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memento m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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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memento mori)

김기천
전 영암군의원
메멘토 모리. 라틴말로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너도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을 가진 경구다. 고대 로마제국에서는 원정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들에게 개선행렬을 뒤따르며 '메멘토 모리'를 크게 외치게 했다고 한다. 승리에 취해 교만에 빠질 것을 경계하고 항상 겸손하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의식이었던 셈이다. 우리 곁에도 같은 뜻의 말이 있다. '열흘 붉은 꽃 없다'. 같은 말을 해도 우리는 에둘러서 비유로 표현한 반면 서양은 직설적이었다.
세상살이가 날 것 그대로의 욕망이 분출하는 첨예한 전쟁터로 변한 지 오래다. 겸손과 배려가 사라져버린 자리에 교만과 오만이 경향각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마치 역병의 기세를 닮은 듯하다.
158명이 희생당한 이태원 참사 책임을 묻는 탄핵이 기각되자 변호인단은 함박웃음을 지었고 극우 시위꾼은 이태원 참사는 북한의 소행이라고 악을 써댔단다. 결국 유가족이 오열 끝에 혼절했다. 한때 영재 소리를 듣던 청년은 힘없는 시민을 상대로 대낮 칼부림을 저지르며 공허한 자신의 정신세계를 만족시키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젊은 교사를 죽음으로 내몬 학부모들, 왕의 유전자 운운하며 담임을 직위해제시킨 교육부 관료, 알바생에게 외상을 요구했다 거절당하자 콜라병으로 죽이겠다고 위협한 남성.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는 사건들을 보며 심장이 요동질한다. 우리 일상이 아찔한 살얼음판 위다.
권력자들의 행태는 더 가관이다. 폭우 참사도, 엉망진창이 된 잼버리대회도, 부실아파트 주차장도, 무너진 교육현장도 다 자기들 잘못이 아니라며 정색한다. 죄다 전 정부 탓으로 돌리며 책임을 손톱만큼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니 윤석열 정부라 하지 말고 前정부로 이름을 바꾸자는 조롱이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공무원들 비상근무 시켜놓고 유유히 골프를 즐기며 주말의 자유를 외치는 시장, 해병대 병사를 사지로 몰아넣은 책임을 면피하려고 또다른 희생양을 지목하고 나선 국방부 고위 장성들, 공무원한테 반말과 폭언을 서슴치 않는 지방의원들, 유죄 선고를 받고도 단체장직은 유지하게 되자 법정 밖에서 만세를 부르는 자들.
이들 모두의 공통점이 있다. 스스로 남보다 한끗발 위 권력자의 서열에 서 있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권력과 부만 손에 쥐면 거칠 것이 없다고 믿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자식들인 것이다. 이들은 자기보다 못 배우고 못 가졌으면 마구 모욕하고 짓밟아도 된다는 비틀어진 생각을 여과없이 실행한다. 타인의 처지에 공감능력은 제로에다 상대방과 소통하려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며, 약자들의 연대를 구질구질한 구걸쯤으로 치부한다. 대신 조롱과 모욕을 놀이처럼 즐기고 혐오와 차별에 거리낌이 없다. 혹여 그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면 말단 직원을 종처럼 부려 경찰서 앞마당 카메라 앞에 몰아세우면 그만이다. 자신들이야말로 그만한 권력과 지위에 있다는 오만에 사로잡혀 사는 자들로, 구제불능이다.
문제는 그들 탓에 우리의 정신이 병들고 세상과 이웃을 향한 불신이 키를 키우는데, 이 불신을 숙주로 세상에 대한 포기와 무관심이 왕성하게 기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러 어떤 이는 그 탐욕스런 권력의 끝자락이라도 붙잡기 위해 자기부정을 감행하기도 한다. 아뿔싸, 우리에게는 불행한 일이고, 권력자에게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나는 방법은 간단하다. 교만한 자들과 관계를 끊는 것이다. '음식점 종업원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과는 비즈니스를 하지 말라.' 미국 격언이다. 떡고물이라도 떨어질까 자신을 속여가며 노심초사하는 일보다 알바생에게 친절하고 지극히 작은 사람에게 잘하는 것이 훨씬 근사한 일이다. 모든 일에 겸손하고 누구나 존중하는 사람 사이에서 소리없는 변화가 움트고 놀랄만한 기적이 화들짝 피어나지 않았던가! 세상을 둘로 나누고 증오를 퍼뜨리며 악착같이 이익을 얻는 자들에게 우리가 내세울 무기가 장미꽃 한 송이라면 얼마나 유쾌한 일일까?
또 하나,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다. "메멘토 모리!" 요즘 유행하는 광고말을 빌자면 "그러다 니가 죽어". 제아무리 막강한 권력도 길어야 10년이고 붉은 꽃도 열흘이면 지고 만다.
붉게 만발한 배롱나무 꽃에 여름날이 눈부시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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