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천 학산면 거주 농민 전 영암군의회 의원 |
이틀 후인 10일 오전 군청앞 광장에서는 양곡관리법 개정 거부, 노동자 탄압, 대미 대일 굴종외교를 일삼는 윤석열정권 규탄 천막농성을 시작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영암군 각 농민단체와 민주사회단체가 동참했다.
이 서로 다른 두 집회를 관통하는 화두는 단연 '쌀'이었다. 수천 년 동안 백성의 밥상을 책임져온 쌀이 배제와 질시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현실에 맞서 생산자와 소비자는 힘을 모아 제자리를 되찾자고 외쳤고 농민단체는 정부를 향해 날선 성토를 쏟아낸 것이다.
돌이켜보면 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지속적이고 계획적으로 유포돼 왔다. 이른바 세계화 흐름에 동승한다는 명분으로 각종 국제기구와 나라간 협정을 진행하면서 쌀을 희생양 삼아온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경제학자와 행정관료들이 나발을 불어댔고 언론이 가세해 부르댔다. 몇해 전부터는 전문가를 자처하는 자들이 비만의 주범인 정크푸드와 육식위주의 식단을 제쳐놓고 쌀을 지목하더니 마음껏 두들기며 다이어트를 선동했다.
상황이 날이 갈수록 나빠지더니 급기야 올초 정부는 밥맛이 좋기로 정평이 난 신동진이란 벼를 수확량이 많다는 이유를 들어 수매품종에서 퇴출시키는 폭거를 저질렀다. 쌀에 대한 공격은 진영을 가리지 않았다. 진보논객이라는 자는 쌀이 썩어가는데 나랏돈을 쓰는 게 합리적이냐며 곧 죽을 70세 농민들과 이주농업노동자들을 위해 세금을 쓸 게 아니라 청년들을 위해 쓰자며 힐난을 퍼부었다. 집권당 한 최고위원은 밥 한 공기 더 먹자는 쉰밥에 초파리 꼬이는 레파토리를 꺼내 들었다. 모두가 한통속이다. 놀부마누라한테 주걱으로 싸대기를 쳐맞을 망발이 점입가경이다.
벼농사 준비에 나선 농민들의 마음이 형언하기 어렵다. 모멸감과 수치심에 잠을 이룰 수 없다. 5천만 백성을 먹여살린 쌀이 죄고 쌀농사를 짓는 우리가 죄인이다. 일제강점하 선조들의 항일투쟁처럼 경작거부, 수확거부 총파업이라도 해야 할까? 농업경영체등록증 다 반납하고 옥쇄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전체 농민 중 70%가 연간 1천만원 이하 소득자이고 그 중 대부분을 벼재배를 통해 얻는다는 통계는 무엇을 말하는가? 지방소멸 위기 운운하며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농촌을 만들겠다는 말은 한낱 사탕발림이었단 말인가? 쌀농사가 무너지면 농촌은 순식간에 황폐화될 것이 뻔하다. 정부가 나서서 건설업자의 미분양아파트를 대신 사주는 것은 경기부양이고 남는 쌀을 사들이는 것은 경제부실을 조장하는 것이냐는 오늘 우리의 비명이 서럽다. 이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지리라는 기대를 걸 기력조차 아깝다.
그렇다면 지방정부라도 나서야 한다. 쌀장려금도 좋고 쌀 팔아주기도 좋지만 쌀생산기반을 탄탄하게 돋우고 좋은 쌀을 널리 소비하기 위한 공공영역을 크게 확대해야 한다. 영농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대대적인 농기계 임대사업의 확대, 볏짚환원사업의 확산, 가축분뇨를 양질의 퇴비로 자원화해 농토에 돌려주는 자연순환농업의 제도화, 농민수당을 뛰어넘는 농민기본소득 시범 실시 등을 적극 모색해볼만 하다. 재원 확보를 위해서 불필요한 농업보조금 제도를 농업인과 협의해 대대적으로 손보는 일도 더 미룰 일이 아니다. 지방정부 차원의 쌀소비 확대를 위한 가능한 방안이 많다. 쌀식품을 이용한 학교 아침급식 전면화와 노동자 조식 식당 운영, 영암쌀 사용 외식업체 차액보전제 도입은 파급효과가 매우 클 것이다. 임산부 친환경꾸러미처럼 성장기 아이들을 위한 아미노산쌀, 영양결핍 노인층을 위한 쌀빵 등 생애주기별 기능성쌀을 계약공급하는 맞춤형 쌀재배단지도 연구해볼만 하다.
필자는 무엇보다 농민들도 과감한 인식전환을 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건강하고 맛좋은 쌀을 재배해 잃어버린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벼품종 선정에서부터 재배과정, 추수후 보관까지 소비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친환경쌀 생산이력제를 도입하면 좋겠다. 소비자가 외면하는 쌀을 농사짓기 쉽고 다수확 품종이란 이유로 행정을 압박해 밀어부치는 우를 더이상 고집하면 안 된다.
한살림 달마을공동체 회원들은 매월 정례 월례회를 시작하면서 좋은 시나 글을 함께 읽으며 농민으로서 마음가짐을 잠시 성찰하는 마음나누기를 한다. 최근 회의 때 함께 읽고 부른 노랫말을 여기에 옮긴다. 상처받은 이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
'쌀 한 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무게를 잰다/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 외로운 별빛도 그 안에 스몄네/농부의 새벽도 그 안에 숨었네/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었네/버려진 쌀 한 톨 우주의 무게를/쌀 한 톨의 무게를 재어본다/세상의 노래가 그 안에 울리네/쌀 한 톨의 무게는 생명의 무게/쌀 한 톨의 무게는 평화의 무게/쌀 한 톨의 무게는 농부의 무게/쌀 한 톨의 무게는 세월의 무게/우주의 무게'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