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향교 |
을묘왜변 때 영암성까지 쳐들어온 왜구에 의해 소실된 뒤 1603년에 현재의 위치에 이전했다. 소설가 이영현(전 도포면장)이 을묘왜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양달사 장군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바람벽에 쓴 시-달사는 어디로 갔나'를 보면 당시 왜구는 영암향교를 점거한 채 노략질을 일삼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그 와중에 향교는 소실되어 장소를 바꿔 새로 건립된 것이다.
향교의 수난사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1739년에 문묘를 중수하고 1874년에는 향교를 중수했다. 또 일제강점기에 보통학교 임시교사로 사용하다가 1918년 화재로 전소됐다. 1922년 명륜당을 중건했으나 6·25전쟁 때 전소됐다. 이후 1951년 대성전, 1963년 양사재, 1969년 명륜당, 1971년 외삼문, 1976년 내삼문, 1986년 전사청 등을 중건 또는 중수했다.
현재 영암향교는 대성전, 동무, 서무, 명륜당, 양사재, 사마재, 청금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축형태는 동서일렬로 좌학우묘(左學右廟)의 배치라고 한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맞배지붕이고,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 팔작지붕이다. 외삼문 밖으로 홍살문과 하마비가 있고, 외삼문 밖 좌우에 비석 11기가 있다.
디지털영암문화대전에 의하면 영암향교의 하마비(下馬碑)는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으나 향교가 기본적으로 조선 시대 지방 관학인 점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영암읍 교동리 영암 향교 경내 외삼문 밖에 있었는데, 2001년에 자리를 옮겼다 한다. 궁궐이나 능원, 성균관, 향교 등 국가의 존엄을 상징하는 곳에서 예를 갖추기 위해 말에서 내려서 지나가도록 하는 규정에 따라 건립된 영암향교 하마비는 호패형(號牌形)의 석비로 크기는 높이 106㎝, 두께 57㎝다.
1980년 향교 경내 하수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외삼문 밖 연못으로 연결되는 곳에서 발견돼 홍살문 앞에 세워 두었다가, 2001년 12월 출입구 담장 밖 동쪽으로 옮겨 세우면서 서쪽 맞은편에 대리석으로 된 호패형의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라는 명문이 새겨진 하마비를 새로 세웠다. 공자와 동국 18현 등 성현을 모시는 곳이라 하마비가 건립되었고, 따라서 영암향교 하마비는 그 전통이 면면히 이어졌음을 알려 주는 자료라 한다.
하마비 외에 영암향교에 공적비군이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목민관의 치적을 알 수 있는 자료로서 중요하다고 한다.
/ 사진제공 = 영암군청 홍보팀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