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하다는 것은 이성적 지혜를 무시하고 야심과 꿈에 부풀어 스스로를 제1인자로 조급하게 등극시켜버리는 처사를 의미합니다.
네로황제는 자기 주변의 사람들이 다 무모했습니다. 네로뿐이겠습니까? 영국의 헨리 8세, 프랑스의 루이 16세,
만리장성을 쌓고 통일 중국을 이룰 만큼 잔학무도한 진시황제 유대인학살과 2차 세계대전의 원흉 히틀러 등
학교에서는 그들을 영웅이라고 가르칩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인류역사는 이성의 눈빛을 밝혀 왔습니다. 인생도 우주의 운명을 본받는다고 합니다.
알렉산더나 나폴레옹 같은 싸움꾼들도 태양 앞에 시들어갔습니다. 알렉산더는 동서융합을 위한 헬레니즘 문화를 형성했고, 나폴레옹은 프랑스혁명의 자유 사상을 전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만 결국 두 사람 다 역사에 피만 뿌린 채, 흙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들에 의해서 얼마나 많은 어린이, 부녀자, 청장년, 노인들이 처절하게죽어 갔습니까.
이순신과 세종대왕은 그들과 똑같은 위치에서 삶을 유지하면서도 그들과는 전혀 다른 정신으로 살았다는 것에 주목해야만 합니다. 그들은 낮고 천한 인간쓰레기들을 위해 명예도 영화도 버렸다는 역사적 사실을 잊어서는 안됨니다. 반만년 역사에서 기억할 것은 이것뿐입니다.
독자 여러분!
우리는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위의 여러군주들은 과연 무엇을 얻었는지요, 승리는 무엇이며 출세는 무엇인가요, 역설입니다만, 세종대왕의 형제들은 왕의 자리를 놓고 서로
사양했다고 합니다. 이 또한 인류사에 두 번 다시 없는 일입니다.
행복해지고 싶습니까? 버리십시오, 행복을 버리십시오, 그러면 나를 가두었던 이기심의 울타리는 광풍에 날아가고 천지는 개벽 되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유와 생명력을 맛볼 것입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광활한 행복감을 맛볼 것입니다. 나만의 행복은 무모합니다. 어리석습니다. 동물과 같습니다. 희생과 사랑의 진심 어린 눈물은 죽음도 극복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아예 동물이라고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조금 좋게 보아서 인간이라고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인격자라고 말합니다. 동물성은 자연성의 단계입니다. 인간성은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의 단계지요.
그러면 人格性은 무슨 단계일까요, 한마디로 道德的 단계입니다. 아닙니다. 神의 단계입니다. 인격성의 소질은 스스로 도덕법에 대한 존경심을 받아드리는 능력입니다. 그것은 타율적 자유가 아닌, 자신이 자신에게 만들어서 자발적으로 자신에게 부과한 능력자입니다. 초인이라고 해서 겁낼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인간은 어차피 동물성, 인간성, 인격성을 가능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든 면에 있어 불완전에서 완전에로 발전해 갑니다. 이말 에는 꼭 그럴까 하는 불신하는 마음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이것을 긍정하고 믿을 때 세상은 희망은 살 희망이 있지 않겠읍니까.
네로황제, 영국의 헨리 8세, 루이 16세, 중국의 진시황제, 히틀러 등은 사람 에서 동물로 逆 發展해 간 사람들입니다. 인간사회에는 계급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왕족이니, 귀족이니, 양반이니, 중인 상놈 등 그 이유인즉 가지각색이죠, 득히 왕족은 이성이라는 정신이 100%입니다. 그 밑에 양반은 80% 이상, 중인은 50% 이상 종이나 하인 계급은 짐승과 동격입니다. 중세 계몽시대에 와서 과학의 발전으로 합리적인 사상에 의해서 인간의 가치는 무지몽매를 벗고 빛을 보게 되었지요, 그러나 왕권신수설에 의해서 군주독재자들의 폭정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루소의 인권신수설(사상)이 있을 때까지 한 원칙이 수립될 때까지 민주주의의 대원칙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낮은 자가 높아지고 높은 자가 낮아지리라.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