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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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을 기다리며

정찬열 군서면 도장리 출신 미국 영암홍보대사
“사람이 온다는 건 /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 그의 과거와 / 현재와 / 그리고 //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시인이 쓴 시 <방문객> 부분이다.
벌써 몇 주 전부터 아내는 손님 맞을 준비에 들떠있다. 한국에 사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딸과 함께 온다고 했다. 10년 전쯤 한국 방문 때 만났는데 이번에 남미를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엘에이를 들러 가기로 했단다. 평소 카톡을 통해 안부를 주고받고, 때론 시간 가는 중 모르고 얘기를 주고받는 처지인데도 친구가 오는 게 그리도 좋은 모양이다.
한 열흘 머물 거라고 했다. 음식은 무엇을 할까, 구경은 어디를 시켜주어야 마음에 들까, 자고 깨면 온통 친구 맞을 준비로 머릿속이 꽉 차있는 성싶다. 퇴근 후에도 여행 자료를 챙기고 잘 곳을 예약하는 등, 설레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덩달아 붕 떠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직장 때문에 열흘 모두를 친구와 함께 보낼 수가 없으니 3박 4일은 여행사를 따라 샌프란시스코를 다녀오게 하고, 나머지 4박 5일은 우리 차를 가지고 그랜드캐넌 쪽으로 아리조나와 유타를 거쳐 브라이스 자이언캐넌, 그리고 라스베가스를 돌아오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올랐다. 사람 사는 집에 사람 오는 것만큼 좋은 일이 없다고 얘기하시곤 했던 우리 어머니.
내가 어릴 적엔 거지가 많았다,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때였고, 모두들 살기가 어려운 때였다. 시골 마을까지 거지들이 떼를 지어 돌아다녔다. 문 앞에서 깡통을 두드리며 “어얼 시구시구 들어간다아.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어쩌구 저쩌구 한 바탕 걸쭉한 타령을 늘어놓은 다음, “아주머니 한술 줍쇼…”하며 때 묻은 바랑을 내밀던 풍경이 눈에 선하다.
상이군인들이 몇 명씩 패를 지어 동냥을 오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쇠갈쿠리 손을 휘저으며, 험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물건을 강매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이건 어머니는 이들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저 사람들도 시절을 잘못 만나 저렇게 된 것이라”며 싫은 표정을 하지 않고 적선을 해주었다. 거지는 물론 행상 아줌마들도 홀대하지 않았다. 우리 집을 찾는 사람들에게 어린 내가 보기에 지나치다 싶을 만큼 대접을 했다.
4박 5일 동안 장거리 운전이 만만치 않겠지만 오랜만에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기꺼이 자원봉사를 하기로 작정을 했다. 네비게이션이 있으니 길 찾아 가는 일이야 문제가 아니겠지만, AAA에 가서 지도도 몇 장 구해왔다.
오늘도 아내는 먹거리를 사와 냉장고 가득 쟁여놓았다. 모처럼 친구 덕택에 나도 덩달아 평소에 먹어보지 못한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손님 방문을 앞두고 요즈음 우리 집은 좀 들떠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온다지 않는가.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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