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평 군수, 3선 문턱서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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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행정

전동평 군수, 3선 문턱서 좌절

재심신청 통해 재경선 결정 끌어내고도 더 큰 득표율 차만 확인

"3선은 후보자 스스로가 아닌 유권자인 군민이 만드는 것" 실감

3선 도전에 나선 전동평 군수가 첫 관문인 더불어민주당 경선 문턱을 넘지 못했다. 우승희, 배용태 후보와의 경선 결과에 불복해 재심을 신청했고, 우승희 후보와의 재경선 결정까지 끌어냈으나 더 큰 득표율 차이만 확인했다. 민주당의 경선 원칙 및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 군수의 패배는 '영암군수 3선'에 대한 지역사회의 뿌리 깊은 거부감(?)이 근본 이유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다름 아니라, 3선은 후보자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유권자인 군민들이 만들어주는, 열심히 일한데 대한 '보답'이라는 사실을 이번에도 실감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전 군수는 지난 4월 28∼29일 안심번호 선거인단 결과 50%와 권리당원 선거인단 결과 50%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경선에서 34.50%의 득표율을 얻었다. 39.13%를 얻은 우승희 후보에 4.63%p 뒤져 2위였다. 배용태 후보는 26.40%에 그쳤다.
권리당원 이중투표 의혹을 제기해 5월 7일 당원 100% 방식으로 진행된 재경선에서는 그 차가 더 벌어졌다. 43.91%의 득표율을 얻었으나 우승희 후보는 56.09%의 득표율을 얻어 무려 12.18%p 차. 현직 군수라는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소속 당원들의 지지율에서조차 우승희 후보를 압도하는데 실패해 결국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전 군수의 패배는 권리당원 이중투표 불법 논란 제기와 배용태 후보의 탈당 및 무소속 출마 결정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이뤄진 것이어서 여러모로 곱씹어볼 일이다.
우선 전 군수의 권리당원 이중투표 불법 주장에 대해 우승희 후보 측은 "전 군수 측도 마찬가지"라고 되받았다. 말하자면 첫 3인 경선 때 2만1천명의 안심번호 선거인단 투표에 권리당원이 포함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권리당원 이중투표는 세 후보 모두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이중투표의 불법 주장에도 불구하고 재경선에서 당원들의 표심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우 후보에 대한 지지만 더 견고해졌다. 결과적으로 전 군수가 재경선의 빌미로 내세운 이중투표 불법 주장이 당원들에게는 먹혀들지 않은 셈이다.
배용태 후보는 첫 경선 패배 뒤 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가 전 군수 측이 재심을 요구하며 반발하자 탈당 후 무소속 출마로 입장을 급선회했다. 패배를 인정하면서 일부 지지자들에게는 전 군수 지지를 당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 역시 전 군수 측에 이득이 되질 못했다. 첫 3인 경선 때 배 후보가 얻은 득표율이 전 군수 측에 전가되지 않은 것이다. 역시 선거는 단순한 '산수(算數)'가 아니었음이다.
따라서 전 군수의 두 차례 경선 패배는 '영암군수 3선'에 대한 지역사회 내의 뿌리 깊은 거부감 때문 외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실제로 영암은 오는 6월 1일 실시될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까지 단 한차례도 3선 군수를 허용하지 않은 곳이 됐다. <영암군민신문> 고정칼럼 '낭산로에서'의 필진인 이진 전 완도부군수가 쓴 칼럼을 인용해보자.
