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이는 2553년 전 열반하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네팔 땅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7보를 걸으며 읊으신 고오타마 싣달타의 탄생게로 유명한 말씀이다. 비단 불자(佛子)가 아닐지라도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입에 담아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 땅에 석가의 출현은 위대하였으며 세계 정신문화적 여명을 밝히는 장엄한 횃불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삶과 죽음이 무엇이며 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깨닫도록 해 주었다.
첫째 생사(生死)가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과 죽음을, 탄생과 열반을 이원론적으로 둘로 나누어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석가는 생사를 일여(一如)한 것으로 하나로 보았다. 즉 생야일편 부운기(生也一片 浮雲起)라 하여 ‘인간의 탄생은 한조각 뜬구름이 일어남이요’라고 하였으며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이라 하여 ‘죽음은 한조각 뜬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라 했던 것, 곧 생사(生死)를 한 마디로 허공의 뜬구름 한 조각으로 비유함으로써 결코 생사에 매이지 않는 두려움 없는 삶이야말로 깨달음의 길임을 일깨워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더욱 이러한 생사는 윤회하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사실도 설파해 주었다. 결국 생사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존재는 어제 태어나 오늘을 살다가 내일 죽는 것이며, 죽은 영혼이 다시 환생하여 그 업보에 따라 인과응보를 받고 새로운 삶을 영위하는 윤회전생을 산다는 것을 우리에게 깨달음을 통하여 선물한 것이다.
둘째, 왜 인간은 살아야 하는가?
삶은 분명 2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태어남이요 또 하나는 살다 죽는 것이다. 그야말로 모든 만물은 잠깐 머물다 사라져 가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의 법칙에 따라 언젠가는 반드시 소멸된다. 특히 인간을 비롯한 생명이 존재하는 모든 유정(有情)들은 그 수명이 다할 때 까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4단계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요 이 기간을 우리는 삶이라 부른다. 태어난 모든 존재들, 그들은 태어난 이유 때문에 모두 죽는다.
따라서 삶의 까닭, 살아야 할 이유는 사실상 우리가 어떻게 만들거나 조작하거나 인위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왜 사느냐에 대한 물음 역시 어리석은 질문에 속할 뿐 답변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만약 답이 있다면 너무나 많다. 인생본무답(人生本無答)이라 했듯이 인생이란 본래 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 무진장으로 많아서 없다고 하는 것이다. 왜 사느냐 하면 ‘그냥 사는 것’. 이 이상의 답은 없다.
셋째,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
이는 매우 중요하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는 말을 썼다. 이 말은 본래 조선 정조시대 미술평론가 유한준의 글 ‘알게 되면 참으로 아끼게 되고 아끼면 참으로 볼 수 있게 되며 안목이 트이면 이를 수집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저 쌓아두는 것과는 다르다(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 而非徒畜也)’에서 인용한 것이다. 조선조 유한준의 앎(知)을 대한민국의 유홍준은 사랑(愛)으로 바꾸어 놓았다. 과연 명쾌한 재치가 아닐 수 없다. 앎도 사랑도 모두 사람의 일이요 지극한 관심이다.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는 것도 자신 스스로가 얼마나 자신의 분수를 알고 자신의 삶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아는 것만큼(깨닫는 것) 사랑하는 것만큼 자신의 삶을 살아갈 테니까 말이다.
여성학자 오한숙희의 말대로 ‘내 인생의 1번은 나다’. 내가 살아 있어야 자식도 아내도 남편도 친구도 있다. 맛있는걸 보더라도 자식생각 말고 내가 먹고 건강하자. 나의 건강을 지키는 이것이 으뜸가는 자식사랑임을 깨닫자.
부처님이 오신 날 즈음에 다시 한 번 그분의 탄생게를 되새겨본다.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오직 나 홀로(우리들 각자)가 존귀하다. 사바세계가 모두 괴로움이니 내가(우리들 각자)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
도산스님 www.ya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