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려한 월출산을 배경으로 한 영암 녹암마을에 유독 새빨간 건물이 눈에 띈다. 가까이 가보니 아이 귀한 영암에서 놀이터 뛰노는 아이들, 염소 먹이를 주는 아이, 쿠키를 만드는 아이들까지 수십 명의 아이들이 하나 같이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다. 바로 이곳이 영암에서 친환경 귀리를 생산하는 영암 귀리부인 박정윤(36) 대표가 아이들을 위해 개설한 꽃피당 체험농장이다. 20대 어린 나이에 귀농을 시작해 지금은 6차 산업 정착의 꿈을 실현하고 있는 박정윤 대표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농사로는 돈 벌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영암이 고향인 그녀는 뙤약볕에서 힘겹게 농사지으며 고생하는 부모님을 보고자란 탓에 본인은 농사 대신 도시에서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길 원했다. 사계절 내내 밤낮없이 농사를 지어도 태풍 때문에 배가 다 떨어지기도 하고 풍년에는 가격이 폭락하며 밭을 갈아엎는 등 농사는 돈이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녀는 광주 소재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생활을 시작한다. 대학 졸업 후에는 회사의 사무직부터 푸드트럭까지 다양한 일을 하다 비료회사에 근무하면서 다시 농사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향수가 있는 영암에 돌아가 농부가 되길 결심한다.
“가족이 먹는 거니 당연히 친환경으로 하게 됐어요”
농촌에서 나고 자라며 대학생이 돼서도 시간이 남으면 부모님의 일을 도와 농사를 지었기에 거창한 준비 없이 귀농한 그녀는 부모님이 하던 고추 농사를 이어받았다.
농촌이 익숙한 공간이었기에 어려움은 없을 줄 알았지만 2만 원 하던 고추가 6천 원까지 떨어지는 등 들쑥날쑥한 고추 가격 탓에 밭을 갈아엎었다.
한 번의 실패로 작목 선택의 중요성을 깨닫고 다음 작목을 고민하던 그녀의 눈에 아버지가 먹던 귀리가 들어왔다.
“아버지가 당뇨가 있어 귀리를 자주 드셨어요. 하지만 시중에 판매되는 귀리는 대부분 수입이었어요. 몸이 안 좋은 아버지가 먹는 귀리라면 우리 땅에서 나고 친환경으로 키운 귀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농사보다 더 어려운 게 판매더라고요”
처음 시도하는 작목이었기에 첫해엔 800평 규모 소량으로 시작했다. 아버지를 위한 마음에 정성들여 기른 귀리가 잘 나오자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무상으로 보내줬고 맛이 좋다는 호평이 들려오면서 이듬해부터 규모를 10배가량 늘렸다.
농사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귀리가 영암의 주 작목이 아니다 보니 판로가 없었다. 수확한 귀리가 쌓여만 가자 그녀는 도매상에게 대량으로 판매하려고 했다. 비료값도 안 되는 터무니 없는 가격을 들은 그녀는 버리는 한이 있어도 그 가격엔 팔 수 없어 영암 및 인근 지역의 로컬매장에 발로 뛰며 귀리를 알렸고, 귀리부인이라는 이름과 로고까지 만들어 인터넷 판매도 시작했다.
그녀는 농부이기도 하지만 엄마이기도 했기에 아이들이 잠들면 새벽에 귀리 포장을 하고 다시 집에 돌아와 어린이집 보내고 다시 일터로 나가는 등 편히 쉬는 날 없이 열심히 하루하루 버텨갔다. 이런 노력으로 거둔 우수한 품질로 지역 내에서 알음알음 입소문이 퍼져갔고 작년엔 4-H 중앙경진대회 크라우드 펀딩 분야 대상 수상 농가로 선정되는 등 각종 경진대회에서 입상하며 ‘귀리부인’을 전국에 알리게 됐다.
“욕심 때문에 소비자와의 신뢰를 저버릴 수는 없죠”
귀리부인의 귀리가 인정받은 가장 큰 이유는 ‘쌀귀리’를 재배하기 때문이다. 쌀귀리는 사람이 섭취하기 위해 국내에서 개발한 품종으로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귀리는 대부분 겉귀리로 사람이 먹어도 되지만 주로 사료로 쓰인다. 쌀귀리는 수확 시기가 겉귀리에 비해 늦은 탓에 다음 작물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
“귀리는 동계 작물이라 다른 작물과 이모작을 해요. 쌀과 이모작을 할 경우 귀리 수확 일정을 쌀농사에 맞출 수밖에 없어 덜 익었는데도 수확하기도 해요”
항상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농사를 지었던 그녀는 욕심을 버리고 귀리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생산한 품질 좋은 귀리를 더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 귀리 분말과 셰이크까지 개발했다.
“귀리는 유분기가 많아 방앗간에서 분쇄해 주지 않아요. 또 빨리 소비하지 않으면 곡식 쩐내 같은 쾨쾨한 냄새가 납니다. 그래서 제가 판매하는 귀리 분말은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분쇄해 신선하게 제공하고 있어요”
“농사의 끝은 6차 산업이라고 생각해요”
귀농 10년 차의 30대 젊은 여성 농부로서 이름을 알리며 인정받고 있는 그녀는 아이들에게도 훌륭한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탄생한 공간이 꽃을 피우는 마당, ‘영암 꽃피당’이다. 꽃피당은 박정윤 대표 자녀들의 눈높이에 맞춰 개설한 놀이터임과 동시에 지역 농산물로 피자, 쿠키 등을 만들고 고구마 캐기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체험농장이다. 2022년 문을 연 꽃피당은 월출산 자연 아래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넓은 놀이터가 있고, 베이킹 체험, 귀리 새싹 키우기 키트, 동물 먹이주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어 개장 당시 입장을 위해 마을 입구까지 차들이 늘어서곤 했다. 지금은 목포, 광주, 신안, 무안 등 인근 지역 학교 및 엄마들에겐 입소문이 퍼져 작년 한해에만 약 3000명이 다녀갔다. 그렇게 1인 기업으로 시작한 영암귀리부인은 여러 매체에서 최종 목표라고 말했던 6차 산업 인증까지 이루게 됐다. 순항 중인 6차 산업 기업의 대표가 된 그녀는 또 하나의 큰 꿈을 꾸고 있다.
“귀농 온 지 10년 차가 됐는데 그동안 앞만 보며 달려간 것 같아요. 이제는 주변을 살피고 내실을 다지며 농촌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어요. 비록 작은 사업체지만 전국 소비자들에게 영암에서 나는 건강한 먹거리를 널리 알리고 저희 체험농장과의 시너지를 통해 지역사회와 상생하며 성장하는 게 제 목표예요”
이승우 기자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