가 도저히 말이 되지 않아 그만둔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공보수석이 이를 눈치 챘는지 참석한 언론인들에게 "받아 적지 말라, 나중에 정리해서 말씀자료를 배포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런 그가 최근 검찰에 출석하면서 손수 써온 쪽지를 이렇게 읽었다.
"저는 오늘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전직 대통령으로서 물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습니다마는 말을 아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습니다. 다만 바라건대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됐으면 합니다.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들께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됐으면 한단다. 4대강에 자원외교, 방산비리는 아직 들추지도 않았는데 단순 뇌물과 다스 문제로 그의 재임 중 비리를 매듭지었으면 좋겠다는 뜻일까? 수년 만에 다시 들은 이 전 대통령의 어법은 여전히 해석하기가 애매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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