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 여름옷을 세탁하고 종류별로 분류해서 가을 옷과 교체하고자 몇 달간 잠자고 있었던 의류박스를 풀어 방바닥에 쏟았더니 온 방에 가득이다. 몇 달 전에 분명히 옷장을 정리하여 두어 박스는 의류재활용함으로 보냈는데 이게 무슨 조화일까. 찬찬히 하나씩 꺼내보니 입지도 않은 10년 전의 값비싼 코트와 색깔이 화려하고 풍성한 느낌의 앙고라 스웨터도 눌리지 않게 잘 보관되어 있다. 버리기 아까워, 언젠가는 입겠지 하며 잘 보관했던 기억이 난다. 무려 10년이다. 불행히도 나의 선택을 한번도 받지 못했던 그것들이 고이 포장되어 방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엔 큰 마음 먹고 아낌없이 버리기로 했다. 좀 아쉬운 것들도 눈 질끈 감고 박스에 집어 던졌다. 내친 김에 식기며 화장품, 사무용품까지 모조리 정리하고 난 후 바라본 투명한 가을햇살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세계적으로 일상생활, 음악, 건축, 인간관계 등 모든 면에서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에 대한 관심 및 동참이 은근히 뜨겁다. 미니멀리즘 라이프의 본질은 삶의 가치를 내 소유 중의 무엇인가를 비우는 것에서 찾는다. 법정스님은 저서 '무소유'에서 "우리는 필요에 의해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있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자신에게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고 적게 소유하지만 더 풍요롭게 사는 삶이 본질이라는 지금의 미니멀리즘의 방향을 잘 제시해주는 말씀이다. 언젠가부터 좋은 집, 좋은 차, 수북이 쌓인 비싼 물건들로 삶의 공허함과 욕망을 채우고자 했던 사람들이 진짜 중요한 것에 대해 각성하고 비우며 사는 미니멀리스트로 변신하고 있다.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조용히 한명씩 늘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동지가 생긴 듯 하여 무척 반갑다.
유명한 미니멀리스트인 스티브 잡스와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를 보면 애플에서 쫒겨난 스티브 잡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년한이 지나 오래 묵은 서류를 없애는 일이었다. 중요한 자료는 이미 컴퓨터에 저장이 되어 있고 종이서류는 잠시 확인을 위한 것으로써 책상 위를 어지럽히는 종이부스러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가 신제품을 발표할 때마다 변함없이 까만 폴로 셔츠에 청바지 차림을 고수한 이유도 최고로 집중할 수 있는 일에 몰입하고 자신의 능력과 신제품의 우수한 기술력을 나타내는데 있어 중요하지 않은 옷 고르기 등의 시간낭비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것이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도 마찬가지였으며 그들은 세계적인 부자임에도 미니멀리즘을 실천하여 영감과 집중, 사색과 실천을 통해 얻은 막대한 수입은 자신의 행복추구와 타인에 대한 기부로 이어졌다.
어디 물건 뿐이랴. 흔히 인맥이라고 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거미줄처럼 얽힌 맥락없는 인간관계는 그러한 다양한 인맥의 활용이 꼭 필요한 직업과 사람 사귀길 좋아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나 필요하다. 휴대전화의 주소록에서 생소한 이름, 나쁜 기억의 이름, 거의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 이름 등을 지우는 작업을 해보길 권한다. 가족, 친구, 지인 및 일과 관련된 사람 외에는 소통이 안되거나 가치관 때문에 부딪히는 이름들을 굳이 내 소지품에 보관하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잘 만나지도 않고 연락도 안하는 형식적인 관계 또한 의미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것은 서로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다. 아마 그 사람들이 먼저 걸어 안부를 묻는 경우도 거의 없을 것이다.
빛의 각도가 달라지고 나뭇잎의 색깔이 변해가는 가을 산의 모습을 보면서 내 삶에서 더 비워야할 것이 무엇인지, 진짜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도 무척 즐거운 일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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