1995년 6월 27일 치러진 제1회 선거 때는 3명의 후보가 출마해 민주당 박일재 후보 1만2천691표(36.73%), 무소속 김철호 후보 1만1천829표(34.23%), 민주자유당 전정식 후보 1만29표(29.02%)로 박일재 후보가 당선됐다. 당시 박일재 후보는 재경영암군향우회장을 역임한 변호사 출신으로 지역에서 활동한 경력이 거의 없었음에도 민주당 전략공천을 받아 출마해 지역토박이인 무소속 김철호 후보를 불과 862표 차로 누르고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뒀다.
1998년 6월 4일 치러진 제2회 선거는 박일재, 김철호 두 후보의 리턴매치였다. 이번에는 거꾸로 박일재 후보가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하고, 김철호 후보가 공천을 받았다. 새정치국민회의 김철호 후보 1만7천653표(51.9%), 무소속 박일재 후보 1만6천355표(48.09%)로 김철호 후보가 3년 전 패배를 설욕했다.
2002년 6월 13일 치러진 제3회 선거 때는 새천년민주당 김철호 후보 1만8천369표(54.36%), 무소속 김일태 후보 1만5천420표(45.63%)로 김철호 후보가 재선에 성공했다. 두 후보 모두 지역토박이자 김해김씨 같은 씨족끼리 맞붙어 치열한 접전을 벌였으나 정당 공천과 현직 프리미엄을 앞세운 김철호 후보가 승리했다.
2006년 5월 31일 치러진 제4회 선거는 현직인 김철호 군수가 건강상 이유로 불출마해 3선이 무산된 가운데, 열린우리당 김일태 후보 1만6천691표(53.65%), 민주당 장경택 후보 1만4천419표(46.34%)로 김일태 후보가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이어 2010년 6월 2일 치러진 제5회 선거는 김일태 군수가 무투표 당선돼 재선에 성공했으나, 2014년 6월 4일 치러진 제6회 선거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전동평 후보 1만6천382표(50.7%), 무소속 김일태 후보 1만1천810표(36.55%), 무소속 최영열 후보 4천115표(12.73%)로 전동평 후보가 당선됐다. 김일태 후보의 '3선 꿈'은 무소속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좌절됐다. 이어 지난 2018년 6월 13일 치러진 제7회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전동평 후보 1만5천717표(51.4%), 민주평화당 박소영 후보 1만620표(34.73%)로 전 후보가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3선 문턱인 경선에서 패배했다. 아예 본선에 진출해보지도 못한채다.
이진 부군수는 이들 역대군수들의 재선 또는 3선의 꿈 좌절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박일재 군수는 법조인 출신답게 정치적 고려보다는 법과 원칙에 입각한 합법적이고 청렴한 군정을 펼친 반면에 정치적 소통은 다소 미흡했다. 그 뒤를 이은 김철호 군수는 지역토박이로서 탄탄한 대중적 지지와 중앙 정치인맥을 활용해 청렴하고 뚝심 있고 선 굵은 군정을 이끌었지만 지역의 비전을 제시하는 군정철학이 아쉬웠다. 김일태 군수는 지역에서 오랫동안 정치와 사업을 한 정치·사업가답게 행정절차를 중시하는 행정관료들을 강력한 카리스마로 설득하면서 정치적 판단으로 지역현안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했으나 정치 반대세력을 포용하는 통합의 리더십은 미흡했다."
그렇다면 전 군수는 왜 3선 문턱을 넘지 못했을까? 이에 대한 평가는 전 군수의 임기가 아직 남아있어 뒤로 미루자. 다만 이 부군수가 정리한 '3선 군수의 조건'은 의미심장하다.
"역대 군수선거를 살펴보면 우리 영암군은 지방자치가 부활된 이후 한번도 3선을 허용하지 않았다. 자치단체장을 3선까지 허용한 현행 지방선거제도의 취지는 군수를 세 번하라는 것이 아니라 초선 4년 동안은 군정이 나아갈 방향을 정립해 이를 실현할 기반을 다지고, 이에 대해 선거로 군민들의 평가를 받아 재선하면 본격적으로 자신의 구상을 실현토록 함으로서 군정의 안정성 지속성을 확보토록 하는데 있다고 본다. 3선은 단체장이 지역발전의 획기적인 성과를 올렸을 경우 한 번 더 군정을 맡아야 한다는 군민들의 공감대가 넓게 형성되어 군민 추대 형식으로 선출되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결국 '3선 영암군수'는 후보자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군민들이 만들어주는 자리로, 열심히 일한데 대한 보답의 뜻이 담겨있다고 보아야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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