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욱 시인 |
이 게 충격적인 역사관이라고?
정말 충격적인 것은 그렇게 말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역사관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야당과 일부 언론들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외면한 채 왜곡을 일삼고 있다. 거두절미하고 '점령군' 한 낱말만 빼내서 충격적이다. 미군 철수 하라는 것이냐는 등 색깔론을 덧씌워 천박한 역사관을 자랑하고 있다. 이것이 사실인지 진위 여부와 사실 관계를 확인하려면 맥아더 사령부 포고령을 소환해야 한다.
"미국 태평양 방면 육군총사령관으로서 이에 다음과 같이 포고한다. 일본 제국 정부의 연합국에 대한 무조건 항복은 아래 여러 국가 군대 간에 오래 행해져 왔던 무력 투쟁을 끝나게 하였다. 일본 천황에의 명령에 의하고 또 그를 대표하여 일본 제국 정부의 일본 대본영이 조인한 항복 문서의 조항에 의하여 본관의 지휘 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 (중략)본관은 본관에게 부여된 태평양 방면 미 육군 총사령관의 권한으로써 이에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과 조선 주민에 대하여 군정을 세우고 다음과 같은 점령에 관한 조건을 포고한다. (중략)제3조 주민은 본관 및 본관 권한 하에서 발표한 명령에 즉각 복종하여야 한다. 점령군에 대한 모든 반항행위 또는 공공안녕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를 감행하는 자에 대해서는 용서 없이 엄벌에 처할 것이다."
맥아더사령부 포고령에 38도 이남을 점령하며 그들이 점령군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딴지를 걸고 있다.
한 술 더 떠서 윤석열씨는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을 잘못된 이념을 추종하는 국가로 탈바꿈시키려 한다"고 공안검사 출신도 아니면서 공안검사 같은 역사 인식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스스럼없이 내뱉고 있다. 이에 역사학계는 "이 지사 실제 발언을 교묘하게 비틀어 이념 논쟁과 색깔론에 불을 붙인 것으로 윤 전 총장이 극우 독재정권의 역사관을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점령군으로 온 미군은 3년 간 군정을 실시하고 떠났고, 현재 미군은 6·25 때 참전해 1953년 10월 1일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전시작전권까지 넘겨준 한미방위협약에 의해 주둔하고 있는 주둔군이다. 둘은 성격이 전혀 다른 미군이다. 이를 모르지 않을 텐데도-실제로 역사적 사실을 모르고 공격하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교묘하게 공식처럼 색깔론을 입혀 근거 없이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일삼고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다"고 정의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가 처한 현실은 목숨을 건 멈출 수 없는 치열한 독립 투쟁이었다.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라 이민족에게 나라를 빼앗겨 이민족에게 지배를 받으면서 나라를 되찾으려는 독립 투쟁을 하지 않은 나라는 인류 역사상 없다. 아와 비아가 투쟁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을 창설해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1941년 12월 10일 일제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연합국 일원으로 참전했다. 전쟁은 연합국 승리로 끝났고 참전국은 전승국이 되었지만 우리는 불행하게도 전승국이 되지 못했다. 점령군 맥아더 사령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김구 주석 이하 임정 요인들마저 인정하지 않았다.
연합국은 패전국 독일을 동서(동독, 서독)로 나누어 분할 점령했다. 왜 미·소는 패전국 일본을 분할 점령하지 않았을까? 일제에게서 막 해방을 맞은 조선을 분단시켰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일설에는 미군 대위가 일본 영토로 착각해 38선을 그었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인정할 합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다른 하나는 러시아 중심 유대인들이 만주에 이스라엘을 건국하려고 만주 영유권을 가지고 있는 우리를 남북으로 분단시켜 남북이 서로 싸우게 만들어 놓고 자기들이 만주에 나라를 세우려 했다는 주장이 있다. 유대인들이 자신들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보니 아득한 옛날 조선(고조선)에서 갈려 나갔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건국된 지 30년 뒤인 1985년 요령성에서 직경 250m에 이르는 거대한 여와(전쟁의 신, 결혼의 신) 유적지 지하궁전이 발견되었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