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병역사 박물관, 관심 좀 가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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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병역사 박물관, 관심 좀 가집시다!

이영현 양달사현창사업회 사무국장 영암학회 회장 소설가
1530년대 어느 날, 양달사는 형 달수, 동생 달해, 달초와 함께 능주(현 화순)로 넘어가 정암 조광조의 절친인 삼종숙 양팽손(1480~1545)의 밑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당시 가장 친하게 지낸 사람은 양팽손의 셋째아들 송천 양응정(1519~1581), 달사보다 한 살 아래였으나 두 사람은 성리학을 배우고 체득하며 친구처럼 지냈고, 전라도 왜구 문제로 늘 고민하곤 했다. 남달리 힘이 좋았던 달사는 잦은 왜구 침탈에 무과로 전향하여 1537년 급제하였고, 응정은 1540년 생원시 장원에 이어, 1561년 중시(中試)에서 왜구와 여진족 대비책인 이른바 남북제승대책(南北制勝對策)으로 다시 장원을 했다. 1555년 상중(喪中)이던 양달사가 영암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분연히 창의하였을 때 집안의 장래를 걱정하며 달사의 형 달수가 의견을 물어보자, 달사의 생각에 절대적으로 지지 의견을 보낸 사람도 양응정이었고, 그 편지는 지금도 송천유집에 남아 있다.
조선 의병의 역사는 바로 이 두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호남의 의병장 고경명(1533~1592), 김천일(1537~1593), 최경회(1532~1593) 등이 모두 이 두 사람과 깊은 관련이 있다. 김천일은 달사보다 19살 연하로, 20여리 거리에 살면서 양달사를 추종하였다. 1571년 10월 7일 유희춘(1513~1577)의 미암일기에 '노직 나사항, 전 해남현감 양달사, 김천일이 내방했다. 나와 나사항, 양달사가 마주보고 밥을 먹었고, 김천일은 술도 마셨다.(羅老職士恒前海南梁達泗及金千鎰士重來訪余與羅梁對飯於金亦飮之酒)'라고 기록돼 있다. 제주양씨주부공파 족보에는 양달사 의병장이 1557년 12월 20일 을묘왜변 당시 입은 창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나오지만, 미암 유희춘의 일기대로라면 그의 사망 시기는 1571년 이후로 봐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공적에 흠결이 될 일은 전혀 없다. 중요한 것은 양달사 의병장이 김천일을 데리고 함께 내방했다는 것으로, 김천일과 양달사 의병장의 관계가 매우 깊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경명은 고향 선배 양응정을 추종했고, 1581년 영암군수로 부임한 최경회는 1555년의 영암성 대첩에 크게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양달사 의병장의 의병 정신은 영암의 후배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임진왜란시 영암을 대표하는 의병장 중 한 사람인 전몽성(1561~1597)은 양달사와 함께 을묘왜변에 참전한 양달사의 동생 달해(達海)의 사위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전몽성은 동생 몽진과 함께 창의하여 고경명의 휘하로 나아갔고, 1597년 정유재란때 다시 창의하여 9월 25일 해암포(현 학산 은곡리) 전투에서 동생 몽진, 양달해의 장남인 처남 우신(1564~1597) 등과 함께 전사했다. 남암공문헌집(南巖公文獻集)에 따르면, 한석봉의 스승인 영계 신희남(1517~1591)은 양달사와 사돈간이다. 그의 딸은 신희남의 아들 언경의 두 번째 부인이다. 장암문씨인 의병장 문익주(1535~1605)는 신희남의 제자로 김천일 고경명 등의 휘하에서 활동했다. 신언경과 인척인 전주최씨 최길남, 최복남 형제는 남원에서, 최개는 최경회 장군의 의병진에 참여했다.
한말 영암 의병 최병손, 신준성(愼濬晟), 신예교(申禮敎), 최기성(崔基性), 박평남 등의 가슴 속에는 조광조, 양팽손에서 최익현으로 이어진 도학정신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고, 서당 훈장이었던 심남일과 함께 끝까지 국사봉을 오르내리며 싸웠던 강무경, 김치홍, 박찬희, 박규원 등의 심장 속에는 바로 사생취의(捨生取義)의 피 끓는 투지가 살아 있었다. 영암군 옥천시면 영신리에서 태어난 양응정의 11대손인 양한묵(1862~1919)은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전라도 대표로서, 마지막까지 고향 후배인 영암의 독립운동 선구자 한남수(1882~1950), 조극환(1887~1966) 선생 등을 이끌었다.
2025년 6월 1일 의병의 날 개관을 앞두고 나주에 남도의병역사 박물관 공사가 한창이다. 조선 역사에서 을묘왜변을 빼놓을 수 없듯이, 남도의병역사 박물관에서는 당연히 조선 최초 의병장 양달사와 영암성 대첩을 제대로 알릴 수 있어야 한다. 필자가 지난 2021년 양달사 관련 통문을 전라남도 측에 기증하게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 3월 17일, 전라남도에서는 남도의병역사박물관 용역보고회를 가졌다. 하지만 지금 전시 시설 실시설계가 6월쯤에 마무리된다고 하나,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이제라도 양달사 의병장과 영암군 의병들의 위상을 제대로 알릴 수 있도록 영암군민은 물론 영암군, 영암군의회 모두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힘과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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