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진 기술과 노하우를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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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가 가진 기술과 노하우를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WPL] 배 지역품목실습장
‘영암 동인농장’ 배상록 대표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감소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영암을 비롯한 농어촌 지역은 소멸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우리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기반이 흔들리면서 농촌 소멸 극복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토착농에 가공과 유통, 서비스 등을 결합해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6차 산업이 제기되고 있다. 민선 8기 영암군도 6차 산업화 단지 조성을 추진해 지역의 경제적 자립을 높여 농촌 소멸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변화하고 성장하고 있는 관내 6차 산업 현장을 찾아가 지속가능한 영암을 위해 앞장서고 있는 이들의 진취적인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분홍빛 벚꽃이 지고, 순백의 배꽃이 활짝 피며 은은한 배꽃 향을 풍기는 곳이 있다. 봄의 정취를 느끼며 도착한 이곳에선 흐드러진 배꽃의 꽃가루를 채취해 수정작업에 한창이다. 바로 이곳이 영암 배를 전국에 알리고, 지역 농가들과 예비 귀농인을 위해 첨단 농법을 전수하고 있는 동인농장이다. 동인농장에서 6차 산업 인증자이자 영암 유일의 배 마이스터인 배상록(72) 대표를 만나봤다.



저는 원래 양돈을 하려고 했어요

지금은 영암뿐 아니라 전남, 전국에서도 손에 꼽는 배 농사의 선구자이지만 배상록 대표의 원래 꿈은 영암을 대한민국 양돈 1번지로 만드는 것이었다.

때마침 1990년에 농림부에서 대한민국에 경쟁력을 갖춘 양돈단지 조성을 위해 각 도에 한 명씩 낙농양돈분야 해외연수 1기를 모집했고, 배 대표가 선정돼 덴마크와 네덜란드 등 유럽의 선진 양돈농가 견학을 다녀온다.

한국에 돌아와 2만 7천 평의 땅을 구입해 입기 배기가 자동으로 되는 무창돈사를 지었고, 영국에서 돼지 120두를 수입했다. 배 대표는 다른 양돈농가처럼 육용 돼지를 판매하는 게 아닌 각 돼지 농가에 품질 좋은 돼지 종자를 배급하는 종돈장을 운영했다.

당시 육용 돼지 한 마리에 10만 원 할 때 배 씨의 종돈은 그보다 10배가 넘는 가격에 판매됐다. 그렇게 종돈장으로 성공하나 싶었지만 돈사 설립과정에서 갈등을 빚은 한 지역민이 집요하게 사업을 방해했다.

남은 게 배나무밖에 없었으니 배 농사를 했죠

120두로 시작해 1000두까지 종돈장을 확장했던 당시 비료화한 오폐수가 배출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방류됐고, 그 지역민이 논밭에 오물을 뿌린다며 지인들을 동원해 데모를 하고 고발까지 하면서 결국 양돈의 꿈을 접게 된다.

당시 배 대표에게 남은 거라곤 빚더미와 양돈농가가 주변 과수농장에 피해가 가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심어 놓은 3000평 규모의 배나무밭뿐이었다.

남은 선택지는 배 농사밖에 없었기에 배에 명운을 걸기로 한 배 대표는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배‧농법 관련 연수는 전부 찾아다니며 전문가들의 기술과 노하우를 본인 것으로 만들어 배 품질을 높혀갔다.

그렇게 영암 내에서는 이미 최고의 배로 인정받게 됐고 공판장 및 과수 관계자들로부터 유명해져 신세계백화점에서도 배 대표가 운영하는 동인농장 배를 매입했다.

“2004년도에 신세계에서 우리 배를 5스타 등급으로 분류하면서 최고급 과일로 판매했어요. 이게 소문이 퍼지면서 서울에 있는 청과상들은 전부 제 배를 가져가려고 했어요. 그렇다 보니 영암 배 또한 알려지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영암 배 하면 전국에선 최고로 인정받고 있죠”



농사도 잘 알아야 잘 지을 수 있어요

이미 배 농장으로서는 확고히 자리매김했음에도 배 대표는 배움을 등한시하지 않았다. 매년 더 나은 배를 위해 전남대학교 마이스터대학 4년 과정을 수료하고 시험에도 합격해 2013년 배 마이스터 자격증을 취득한다.

