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결투를 했다는 전설…예나 지금이나 여자란 남자에 과연 어떤 존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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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결투를 했다는 전설…예나 지금이나 여자란 남자에 과연 어떤 존재일까?"

몇날 며칠을 걸어도 지평선인 이 나라가 부럽다. 이런 천혜의 땅을 가진 나라이기에 한 때 세계를 호령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미국을 자동차로 여행할 때, 몇 시간 동안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 밭을 보면서, 왜 이 나라가 세계를 주도하는 나라인가를 실감했었다. 중국을 여행하면서도 그 광대함에 놀랐던 경험이 있다. 국토의 위력이다. 그렇지만 땅 보다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힘이고, 사람이 희망이라 했다. 우리는 그 말로부터 위안을 받고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지금 사람을 제대로 기르고 있고, 제대로 대접해주는 나라인가.
길가 잔디밭에 쉬고 있던 독일인 오토가 손을 흔들어 반긴다. 순례자는 이렇게 앞서거니 뒷서거니 걸어가면서 만나기 마련이다. 손수레를 끌고 가는 왈덴 할아버지는 어디쯤 가셨는지 보이지 않는다. 잔디밭 근처에 찔레꽃이 환한다. 찔레꽃을 보면 찔레꽃 노래가 생각난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 별처럼 슬픈 찔레꽃 /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장사익이 부른 찔레꽃 노래다. 밥벌이도 시원찮던 무명시절, 노래패 말석으로 떠돌아다니시던 그 시절.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했던 어느 날, 시골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풍기더란다. 찾아가 보니 후미진 곳에 찔레꽃 한 무더기가 피어있더란다. 본인의 처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이 노래를 지었다고 했다.
살다보면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다. 한 없이 내려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만큼 내려가 본 사람은 안다. 삶이 무엇인지를. 인생이 어떤 것인가를.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그가 나를 위해 들려주는 노래라는 느낌이 들곤 한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장사익이라는 사람이 마치 내 오랜 친구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책을 읽을 때도 그렇다. 내가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을 덮고 나면, 그 책을 쓴 사람과 오랜 친구라도 된 듯한 생각이 들어 전화를 하거나 만나서 차라도 한 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Hospital de Orbigo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오늘의 목적지다. 길가에 그림 같은 주택 한 채가 서있다. 자그마한 석조 2층 건물인데 집을 둘러싼 낮으막한 나무 울타리가 일품이다. 나무를 정전하여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이 길을 지나가는 많은 순례객들의 기억에 남아있을 성 싶다.
긴 다리가 나타난다. 2백 미터는 될 성 싶다. 중세시대에 만든 다리라 했다. 오리비오(Orbio)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인데 까미노에서 가장 긴 다리다. 중세 때 이 다리 위에서 각 지역의 기사들이 실력을 가리기 위해 자웅을 겨루었단다. 야고보 성년이었던 1434년, 레온의 기사 돈 수에로와 9명의 추종자들이 이 지역의 모든 기사들에게 도전장을 냈다. 돈 수에로 일행은 유럽 도처에서 온 기사와 산적들을 상대로 용맹을 떨쳤다. 폭 10m가 될까 말까한 저 좁은 다리 위에서 벌어진 결투는 상상만으로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 결투에서 기사 한 명만 실수로 창에 눈이 찔려 죽고 결투에 임했던 모든 기사들이 산티아고 순례를 떠났다. 이 모든 행위는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도대체 남자에게 여인은 어떤 존재일까.
그런데 돈 수에로는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 사랑의 징표로 받았던 팔찌를 축일인 그해 7월 25일 야고보에게 바쳤다고 한다. 이 대목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서는 여인의 사랑이 최고의 가치였지만, 닥쳐오고야 말 저 세상을 위해 팔찌를 성인에게 기꺼이 바치고 말았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다리를 건너가는데 말똥이 여기저기 쌓여있다. 다리 중간쯤 걸어오니 왼쪽으로 넓은 풀밭이 펼쳐진다. 천막이 쳐 있고 천막위에 깃발이 펄럭인다. 말을 메어놓을 수 있는 설비도 보인다. 15세기에 여기서 벌어졌던 기사들의 창검술 대회를 이어받아 매년 7월 이 장소에서 무사들의 경기가 열린다고 했다. 중세의 기사처럼 갑옷을 입고 투구를 걸치고 말을 타고 그 때를 재현하는 축제를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몰려든다고 한다. 이끼 낀 다리 하나가 까미노의 역사를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다리를 건너니 마을이다. 이 동네는 성 요한 세레자 병원(Hospital de San Juan)덕분에 성장한 마을이다. 그래서 이름도 Hospital de Orbigo로 부른다고 했다.
