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의 삶과 농업의 미래를 함부로 거래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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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의 삶과 농업의 미래를 함부로 거래하지 말라

김기천 영암군의원(학산, 미암, 서호, 군서) 학산면 유천마을 농부 전남대 사회학과 졸업 정의당 영암군지역위원회 부위원장
봄부터 농업현장은 한숨으로 들썩였다. 감자 양파 마늘 보리까지 봄농산물 가격이 대폭락하여 영농의욕을 꺾어 놓은 것이다. 뒤이어 먹노린재 총채벌레 같은 병해충이 맹위를 떨치더니 그 기세를 목도열병이 이어받아 가을들녘을 휩쓸었다. 태풍은 세 차례나 휘몰아쳤고 폭우까지 더해져 낙과와 도복, 흑수 백수 피해까지 성한 작물이 없을 지경이 돼버렸다. 무화과는 썩어 물러져 수확을 포기해야 했고 벼 생산량은 3분의 1이 줄었다. 풍요로 여유로워야 할 추수철이 탄식과 자조로 뒤범벅이 되고 말았다.
"당장 농업에 미치는 피해 없다"
설상가상. 쑥대밭으로 변한 농업현장에 비보가 날아들었다. 지난 10월 25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선언을 하고 나섰다. 1995년 세계자유무역협정(WTO)에 가입한 지 24년 만에, 올해 2월 미국정부가 공개적인 압력을 가한 지 94일 만에 두 손 든 백기투항이다. 포기 명분은 이렇다.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G20 회원국, 세계무역량의 0.5%를 차지하는 국가 등 총 4가지 개도국 지위 제외 요건을 모두 충족해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율관세로 농산물 수입가격을 통제하고 농업보조금을 통해 농업기반을 근근이 지켜오던 체제가 이렇게 끝난 셈이다. 더 서러운 일은 개도국 지위 포기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농민을 투명인간 취급한 것이다. 생명산업과 식량주권이 벼랑 끝에 다다를 것이 뻔한데도 오히려 당장 농업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강변한다. 피해 대책을 세우겠다, 농업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등 FTA체결 때마다 주워섬기던 레파토리를 다시 늘어놓고 있다. 염치도 책임감도 없는 문재인정부다.
우리는 희생양이 아니다 등외국민 취급하지 말라
문재인 정부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정부의 압력을 피해서 방위비 분담협상에서 한숨을 돌리고 자동차와 공산품 등의 안정적인 수출기반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늘 그래왔듯 국익과 경제논리로 농업과 농민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농민은 그냥 등외국민일 뿐이다. 1995년 WTO체제에 가입한 후 24년이 흐르는 동안 농촌현실은 참담하게 변하였다. 농업소득은 1047만원에서 겨우 245만원이 늘어 1292만원이 되었고 곡물자급률은 29.1%에서 21.7%로 크게 낮아졌다. 농촌고령화율은 16.2%에서 44.7%로 세 배 가까이 높아져 농촌인구 감소율이 OECD회원국 중 가장 컸다. 한마디로 농촌은 피폐화되었고 지속가능성이 소진되었다.
마른 들판에 떨어진 불씨처럼 미친 듯이 퍼져나갈 것이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가져온다. 먼저 현재 1조 4900억 규모인 농업보조총액(AMS)이 절반으로 깎이는데 지금까지 유지돼온 각종 농업보조금 정책이 대폭 후퇴할 것이 뻔하다. 가장 큰 피해는 쌀생산 농가가 입게 된다. 고율관세가 사라질 경우 현재 513%인 쌀 수입관세가 394%로 떨어지고 그만큼 외국산 쌀은 쉽게 국내시장에 진입하게 된다. 주요 양념류도 마찬가지다. 고추는 현행 270%에서 207%로, 마늘은 360%에서 276%로, 양파는 135%에서 104%로 관세가 낮아진다. 이럴 경우 지금도 활개를 치는 값싼 중국산 농산물이 우리 시장을 휩쓸게 될 것이고 국내 농업기반은 황폐화되고 말 것이다. 미국산 소고기를 비롯한 축산물도 예외가 없다. 결국 국내 농업은 크게 요동치고 가격경쟁력을 갖춘 외국산 농산물이 도시 소비자들의 밥상까지 점령할 터이니 그 피해가 마른 들판의 불씨처럼 미친 듯이 퍼져나갈 게 자명하다.
"농업문제 직접 챙기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때 약속한 말이다. 이참에도 그러셨는지 궁금하다. 농민들은 요구한다. 당장 개도국 지위 포기선언을 철회하고 대책부터 먼저 세워라. 임시방편이 아니라 근본대책을 세우라고 외친다.
먼저 농업생산기반 유지와 농민기본소득 보장을 위한 종잣돈이 필요하다. 현재 2.98%(연간 15조 3000억 수준)에 머문 농업예산을 4%로 늘리고 600억대에 머문 농어촌 상생협력기금을 1조원 규모로 확충하며 공익형직불제 예산 3조를 확보해야 한다.
다음으로 국민을 위한 건강한 먹거리 기본권을 확립하는 것이다. 취약계층을 위한 '농식품 바우처사업', 임산부를 위한 친환경꾸러미, 아동 청소년을 위한 과일간식 아침급식 확대, 로컬푸드 소비기반 확대를 통해 우리 농산물의 안정적인 공급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안심하고 농사짓는 환경조성을 위해 기초농산물 '수입보장보험'과 '가격손실 보장제도'를 만들고 농작물 재해보험도 전면개편해야 한다. 청년창업농과 귀농, 후계농을 위한 최소 5년 이상 지원정책도 필요하다.
영암군도 손놓고 있을 일이 아니다. 행정과 의회, 농민과 소비자 단체, 학계 등으로 TF를 꾸려서 농정혁신안을 마련해야 한다. 행정부터 솔선해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이고 민간단체 소모성 행사예산, 단발성 복지예산 등을 대대적으로 손봐서 그 감축분으로 농정혁신예산의 얼개를 짜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잠시 보류된 WTO 차기협상을 다시 시작하는 순간 한국농업의 목숨줄은 우리가 쥘 수 없기 때문이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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