농업마이스터는 재배품목에 대한 전문기술과 지식, 경영능력을 갖추고 이를 다른 농업인에게 컨설팅할 수 있는 농업분야 최고의 장인을 뜻한다. 그만큼 공부 양도 방대할뿐더러 원예학, 경영, 마케팅, 교수법, 역량평가, 현장평가 등 전문가들의 엄격한 6가지 평가를 모두 합격해야 하기 때문에 당시 3000명이 넘게 지원한 마이스터 시험에서 배 마이스터에 합격한 사람은 배 대표를 포함해 4명에 불과했고, 지금까지도 영암에서 마이스터는 배 대표가 유일하다.

마이스터가 되고 농업분야 멘토로서 교육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겨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자신의 가진 노하우를 전수하며 교육을 이어오다 2015년에 농림부에서 승인하는 WPL 배 지역품목실습장에 선정돼 청년농업인, 농고, 농대생 등 매년 1000시간씩 후발농업인의 선진 영농기술 습득 및 실무역량강화를 위해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농림부에서 받을 수 있는 인증은 전부 받은 것 같아요

“3000평으로 시작했던 배 밭이 어느덧 15000평이 됐고, 갖추다 보니까 교육장까지 생기게 됐고 교육장에서 교육, 실습을 이어오다 보니 2017년엔 6차 산업 인증까지 받게 됐어요. 국가에서 지정해준 멘토이니만큼 수업도 매년 같은 내용을 반복할 수 없으니 새로운 것을 계속 연구하고 개발하기 위해 지금도 계속 공부 중이에요”

70이 넘은 나이에도 배움을 멈추지 않았던 배 대표는 수입에 의존했던 중국산 배 꽃가루가 점점 이물질이 늘어나고 발아력이 떨어지자 직접 과수인공꽃가루단지를 조성해 고품질의 국산 꽃가루를 생산하게 됐고, 왕겨를 이용한 암거배수시설 등을 개발하며 2022년엔 농림부 선정 ‘신지식인 농업인장’까지 수상했다.

또한 동인농장은 농림부가 ICT 기반 첨단실습시설‧우수 실용 기술‧교육환경 등을 갖춘 전문 실습장으로 선정되며 기존의 영농기술 교육에, 스마트농업 실습 교육까지 이뤄지고 있다.

교육장은 1000평 규모의 첨단시설로, 만감류 카라향과 유라실생을 최첨단 스마트화하여 스마트팜 교육농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스마트팜을 해야 고부가 가치 실현이 가능해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위기가 본격화되면서 폭염, 가뭄, 홍수 등 이상기후 현상으로 농가의 시름이 깊다. 하지만 데이터를 기반으로한 스마트농업은 기후 환경에 영향 없이 안정적인 생산이 가능해 농가 불확실성의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작년 7월에 역대급 폭우가 내리고 이후 며칠간 햇빛이 굉장히 강했어요. 저는 토양에 수분이 얼마나 있는지 데이터로 바로 나오니까 제 농장에 물을 주면서 주변 농가들에게도 지금 물을 줘야할 시기라고 말을 해줬는데 비가 그렇게나 많이 왔는데 무슨 벌써 물을 주냐고 거절하시더니 고생하시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저에게 배워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전부 지역 곳곳에서 자리를 잡고 안정된 농사를 이어가고 있어요. 저는 단순하게 농사 기술을 전수하는 게 아니라 발아력이 좋고, 발아율이 높은 꽃가루를 직접 생산하고 이후 수분 방법, 착과 방법, 과일을 보다 오래 저장할 수 있는 방법 등을 다 전수하고 싶어요. 저는 이러한 과정들을 전부 인증까지 받았는데 인터넷에 보면 너무나 난립돼 있어서 농고, 농대, 귀농귀촌인, 예비창업가들은 정말 제대로 배워서 저보다 더 훌륭한 농부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승우 기자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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