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출산 바위이름 실태
<2>옛 문헌 속에 보이는 이름
<3> 옛이름 찾기·새이름 붙이기
지난호 월출산 바위 이름들의 명명 실태에 이어 이번호에서는 옛 문헌과 사료에 나오는 바위들의 옛이름을 찾아본다.
옛말과 사투리가 함께 섞인 정감있는 바위 이름들에는 월출산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왔던 주민들의 삶과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풍부하지 않은 자료와 단편적인 고찰이지만, 적어도 1980년대 후반까지 실존했던 바위와 그 이름을 소개한다.
문헌에 나오는 바위가 지금은 무성한 숲에 가리워져 사람들 눈에서 사라진 경우도 있다고 하고, 이름은 있지만 사진이 존재하지 않거나, 정확한 위치 설명이 부족해 쉽게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고증을 가능케하는 이러한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희망적이다. 자료를 토대로 바위의 존재 여부를 살피고 잃어버렸던 바위이름을 고증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
덕석바우·할미바우·문턱바우·소바우
옛말·사투리 혼합된 정겨운 이름들 많아
사진없어 아쉬움… 정확한 위치 고증해야
1988년 바위문화 조사 실시
월출산의 바위에 관한 현존하는 자료들중 기자가 참조한 자료는 영암군과 영암문화원이 발간한 ‘마을 유래지(1988년)’와 ‘월출산(1988년)’, ‘영암군지(1998년)’, 전 영암군산악회장 최영수씨가 발간한 ‘신령의산 월출산(1989년)’, 대원사 발간 ‘월출산(1997년)’, 목포대학교박물관이 발간한 ‘월출산 제사유적(1996년)’이다.
다행스럽게도 1988년 영암문화원이 발간한 ‘월출산’은 월출산의 바위 문화 조사를 시행한 결과 보고서로서 바위 이름과 유래, 전설, 신앙, 비석, 폭포, 당시 월출산 주변 마을의 가옥 형태, 주민들의 생활상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어서 이를 인용했다.
‘바위 문화 조사’는 1987년 10월부터 88년 2월까지 영암군과 영암문화원 지원으로 광주민학회가 월출산 전역에 걸친 탐사였으며 김정호, 성춘경, 박영도, 천득염, 표인주 교수 등이 참여했다. 그들이 참조한 문헌과 자료도 100여편에 달하고 있어 고증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위와 관련해서는 사진을 많이 수록하지 않은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위의 자료를 토대로 월출산을 감싸고 있는 행정구역, 즉 영암읍 개신리, 용흥리, 회문리와 군서면 도갑리, 월곡리에 소재하고 있는 바위들의 이름과 유래, 위치 등을 발췌해 소개한다.
큰 봉우리들의 유래는 잘 소개된 기록들이 많아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문헌에 보이는 큰 봉우리들의 이름만 열거하자면 천황봉, 구정봉, 도갑봉, 일관봉, 사자봉, 정천대, 주지봉, 시루봉, 기봉, 운무봉, 소년봉, 관천봉, 쌍석봉 등이다.(월출산1988년 74~80쪽)
영암(靈巖)은 동석(動石)
월출산의 기암괴석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영암(靈巖)은 신령스러운 바위(靈巖)라는 뜻으로 동석(動石)을 이르는 말이다.
<뾰족한 암봉(岩峰)과 골짜기를 따라 폭포와 유적들이 산재해 있으며, 곳곳에 얽힌 수많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예로부터 월출산 산자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경외감을 가져왔는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암(靈巖)에 관한 것이다.>
----- ‘네이버 테마백과’
여기에 등장하는 영암(靈巖)은 월출산의 동석(動石)을 말한다.
▲동석(動石) : ‘동국여지승람’ 기록에 따르면 <동석은 구정봉 아래에 있으며, 그 무게는 비록 천 백인이 동원해도 움직이지 못할 것 같으나 한 사람이 움직이면 떨어뜨릴 것 같으면서도 떨어드릴 수 없다. 그러므로 영암(靈巖)이라 칭하고 고을이름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한다.(월출산1988년 82쪽)
본래 3개의 동석(三動石)이었지만 ‘이 바위 때문에 이곳에서 큰 인물이 난다’라는 전설이 전해져 이를 시기한 중국사람들이 동석을 밀어 떨어뜨렸다. 그중 하나가 다시 제 자리를 찾아 와 신령스러운 바위, 영암(靈巖)이라 불렸다. ‘끈덕바우’라는 이름이 몇곳에 나오는데 3동석(三動石)을 말하는 듯하다.
■영암읍 개신리
▲용바우 : 칠치폭포 아래에 있는 바우로 용처럼 생겼다. 월출산 바우제를 모시는 곳이다.
