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族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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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族譜)

이진 前)영암군 신북면장 前)전라남도 노인복지과장 前)완도부군수
우리가 말하는 성씨는 성(姓)과 씨(氏)를 합친 말인데 성은 金, 李, 朴 등 성(姓)을 말하고 씨(氏)는 ㅇㅇ金氏, ㅇㅇ李氏 등 본관을 말한다. 우리나라가 성씨를 사용한 것은 삼국시대부터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당시에는 왕과 일부 귀족계층만이 사용하다가 고려후기에 이르러 일반 백성들에게 까지 점차 확대되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1894년 갑오경장 이후에 모든 사람들이 성씨를 갖게 되었다.
통계청에서 2015년 발표한 인구조사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성씨는 2010년 728개에서 2015년 5천582개로 7.7배나 늘었다. 이처럼 성씨와 본관이 크게 늘어난 것은 외국인 귀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법무부 집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로 귀화한 외국인은 1996년 131명에서 매년 꾸준히 늘어 2015년까지 15만9천128명이 국적을 바꾸었다고 한다.
이들이 우리나라로 귀화한 사유는 혼인을 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혼인 신고 시 성과 본을 새로 만드는 창성창본(倉城創本)을 선택했다고 한다. 귀화자가 많이 몰리는 수도권 지역에서는 해마다 수천건의 창성창본이 이루어지는데 주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지명을 따서 '영등포 김씨', '구로 이씨' 등으로 창본을 한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한자가 없는 한글 성씨로 '레', '팜', '쩐', '에', '짱' 등의 성씨가 있고 희귀한 성씨로는 '무크라니', '앙드린카', '하블로' 등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한글 성씨의 경우 2010년 298개에서 2015년 4천75개로 크게 늘었다.
족보는 성씨별로 시조부터 족보 편찬당시까지 가문의 계통과 혈통관계를 기록한 것으로 가계의 지속성과 씨족의 유대를 존중하는 사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러한 족보는 서양에도 있는데 동양과 달리 서양에서는 대체로 개인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기록한다고 한다.
족보의 연원을 살펴보면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부터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는 고려때 부터 등장했다. 족보를 간행하게된 배경은 같은 씨족간의 결혼금지, 같은 신분간의 결혼, 적자와 서자의 구분 등을 위한 목적이 있었다고 한다.
필자도 최근에 고성이씨(固性李氏) 호군공파(護軍公波) 30세손으로 필자가 속해 있는 작은 문중의 족보작업을 했었다. 족보작업을 하면서 우리 조상들이 적장자 중심의 종통 인식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적장자가 집안의 중심으로서 가문을 계승하는 것이 근본 중의 근본이라 생각하고 장손이 아들이 없어 대를 잇지 못하게 되면 양자를 입양시켜서라도 반드시 장손의 가계를 잇도록 했다. 뿐만아니라 제례의식이나 재산분배 등 여러 영역에서 장손의 위상을 높혀주고 우선권을 부여 하는 등 적장자 중심으로 가문의 존엄과 지속성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종가집의 의미도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아예 아이를 낳지 않거나 낳더라도 아들 딸 구분하지 않고 하나만 낳은 세태이다 보니 대를 잇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고 이대로 가다보면 가문의 혈통에 대한 개념도 희미해져 족보도 우리 세대가 지나면 사라진 과거의 유물이 되지 않을까 우려 된다. 실제로 필자가 족보편찬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았는데 일부 젊은 세대들이 족보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
유교의 전통을 꼭 그대로 이어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뀔 수 밖에 없다. 다만 우리가 근본은 알아야 한다. 우리는 흔히 족보가 없다는 말을 한다. 근본을 모르고 정통성이 확실하지 않다는 말이다. 족보를 모르면 나의 시조는 누구이고 나는 어느 계파에 속하고 몇세손이며 조상들이 어떠한 경로를 거쳐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고장에 정착하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조상들 중에서 뛰어난 학식과 인품으로 높은 벼슬에 오르게 되면 족보에 올리고 후손들은 이를 큰 자긍심으로 여기고 가문이 결속하는 계기로 삼고 있는데 족보를 모르면 이 또한 알 수가 없다.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모르고 살다가 나중에 자녀들이 자라서 자신들의 조상 내력을 물어보고 어떠한 분들이셨냐고 물었을 때 답변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세상만사가 다 근본이 있는 것인데 하물며 사람이 자신의 근본을 모르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이 아무리 바쁘고 힘들지만 자신의 조상의 뿌리를 찾아보는 노력을 잠시라도 해 보았으면 한다. 최근에는 어느 가문이나 누구나 쉽게 족보를 찾아 볼 수 있도록 인터넷 전자족보 작업을 하고 있으니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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