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 관련 기록 데이터베이스 편찬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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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인 관련 기록 데이터베이스 편찬 절실"

허경진 연세대 명예교수, 왕인연구 한계 극복 위해 성과 및 기록 관리 필요

왕인박사와 영암군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축적된 연구와 기록들을 데이터베이스로 편찬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특히 그동안 왕인박사의 행적과 공적 등에 대한 많은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 생소하게 받아들이거나 그 신빙성에 회의적인 것은 일본 측 자료에만 의존해왔기 때문이라는 자성론과 함께, 이의 극복을 위해서는 조선통신사들의 '사행록'과 '필담창화집',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연구물 등 국내의 관련자료 발굴과 이에 전거한 학제적 연구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4월 4일 왕인박사 유적지 내 영월관 2층 강당에서 '조선 통신사와 왕인박사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열린 '2019 왕인문화축제 학술강연회'에 따른 것이다.
영암군과 (사)왕인박사현창협회가 주최하고 왕인문화연구소가 주관한 학술강연회에서는 박광순 대한민국학술원 교수가 '조선 통신사와 왕인박사의 만남', 구지현 선문대 교수가 '남용익의 통신사행으로 본 왕인', 허경진 연세대 명예교수가 '왕인박사 기록의 데이터베이스 편찬의 필요성과 그 방안', 일본 오사카역사박물관 오사와 겐이치(大澤硏一) 학예과장이 '조선 통신사와 왕인박사의 만남'이라는 각각 주제 강연을 했다.
허경진 교수는 '왕인박사 기록의 데이터베이스 편찬의 필요성과 그 방안'이라는 주제 강연을 통해, "왕인에 관한 기록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하나는 백제 출신의 왕인이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왕인이 영암 출신이라는 점인데. 이런 행적을 속 시원하게 기록한 국내 기록을 아직은 찾아내지 못했다"면서,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영암군이 20년 넘게 축적해온 왕인 연구의 성과와 후기 조선 일본에 12차에 걸쳐 파견된 통신사 사행원들의 필담창화기록 등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왕인 기록을 데이터베이스로 편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허 교수는 "왕인의 영암 출생설을 기록한 『조선환여승람』을 출판한 시대와 가까운 일본 메이지시대 수신사나 조사시찰단 수행원들이 왕인에 대해 기록한 것은 7종으로, 지난 2005년 9월부터 3년 동안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신사 및 조사시찰단 기록의 데이터베이스를 편찬했다. 수신사 기록 데이터베이스 편찬의 필요성과 그 방법은 글자 그대로 왕인 기록 데이터베이스 편찬의 필요성과 방법이기도 하다"고 소개하면서, "왕인 연구가 본격적인 연구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1천년 넘게 기록되고 전승되어 온 '왕인 박사 기록'을 집대성해 검색하기 좋은 상태로 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공개되어야 한다. 종이책의 한계를 넘어, 일본 학자와 시민들까지 영암군 왕인 박사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하게 되면 왕인 박사가 꿈꾸었던 한일문화교류가 한걸음 앞으로 진전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날 학술강연회에서 박광순 대한민국학술원 교수는 '조선 통신사와 왕인박사의 만남'이라는 주제 강연을 통해 "왕인문화연구소는 그동안 여러 측면에서 왕인의 행적과 공적 등에 관해 연구해왔고, 그 결과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으나, 그 성과가 아직 한국사학계의 공론으로 정립되지 못한 것도 사실"이라면서, "그 중요한 이유는 고고학 분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연구가 일본 측 자료에 의존해오고 있어 국내 학자들에게는 생소하거나 그 신빙성에 회의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따라서 이제 왕인문화연구소가 주력해야 할 과제는 국내 자료의 발굴과 그에 전거한 연구, 특히 학제적 연구"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또 "하지만 당장 국내 자료를 발굴하고 그에 전거해 왕인을 논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므로, 그 중간과정으로 비록 일본에서 얻은 자료일지라도 한국인이 보고 듣고 모아 정리한 자료를 바탕으로 왕인에 관해 논한 문헌들에 전거하는 연구과정이 필요하며, 이 연구목적에 가장 적합한 자료가 조선통신사들의 '사행록'과 '필담창화집', 그리고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연구물이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또 조선통신사의 사행록과 필담창화집, 실학자들의 연구물을 토대로 볼 때 일본의 왕인에 대한 인식은 정치적 변화에 따라 "존경과 멸시의 염이 뒤바뀐다"고 분석했다.
이어 구지현 선문대 교수는 '남용익의 통신사행으로 본 왕인'이라는 주제 강연을 통해 "일본의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처음 등장하는 등 일본에서는 이른 시기 등장한 왕인이지만 우리 쪽 기록에서 왕인이라는 이름이 처음 나오는 기록은 남용익의 『부상록(扶桑錄)』에 있는 「문견별록(聞見別錄)」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남용익이 1655년 사행원이 일본인과 만나는 과정에서 일본 역사에 관한 정보를 얻게 되었으리라 짐작한다"고 추측했다.
구 교수는 또 "라잔 같은 일본문사들이 통신사를 계속 접대했음에도 남용익의 사행록에 처음 왕인의 이름이 발견된 까닭은 신숙주가 쓴 『해동제국기』의 오류를 수정하고 이후 역사를 더 보충하려는 남용익의 노력에 기인했다고 보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일본 오사카역사박물관의 오사와 겐이치(大澤硏一) 학예과장은 더 나아가 '조선 통신사와 왕인박사의 만남'이라는 주제 강연을 통해, "통신사 남용익과 왕인박사에 관련된 정보의 접점은 일본 고전과의 접촉이었고, 그 구체적인 가능성은 당시 일본 교토에 유포되었던 간본인 『일본서기』와의 접점이었다고 생각한다"면서, "당시 일본과 조선을 연결하는 여러 회로의 하나로서 일본의 고전(古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학술강연회를 이끈 정성일 광주여대 교수는 '조선 통신사의 여정과 경제·문화사적 의의'라는 주제논문을 통해 "한일 양국 공동 신청으로 조선시대 통신사(通信使)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고 소개하고, "조선통신사와 일본국왕사의 왕래를 통한 조선과 일본의 외교사행(外交使行)은 결과적으로 문화교류를 확대하는 효과도 가져왔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사)왕인박사현창협회 전석홍 회장은 이번 학술강연회에 대해 "지난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통신사의 기록물 속에 등장하는 왕인박사를 좀 더 심층적이고 체계적으로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면서, "왕인박사에 대한 이해를 한층 깊게 하는 귀중한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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