▲희서리 바우 : 내동마을 동족 내(川) 건너에 있는 바위, 여러개의 바위가 흩어져 있다.
▲거북바우 : 천황사 입구 미술관 앞에 있는 바우로 사자봉을 향해 기어오르는 거북이 형상이다.(월출산1988년 86~87쪽)
■영암읍 용흥리
▲간짓대성 : 농바위 위에 있는 큰 바위 간짓대를 세워 놓은 것처럼 높고 길다.
▲공알바우 : 뱅풍바위(병풍바위) 위에 있는 바위, 공아처럼 생겼다.
▲귀뚤바위(굴뚝바위) : 새실(鳥谷) 서남쪽에 있는 바위, 큰 바위가 층을 이루어 높이 솟아 있는데 뒤쪽에 굴뚝처럼 생긴 구멍이 뚫려 있다.
▲끈덕바우 : 탑골 동남쪽에 있는 바위를 말하기도 하고, 새밭굴에 있는 바위를 말하기도 한다. 한사람이 구르나 열사람이 구르나 끈덕거리는 정도가 같다.
▲농바우 : 탑골 동남쪽에 있는 바위이며, 농처럼 생겼다.
▲뱅풍바우 : 장군바위 남쪽에 있는 바위, 병풍처럼 생겼다.
▲범바우 : 새실 서남쪽에 있는 바위, 범처럼 생겼다.
▲자래바우 : 탑골 뒷산에 있는 바위, 자라처럼 생겼다.
▲장군바우 : 새실 남쪽에 있는 큰 바위, 모양이 장군이 투구를 쓰고 서 있는 것 같다.
▲할미바우 : 장군바위 아래에 있는 바위 등이 굽은 할미처럼 구부정하다.
▲불상바우 : 천황봉 아래 900고지 쯤에 조각칼로 깎아 놓은듯한 불상형상의 바위가 있다.
▲남근바우 : 천황봉에서 구정봉에 이르는 능선에 있으며, 선돌, 남근바위라 부른다.(월출산1988년 87~88쪽)
■영암읍 회문리
▲깨금바우(가금바우) : 광대바우 동북쪽에 있는 바위.
▲광대바우 : 큰 재 서북쪽에 있는 바위, 광대처럼 생겼으며 무당이 줄을 걸고 탔다고 전한다. 이곳을 ‘당골네깍끔’이라 하며 ‘廣大岩’이라 종서로 새겨져 있다.
▲덕석바우 : 북바우 북쪽에 있는 바위, 덕석(멍석)처럼 생겼다.
▲떡시리바우 : 구름다리 문안 복판에 있는 바위, 떡시루처럼 생겼다.
▲마당바우 : 도둑골 남쪽에 있는 바우, 마당처럼 평평하다.
▲북바우 : 광대바우 앞에 있는 바우, 북처럼 생겼다.
▲삿갓바우 : 천황봉 서남쪽에 있는 바위, 삿갓처럼 생겼다.
▲소바우 : 회의촌 서남쪽에 있는 바위, 여기서 소를 잡았다고 한다.
▲씹바우 : 용치 동남쪽에 있는 바우, 씹박골, 자지바우라고도 한다.
▲책상바우 : 떡시리바우 아래에 있는 바위, 책상처럼 생겼다.
▲통꼭지바우 : 보제골 동남쪽에 있는 바위, 꼭지달린 통처럼 생겼다.(월출산1988년 89쪽)
■군서면 도갑리
▲가새바우 : 월대바우 동쪽에 있는 바위, 가위처럼 생겼다.
▲거북바우 : 끈덕바우 아래에 있는 바우, 모양이 거북과 흡사하다.
▲기름바우(지름바우) : 땀안골(도갑석성돌담의 안쪽) 서남쪽에 있는 바위, 큰 바위가 비스듬하게 되어 있느데, 비오는 날에 바라보면 빗물이 흘러내려 마치 기름을 발라 놓은 것 같다 함.
▲끈덕바우 : 가새바우 동남쪽에 있는 바우, 한사람이나 열사람이 끈덕거리는 진폭이 같다고 한다.
▲대바우 : 지름바우 서남쪽에 있는 넓고 큰 바위.
▲마당바우 : 지침바우서 북쪽에 있는 바위, 마당처럼 넓고 평평하.
▲문턱바우 : 수리집골 남쪽에 있는 바우, 문턱처럼 생겼다.
▲범바우 : 수재바우 끝 동쪽에 있는 바위, 범처럼 생겼다.
▲베틀바우 : 월대암 아래에 있는 바위, 밑에 백제때 학자 왕인이 문수암에서 공부할때 이 굴안에 책을 넣어 두었다는 책굴이 있다.
▲봉창바우 : 월대바우 북쪽 산에 있는 바위, 구멍이 뚫려 있는데 모양이 봉창처럼 생겼다.
