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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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을 찾아

조정현 영암읍도시재생주민협의체 위원장 영암군향토사 감수위원 영암학회 연구회원
매월당 김시습이 "호남에서 유일한 그림 속 같은 산(南州有一畵中山)"이라 노래한 영암 월출산의 깊은 골 자락, 그곳에는 조성 시기가 신라 후기 또는 고려 전기로 추정되는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국보 제144호로 현존하는 불상 중 최고 걸작 중 하나이다. 한 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신령한 기운이 감도는 구정봉 아래, 용암사지를 찾아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큰 암반에 새겨져 전체 높이가 8.6m에 달한다. 마애(磨崖)는 석벽에 새겼다는 뜻이고, 여래(如來)는 석가모니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좌상(坐像)은 앉아 있는 형상이란 뜻이니,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은 '바위에 새긴 석가모니의 앉아있는 모습'을 뜻한다.
백제 장인의 후손이 용암사 주지의 부탁을 듣고, 정과 망치를 가지고 이 곳에 올랐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미켈란젤로가 교황 율리오 2세의 부탁을 한사코 거절하였지만 어쩔 수 없이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올라야 했던 것처럼, 그 석공도 주지 스님의 강권으로 월출산 골짜기에서 몇 년이고 바위를 쪼아대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석공의 이름도 잊혀지고, 건립 시기에 대한 기록도 없지만, 그가 남긴 예술 혼과 불상의 장엄함은 그대로 남아있다.
기원전 4세기 경,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가 동방원정길에 나서면서 동서양의 문화는 융합되기 시작하였다. 그 융합된 문화를 '헬레니즘 문화'라 일컫는다. 서양에는 동양의 문화가 흘러갔고, 동양에는 서양의 문화가 들어오게 되었다. '문명의 충돌지'였던 간다라 지방(현 파키스탄 북서부지역)은 알렉산더의 동방원정 이후 그리스 로마의 문화가 이 지역에 자연스레 전파된 것이다. 불상의 또렷한 얼굴형과 길고, 큰 팔다리는 일반적으로 간다라 양식의 정형이라고 여겨진다.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의 영향은 1,400여년이 흐르는 동안 간다라 지방을 거쳐 동방의 신령한 산, 월출산에서 바위를 다듬던 이름 모를 석공의 손길에도 미쳤던 것이다.
현재 마애여래좌상을 찾아가는 탐방로는 아쉽게도 구정봉 입구 근처에서 이정표를 찾아 따라가는 코스 하나뿐이다. 그 길을 따라 불상을 찾아 가면, 먼저 꼭 삼층석탑이란 표식을 따라 불상 건너편으로 가봐야 한다. 작은 바위 위에 올려진 삼층석탑을 전경으로 불상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그 곳에 서서 불상을 보게 되면, 절로 숙연해지는 존엄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소나무 뒤로 놓인 바위도 올라가보자. 담양 용소폭포에서 시작한 영산강의 큰 물길과 영암 땅을 훑고 지나온 영암천이 만나는 두물머리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영암의 너른 들판이 드넓게 펼쳐진다. 어느 풍수의 대가께서 이 곳을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명당 터라 한 이유는 그 바위에 올라서봐야 알 수 있다.
지난 주 일요일 오후,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켰던 '마애여래좌상'은 특별한 손님들을 맞았다. 바로 영암 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암의 역사와 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우승희 영암군수께서 먼 길을 돌아 찾아왔기 때문이다. 산행길 내내 흐렸던 하늘이 불상에 다다르니 훤한 햇볕이 비춰 왔고, 영암천과 영산강 줄기는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처음 그 자리에 서게 된 사람들의 호흡은 가파르고, 다리 힘은 한 발짝 더 걷기도 힘들 지경이었겠지만, 전율이 느껴질 정도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었다.
같은 자리에서도 일 년 중 몇 번이나 그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가을날 오후의 햇살이 비추던 그날, 그들은 천복을 받은 사람들이었다.거대한 불상 앞에 고시레를 하며, 긴 세월 동안 영암 땅을 지켜준 불덕(佛德)에 경의를 표한 후, 불상 앞쪽 총총히 놓인 돌계단을 따라 빙 둘러 내려서면, 탁 트인 용암사지가 자리한다. 지금도 졸졸 흐르는 우물은 아직도 마르지 않고, 음용으로는 부적합하겠지만, 산객에게 시원한 세안을 보시(普施)한다. 용암사지 서쪽으로 난 계단 위로는 '용암사지 삼층석탑'(보물 1283호)이 터를 잡고 있다. 이 석탑은 위로 올라갈수록 돌 받침수가 줄어드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탑 양식을 지니고 있다. 석탑위로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은 부드러운 옅은 오랜지 빛을 띠고 있다.
마애여래좌상과 그 건너편 바위, 그리고 용암사지와 삼층석탑. 이 아름다운 곳에 더 많은 사람들이 오게 하고, 그 사람들이 영암을 거쳐 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암사지 아래 대숲 사이에서, 저 아래 큰 골(대동제)로 이어질 길을 월출산의 새로운 탐방구간으로 조성하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 영암군수께서 직접 불상을 찾은 영암군에서도, 그리고 그동안 탐방로 조성을 위한 준비작업을 해온 국립공원에서도, 충분한 계획을 가지고 차근차근 준비를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는 산림청이 맡고 있는 구간을 열어 영암사람들이 오래도록 소망해온 바를 들어줄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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