알베르게를 찾아 길 따라 올라가는데 집 앞에 마늘 꾸러미가 매달려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마늘을 일종의 액막이 물건으로 사용하는 모양이다. 옛날 우리 시골에서는 아들을 낳으면 왼 손 새끼를 꼬아 고추와 숯덩이를 꼽아 집 앞에 걸어놓아 부정을 막았다. 그리고 홍역에 걸린 아이가 있는 집에선 집 앞에 황토를 뿌려 사람들이 함부로 드나들지 않도록 했던 것처럼, 마늘이 그런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성싶다. 마늘 숫자를 세어보니 열두 개다. 한 다즌을 걸어놓았다. 일 년은 열두 달, 예수님의 열두 제자, 동양에서 12간지와 열두 동물로 띠를 표시하는 것처럼, 열둘 이라는 숫자가 인간에게 주는 의미를 되새겨본다. 동서양 모두 열둘이라는 숫자를 중시하고 있다. 상징과 기호를 만들어 삶 속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것은 인간뿐이 아닐까. 모를 일이다. 동물들도 저희끼리 통하는 어떤 기호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지 또 누가 알겠는가.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1시다.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입구에 종을 달아놓았다. 딸랑딸랑 종을 치니 안에서 남자가 나온다. 2층은 유리창을 달아 약간 개조를 했지만 중세쯤에 지은 건물이 아닌가 싶게 오래된 건물이고 퀴퀴한 냄새도 난다. 이런저런 시설이 마뜩찮지만 자그마한 부엌이라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아직 손님이 많지 않아 아래층 4인용 방을 배정받았다. 음침하여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다고 아내가 수근 거렸지만 이렇게 오랜 건물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오늘, 이곳 아니면 어디서 경험을 해보겠는가.
마켙을 볼겸 마을 구경을 나섰다. 오래된 마을답게 골목길은 여기저기 패이고 건물도 부서진 것들이 보인다. 은행을 찾아갔는데 시골이라 환전이 되지 않는단다. 아스트로가에 가면 될거라 한다. 아무리 작은 은행이지만 환전이 되지 않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마켙 가는 동안 가랑비가 뿌린다. 날씨가 추워질 모양이다. 마켙 건너편에 호텔이 있기에 들어가 환전을 부탁했더니 편리를 봐준다. 궁하면 통하는 모양이다. 오는 도중 잡화상에 들러 내복 한 벌과 털목도리 한 개를 샀다. 객지에서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라는 아내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길거리에서 아주머니 두 분이 여태 수다를 떨고 있다. 아까 마켙을 찾아 나설 때 보았던 분들인데 마켙을 봐 돌아오는 지금까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 꼭 같은 장소에 서서 저렇게 얘기를 하고 있다. 할 말이 무척이나 많은 모양이다. 어느 나라건 아줌마들의 수다는 말릴 수가 없다. "이따 전화로 다시 얘기하자"면서 헤어지지 않을지나 모르겠다.
집사람이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방명록을 들추어보았다. 이 집에 들렀던 사람들이 남긴 기록이다. 한국인 세 분이 쓴 글을 소개한다.
(1)"잠시 들러 쉬었다 갑니다. 한국분이 하는 알베르게라 너무 좋네요. /9/2012 / 부엔 까미노 -준우-"
(2)"잘 쉬다 갑니다. 세계에서 존경받는 국민이, 국가가 되려면 자동차나 핸드폰을 많이 팔아 부자가 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지구촌 곳곳에서 말없이 봉사하는 한국인들이 각 방면에서 많아져야 할것입니다. 이곳에서 봉사하는 당신은 선구자이십니다. 성심성의껏 봉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전기밥솥을 빌려주시어 오랜만에 밥과 찌개를 잘해먹고 갑니다. 10-14- 2012 함부르크에서 온 김형우(야고보) / 이정자(젬마) / Buen Camino!"
(3)"박일, 박석희 잘 쉬었다 갑니다. 한국분들 힘네세요! 2013-5-15"
위 글을 보건데 어떤 한국인이 2012년 무렵 한동안 이곳에서 봉사자로 일했던 모양이다. 첫 번 글 쓰신 분은 그런 사정을 모르고 한국인이 경영하는 것으로 알았던 모양이고, 두 번째 글을 쓰신 분은 그 분이 봉사자인 것을 알고 쓴 성 싶다. (산티아고 길을 마치고 난 다음 봉사를 원하는 사람은 까미노 본부의 승인을 받아 각 알베르게에서 봉사할 수가 있다는 것을 참고로 알려드린다.)
저녁식사는 언제나 즐겁다. 감자 몇 알을 삶고, 고기 한 접시에 상치 한 단, 그리고 와인 한 병이 준비되었다. 김사장네 부부와 우리 부부가 함께 건배를 했다.
저녁을 먹은 다음 혼자서 몇 군데 알베르게를 둘러보았다. 알베르게마다 만원이었지만 한국 사람은 한 명도 만나볼 수 없었다. 엊저녁에 보았던 월남여인을 또 만났다. 보트피플로 불란서에 건너가 고생했던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이 길을 걷는다고 했다. 나라에 변란이 생기면 국민은 저렇게 외국으로 뿔뿔히 흩어져 고생을 해야 한다.
성당을 찾아 저녁미사에 참석했다. 주민들 몇 명, 그리고 순례자 몇 사람이 띄엄띄엄 앉아있다. 성당 구조가 아담하고 독특하다. 이 성당은 몇 백 년 전에 지은 건물일까. 오랜 이 순례길로 나를 이끌어주신 분의 뜻은 또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잠자리에 누웠다. 튼튼하게 만든 이 나무 침대를 거쳐 간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를 생각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몇 시나 되었을까. 화장실에 가느라 잠을 깼다. 가만히 마당으로 나왔다. 별이 총총하다. 오래 전 이 길을 걸어갔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모두 별이 되었을 터이다. 별 하나, 별 둘, 별 셋…. 이제는 별이 된 사람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별 하나가 유난히 반짝인다. 이 밤, 별을 그리는 사람 하나가 그 별을 쳐다보고 있다.
*알림*
'시인 정찬열의 산티아고 순례길 2천리' 연재를 마칩니다. 후속 내용은 정찬열 시인의 네이버 블로그(https://blog.naver.com/jungchan10)에 실려있습니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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