▲부서바우 : 들몰(坪里) 서남쪽에 있는 바위, 부엌처럼 생겼다.
▲부엉바우(부흥바우) : 지름바우 북쪽에 있는 바위, 부엉이가 깃들었다고 한다.
▲월대바우 : 문산재터 위에 있는 크고 넓은 바위, 8월 보름날 밤에 이 위에서 달맞이를 했다.
▲지침바우 : 베틀굴 밑에 있는 바위, 백제때 학자 왕인이 종이를 만들어 썼던 바위로 전한다. 1988년 한국문화재 보호협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월출산일대에 자생하는 닥나무가 발견되었는데 지침바우의 구전과 연관이 있음직하다.(월출산1988년 89~91쪽)
■군서면 월곡리
▲닭바우 : 원앙골 남쪽산에 있는 바위로 닭의 볏처럼 생겼다.
▲명나바우 : 장방골에 있는 바위, 명매기(칼새) 집이 있었다고 한다.
▲배바우(舟岩) : 배바우 마을에 있는 큰 바위, 배처럼 생겼고, 이 근처에 배가 드나들었다고 하며 마을앞에 ‘정수나리’란 지명이 전한다. 이 바위는 남방식 고인돌로서 주변에 4기가 더 있다. 뗏목이라 부른다.
▲범바우 : 범골 뒷산에 있는 바위, 범이 살았다고 한다.
▲소바우 : 명나바우 위에 있는 바위로 모양이 소처럼 생겼다.
▲지름바우 : 서낭골에 있는 바위, 넓고 평평한 바위가 비스듬히 놓였는데, 비가오면 빗물이 흘러내리고 멀리서 보면 기름을 발라놓은 것처럼 번질번질 하다.
▲할미바우 :주암리 동쪽에 있는 바위로 활터가 있었다.(월출산1988년 92쪽)
전설 담긴 바위들
이 외에도 ▲양자암(養子岩) : 왜란 때 근처 고을의 백성들이 처자를 데리고 와 난을 피했다는 유래가 있어 양자암(養子岩)이라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여말선초 왜구 극성기에 피난처로 보이며, 오르는 길 한 곳만 차단하면 다른 곳으로 오를 수 없는 천연요새다.(월출산 82쪽). 이 바위에 대한 정확한 위치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용암(龍岩) : 용암사지가 있던 지역이며, 국보 마애불이 있는 곳이다. 그 아래 운차(雲車), 마차(馬車), 녹차(鹿車) 등 세개의 석차(石車)가 있다.(월출산1988년 83쪽) 이 기록으로 보아 구름, 말, 사슴 형상을 한 바위가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쌀바우(쌀난바우) : 강진군 성전면 월남사의 말사인 보장암의 뒤편에 쌀이 나오는 큰 바위가 있었다는 전설이 담긴 바우다. 욕심많은 승려가 구멍을 크게 뚫어 놓는 바람에 쌀이 한 톨도 나오지 않았다는 전설이다.(강진군 향토지, 월출산1988년 84쪽)
▲범바우(虎岩) : 강진군 월남리와 신풍리 사이의 도로변에 있는 큰 바위. 바위 형상이 꼭 호랑이 같으며 전설이 있다. 소와 함께 밤길을 가던 사람이 있었는데 소가 그 바위를 호랑이로 잘못 알고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뿔로 들이받으며 죽었다는 전설이다. 도로확장 공사로 인해 그 모습을 잃었다고 한다.(강진군 향토지, 월출산1988년 84쪽)
정확한 이름·위치 고증 해야
위의 바위 이름들은 월출산 정상 뿐만아니라 월출산 산자락 마을에 산재한 바위들을 모두 망라한 듯하며, 중복된 이름들도 더러 눈에 띈다. 중복된 이름은 같은 바위일 수도 있지만, 다른 바위에 같은 이름이 붙은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바위 위에서 소를 잡았다 해서 ‘소바우’, 소 모습을 닮았다 해서 ‘소바우’이기도 하다.
위에서 열거한 것처럼 월출산의 바위 이름들은 주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듯 정감있고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들이 눈길을 끈다. 지금은 거의 잊혀져가는 옛지명과 사투리가 함께 등장하는 바위 이름들은 산자락에 살던 옛 사람들의 삶과 신앙, 정신, 문화가 녹아있는 ‘문화결집체’라고 할수 있다.
이제, 아직 존재하는 자료를 토대로 바위들의 정확한 이름과 위치를 고증하고 옛이름을 되찾고 물려주려는 노력이야 말로 이시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라 생각하며, 더 늦기전에 고증과 연구를 통해 월출산 바위 이름들을 체계적으로 정립해야 할 때다.
/변중섭 기자
변중섭 기자 jusb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